마사지 받고, 먹고, 재즈 듣고, 쉬었다.
3월 중순 하노이에 다녀왔다. 어머님, 아버님과 함께 하는 여행으로 어머님 아버님은 일주일간 하노이에 머무시고, 그 여행의 마지막 3일을 나와 몽생이가 함께 하는 여정이었다.
여행 가기 전 면역력 문제로 몸이 안 좋기도 했고,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근처에 머물며 도심만 여행하기로 해서 숙소 정도만 예약하고 출발했다. 결론적으로는 로밍만 되고, 그렙과 구글맵만 깔아 두면 문제없이 즐길 수 있는 관광객 친화적 여행지였다. 여행을 준비하며 책을 샀다는 몽생이를 보며 너무 아날로그 아니냐고 놀렸지만 이래저래 검색하는 것보다 책에 나온 주요 관광지를 구글맵으로 확인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몽생이가 구매한 책은 트립풀이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874190
여행기록을 어떻게 남길까 고민하다가, 여정의 순서보다는 좋았던 경험을 중심으로 기록해 본다.
하노이는 저렴하게 마사지를 즐길 수 있는 샵들이 매우 많다. 총 두 번 마사지를 받았는데 한 번은 책에 소개된 omamori spa였고 한 번은 길거리에 갑자기 들어간 1990 spa였다.
omamori spa는 마사지사가 모두 시각 장애인인 마사지샵으로 정가로 운영되며 별도로 팁을 지불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흥정 -> 마사지 -> 약속한 금액 +팁 지불로 다소 혼잡한 샵들과 달리, 매우 조용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라서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차도 내어주고 마사지를 받는 공간도 매우 조용했다.
https://maps.app.goo.gl/29yivc94g8TP5AQz7?g_st=ic
1990 spa는 전형적인 하노이의 마사지 샵이다. 길거이에서 “마사지~ 좋아요~.”를 외치는 흥정과 실제 적힌 가격에서 한참을 낮춰도 OK! 를 외치는 샵이라 큰 기대는 없었지만, 어제 이곳에서의 발마사지가 아주 좋았다는 어머님의 추천을 받아 가게 되었다.
그리고 짱이었다ㅋㅋㅋㅋ
나를 맡은 마사지사는 남자 분이었고 타이마사지를 받았다. 첫 시작은 나의 몸을 드는 행위였다.(진짜 들었다.) 상체를 들고 비틀고, 하체를 들고 비틀고. 조금 놀랐지만 티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도 내 몸을 드는 게 지쳤는지, 힘겹게 숨쉬기 시작했다. 몸을 한 번 들고나서 ”휴“가 반복되었다. 너무 웃기고 애쓰는 그분이 안쓰러웠다. 나에게 “아유 오케이?”라고 묻는데, 내가 “예스 벗 하우 어바웃 유?”라고 물을 정도였다 ㅋㅋㅋ 아 중간에 심지어 자기 너무 덥다고 선풍기도 켰다.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글로는 이렇게 썼지만 시원하긴 굉장히 시원했다.
비틀기 쇼가 마무리되고 오일 마사지가 시작되었다. 나는 마사지에 도가 튼 사람이라 무조건 압을 강하게 받는다. 이분이 아주 압이 세신 분이라 굉장히 만족스러웠고 아프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있지만 대부분 좋았다. “아유 오케이?”라고 열 번쯤 마사지사가 물었는데 나는 “예스 굿굿”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분이 나지막하게 “유 쏘 스트롱…”이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다시 웃겨서 혼났다.
프로페셔널한 마사지사는 마지막 곡예로 자신의 위로 나를 올려서(진짜로) 굽은 내 허리를 쫙 펴주는 쇼를 해주었다. 그리고 마무리로 한 번 더 “유 쏘 스트롱”을 외쳤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담아 팁을 드렸다. 그래도 정말 저렴한 마사지였다. 내일 또 가고 싶은데 그분이 나를 보면 도망갈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진짜 다시 그 거리를 지나칠 때 눈이 마주쳤는데 슬쩍 눈을 피하는 그를 보았다ㅋㅋㅋ
시설적인 면에서 좋은 편은 아니지만 가격도 매우 저렴했고(3명이서 팁포함 10만 원) 나를 담당해 준 그의 열정에 너무 고맙고 또 덕분에 아주 시원했다. 강한 마사지를 원하다면 꼭 이곳에서 이 남자분을 찾길! 아쉽게도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https://maps.app.goo.gl/NdmzbqA5vJMsB5Zo9?g_st=ic
하노이를 여행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물가이다. 특히 음식이 매우 저렴해서 식당에서 음식을 풍성하게 먹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소식하는 편인지 하나의 메뉴의 양도 내 기준 0.7인분 정도라서 메뉴 2개 정도는 충분히 소화가능했다.
그리고 모든 식당이 주문과 동시에 5분 내 음식이 나온다. 어떻게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주 맘이 들었다. 하노이에서 가장 주문 이후 가장 늦게 음식을 받은 곳이 롯데리아이니, 웬만한 식당이 얼마나 빠르게 서빙하는지 감이 잡힐 것이다ㅎㅎ
모근 음식에 야채가 충분히 들어가는 것도 좋았다. 소식하고 야채도 많이 먹고. 베트남 사람들은 건강할 것 같았다.
몇몇 좋았던 식당도 기록해 둔다.
MET에서 첫날 식사를 했는데, 메뉴도 다양하고 직원도 친절하고 청결한 곳이라 아주 마음에 들었다. 4명에서 한 7개 정도 메뉴를 시킨 거 같은데 어느 하나 빠짐없이 맛있었다. 특히 마늘과 함께 볶은 모닝글로리가 아주 맘에 들었다. 수프도 맛있었고..
https://maps.app.goo.gl/9tYr7EuJc3WfRM8s9?g_st=ic
Buncha Ngọc Khánh이라는 백종원의 푸드파이터에 나온 분짜 맛집도 갔다. 한 30여분을 걸어서 갔는데 그래서 더 맛있기도 했다. 정신없이 푸드파이터처럼 먹고 나서 가격을 봤는데 분짜 1개에 3500원 정도였다. 야채 리필도 해줬는데 3500원이라니 더 먹을 걸.
여담이지만 하노이에서는 웬만하면 걷지 말길 추천한다. 우선 현지인은 아무도 안 걷는다ㅋㅋㅋ 호안끼엠 호수 근처를 제외하고는 진짜 걷는 사람을 거의 못봤다. 다 오토바이로 이동한다. 그렇다 보니 도보가 잘 정비되지 않았고 매연도 심하다. 10분 정도 걷는 건 괜찮지만 그 이상이라면 그렙을 반드시 타길!
https://maps.app.goo.gl/q3tJjGN2N48S9Svm9?g_st=ic
Bahnmy mama라는 길거리 식당에서 반미도 먹었다. 이 반미 집에만 유독 매일 줄을 서서 먹길래 먹어봤는데 아주 맛났다. 원래 반미 진짜 좋아한다. 계란이 포함되면 좀 더 보드라운 식감으로 먹을 수 있으니 추천한다.
https://maps.app.goo.gl/H5zmCio9EZNFkTnC9?g_st=ic
PIZZA 4ps라는 피자집도 갔다. 웨이팅이 1시간이나 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집이었는데, 실제로 피자도 아주 맛났다. 베트남 느낌의 피자라기보다는 그냥 맛있는 화덕피자였고 가격도 다른 식당대비는 높은 편이지만 역시나 친절하고 음식이 맛있어서 맘에 들었다.
https://maps.app.goo.gl/CSU4wJbBMHdHgp7u9?g_st=ic
Luk Lak이라는 식당도 갔는데, 역시나 고급진 느낌의 식당이었다. 오페라하우스 앞에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로 친다면 예술의 전당 앞에 있는 고급 한정식 느낌이랄까. 역시나 메뉴가 아주 다양했고 시간이 없어서 큰 그림 위주로 주문했는데 성공적이었다. 잘 모를 땐 언제나 큰 그림(식당의 추천메뉴)을 따르라!
https://maps.app.goo.gl/erjD69Nv9LmnLZaJ9?g_st=ic
맥주거리도 다녀왔는데, 사실 맛보다는 그 분위기를 즐기러 가는 느낌이었다. “누나” “엄마” “형” “아빠”가 넘쳐가는 한국말을 섞은 호객행위에 웃음이 나지만,, 혼잡함을 힘들어하는 나에게는 그저 그랬지만 또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한 번쯤 가볼 만 하기도 하기도 하다.(두 번은 안 가겠다는 말이다.)
Binh Minh Jazz Club은 어머님이 베트나 여행 첫날부터 기대하던 곳이었다. 어머님과 대화하며 음악, 미술, 체육에 대한 관심과 또 그 분야를 업으로 삼는 사람에 대한 존경이 있는 분이라고 느꼈는데, 그런 관심과 존경에 가보고 싶어 하셨던 거 같다. 설레하시는 어머님을 따라 사실 나는 큰 기대 없이 재즈바에 갔다ㅎㅎㅎ
그런데 상당히 좋았다! 재즈에 대해서 잘 몰라 늘 ”이게 즉흥 연주인가? 아니면 틀린 건가?” 하는 물음이 있는 편이다. 여전히 잘 모르지만 요런 재즈공연을 약 3번쯤 보고 나니 이런 판단이 무의미하다. 그냥 듣기 좋으면 아름다움 음악이고 연주자가 몰입하면 멋진 공연이 되는 거 같다. 이 재즈바에서 나는 즐거웠고, 연주자들도 행복해 보였다. 그럼 된 것 아닌가 ㅎㅎ
음료 가격이 인당 1만 원 정도로 비싼 편이지만 공연비를 따로 내지 않으니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다.
https://maps.app.goo.gl/9WAe592wowZevQ3U7?g_st=ic
롯데호텔. 갑자기 너무 자본주의 같지만 여행 마지막 날 머문 롯데호텔이 너무 좋았다. 고급짐의 극대화는 후각에서 완성된다고 믿는 편인데, 우선 향기가 참 좋았고 넓고 깨끗했고 높은 층수에서 오는 전망도 좋았다. 조식포함 22만 원 정도로 싸지 않은 가격이지만 여행 마지막날 여독을 풀기에 이만한 숙소가 없었다. 특히 지하에 롯데마트가 있어서 각종 식료품을 선물로 구매하기 좋았다.
꼭대기 층에 바도 있고, 수영장과 사우나도 있지만 저녁에는 너무 졸렸고, 일어나니 체크아웃 시간이라 안 가봤다ㅋㅋㅋㅋ 호캉스도 부지런해야 즐길 수 있구나를 깨달았다. 먹고 자느라 사진도 없다.
1.
예전에는 해외여행을 준비하면 이것저것 찾아보고 가고 싶은 곳도 예약하는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 여행도 잘 가지 않고 여행을 가도 타인의 선택을 따르는 순간이 많아진다. 여행지에 따라, 또 함께 하는 동행에 따라 나의 태도가 달라는 것일 수도 있겠다 ㅎㅎ 함께 하는 이를 따라 행복을 함께 누리는 것도 즐겁게 여행하는 방법 중 하나구나 깨달으면서도, 내가 진짜 가고 싶은 여행지에서 행복감을 느껴보도록 의욕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
여행 즈음 갑자기 몸에 여러 이상 반응이 나타났다. 다래끼부터 시작해서 각종 염증 등으로 인해 3-4개의 병원을 오고 갔을 정도이다. 병원마다 큰 이상은 없고 면역력이 문제이니 잘 먹고 잘 자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지금 여행을 갈 컨디션이 맞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베트남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다녀와보니 몸을 움직이길 참 잘했다. “아픔”에 대한 걱정과 이로 인한 우울은 아픔에 몰입하면 더 커지는 거 같다. 잠시 아픔을 뒤로하고 즐거움과 휴식할 수 있는 전환이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참 적절한 타이밍에 좋은 휴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