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지방에는 폭설이 내렸다는데 이곳은 조금 흐렸을 뿐이다. 영상 5도. 오늘 남부지방은 쨍한 겨울이다.
잠깐 켜둔 티브이 뉴스에서는 눈으로 인한 각종 사고 영상이 끝없이 보도된다. 도로에 줄지어 멈춘 차들. 53중 추돌사고(!). 너도나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의 모습. 빼곡한 지하철과 버스에 승하차하느라 서로 뒤엉킨 이들의 당혹스럽고 고단한 얼굴. 반면 휴대폰sns를 통해 본눈 내린 풍경은 사뭇 다르다. 하루 만에 겨울왕국이 되었다는 설렘과 흥분. 설국의 운치를 담은 아름다운 이미지들. 눈싸움을 하다가 쫄딱 젖은 아이의 천진함. 내리는 눈이 행복한 사람과 그것을 원망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일까. 좋음과 싫음은 언제나 공존한다.
요즘 달리기를 한다.
지난 10월 말, 광안대교를 달리는 마라톤에서 10k를 뛴 것이 트리거가 되었다. 그날 나는 아주 오랜만에 달린 것이었다. 기록은 1시간 10분으로 좋지 않았고 그 80분 내도록거친 숨을 헉헉거렸다. 나에게는 타고난 운동신경이 없다. 잘하지 못하면서도 좋아하는 것이 바로 운동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꾸준하고 성실하게 러닝에 매진하던 시기(2-3년 전쯤)에 나의 10k PB는 1시간 4분이었다. 무엇보다 그땐 이번 대회처럼 힘들지 않았다. 여하튼 주기적으로 달려야 심폐지구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깨치고, 요 근래 거의 매일 달렸다. 4킬로에서 5킬로 정도를 30분 동안 뛴다. 내년 3월 서울 동아마라톤에서 1시간 안으로 결승점을 통과하는 것을 목표로. 누군가에게는 가소로운 일이겠지만 나에겐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윗지방에 눈이 펑펑 내리던 어젯밤에 나는 아파트 단지를 빙글빙글 뛰고 있었다.
전날에 비해 공기가 확연히 차가워졌다. 걸어도 추운 날달리면 찬바람이 얼굴을사정없이 때리는 것만 같다. 피트니스센터로 들어가서 그냥 트레드밀 러닝을 할까, 갈등하다 보니 어느새 몸이 덥혀졌다. 트레드밀 위를 달리는 건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일이다. 몰입되는 영상을 보거나 팟캐스트를 들으면약간은 덜 지겹지만, 아무래도 쳇바퀴를 도는 생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다. 달리기의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생산해 낸 원초적인 동력으로 몸을 움직여 눈앞의 풍광이 바뀌는 걸 체험하는 것이다. 자동차가 없는 곳,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곳이면 어디든 좋지만 이왕이면 나무가 많은 곳, 다채로운 길이 조성된 공원, 물이 흐르는 천변이 더 좋다. 간혹 시간 때가 잘 맞아서 달리며 일출이나 일몰을 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럭키비키다.
달릴 때면 당연히 숨이 차오른다.
스마트와치로 심박을 체크해 보면 150-170 bpm 사이를 오간다. 이 정도면 편한 호흡이라는 생각이 들 때는 150 이하일 때이다. 조금 욕심내서 180까지 올려봤더니 숨이 머리끝까지 차고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온몸에서 들렸다. 이대로라면 토할 것 같았다. 따라서 나는 심박이 160을 넘지 않도록 최대한 페이스를 유지한다. 그래도 힘은 든다. 이 힘든 걸 나는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러너스하이 runner's high? 그런 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달리는 동안 나는 '죽을 만큼 힘듦'과 '죽을 만큼은 아니지만 몹시 힘듦' 사이를 왕복하는 상태이다. 아, 간혹 '그냥 힘듦' 상태가 될 때가 있는데, 그것이 러너스하이인가? 어쨌든 힘든 건 기본값이다. 어제 러닝을 끝낸 후 달리기 어플에서 3줄 마음일기를 쓰라길래 이렇게 썼다. 개 힘 듦.티 없이 순수한 마음의 소리였다.
달리기 싫은 마음과 달리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동시에 일어난다.
나가기 싫은데 나가고 싶다. 따듯한 침대에 기어들어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만 역동적으로 몸을 움직이고도 싶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이중적인 마음상태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현재와 미래. 이불 속에 들어가고 싶은 건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것이고, 달리고 싶은 건 가까운 미래에 올 확실한 기쁨(도파민) 때문일 테다. 나는 내가 반추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날들부터 현재보다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왔다.
다가올 무언가를 골몰하느라 매 순간 지금을 놓쳤다. 힘들어도 참아야 돼. 하기 싫다고? 그래도해야지.라는 내면의 소리가 나를 움직였다. 실수가 무서웠고 실패를 두려워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을지 몰라도 내실이 없는 상태. 긴장과 불안에 사로잡힌 황량한 시절이었다.
스스로의 이런 강박을 의식하기 시작한 스무 살 이후로,늘 '이대로 충분하다'는 감각을 원해왔다. 이 감각이야말로 지금 여기를 충실히 살게 해주는 도구라고 여겼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다는 것이삶을 대하는 가장 온전한 마음 상태라고 굳게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다가올 미래가 어찌 되든 개의치 않는다거나 앞일을 전혀 대비하지 않는 건 아니다.요즘 애독, 애청하고 있는 정희원교수님의 책과 영상에서도 중용의 미덕을 강조하고 있다. 저속노화를 위해서식이조절이나 운동에 과하게 집착하기보다는 자연스럽고 지속가능한생활 습관이 더 중요하다는 골자다.건강한 방향으로 서서히 나아가는 것. 그 안에서 기쁨을 느끼고 안정감을 얻어 선순환을 일으키는 것. 이런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성취하고 성장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그걸 좋아하는 마음이 꺾이지 않길 바란다. 목표라는 건 나의 유익하고 건전한 동력이다.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간의 과정이 쓸모없는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를 질책할 필요도 비난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운동신경은 전혀 타고 나지 않았지만 불쑥불쑥 치솟는 성취욕은 내재되어 있는 나에게 주기적으로 해주는 말들이다. 내 마음을 스스로 돌보지 않으면 내 안의 성취욕구와 인정욕구에게 잡아먹혀 버릴지도 모른다.
힘들어도 좋은 일이 있고 쉬운데 싫은 일이 있다. (이도 저도 아니 일들도 물론 있다.) 어떤 일에서든 나만 아는 의미를 찾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좋음이 싫음을 상쇄할 수 있는 순간이 더 잦기를. 내가 피어나는 때를 내가 더 잘 알고 부디 그걸 놓치지 않기를. 폭설로 다치는 사람들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