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초기와 아이가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온 신경이 상대방에게 집중되고, 호기심 레이더가 터질 듯 달궈진다는 점이다. 연애 초반엔 어떤 질문을 할까 고민하고, 상대방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 귀 기울이며,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도 유심히 살피게 된다. 아기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도 비슷하다. 아이가 더 빨리 습득하는 단어를 발견하면 관심사를 연결해 보려 하고, 서툰 발음이라도 청력과 경험을 총동원해 해석하려 애쓴다. 남들은 못 알아듣지만 부모는 다 알아듣는 것처럼 말이다.
상대방이 궁금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되고, 더 알고자 한다. 궁금증은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이 진심 어린 관심으로 전해지면, 대화는 한 차원 더 깊어진다. 호기심은 대화를 시작하고 지속하게 만드는 엔진과 같다.
그렇다면 호기심은 어떻게 생겨날까? 타인에 대한 호기심은 대개 감정에서 출발한다. 호감, 애정, 동경, 사랑뿐만 아니라 분노, 미움, 질투, 책임감, 의무감 등 다양한 감정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진심 어린"이란 말이 호기심 앞에 붙는다면, 호감이나 애정 같은 감정이 주요한 동기일 것이다.
사랑하면 상대가 궁금해진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오늘은 무엇을 먹었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애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TMI일 말도, 애정을 가진 사람에게는 알고 싶은 소중한 정보가 된다. 가끔 엄마는 이미 독립한 딸에게 왜 점심엔 뭘 먹었는지, 본인이 준 반찬은 다 먹었는지, 오늘 집에 온 손님은 누구인지 궁금해할까 싶었다. 이 못난 딸은 이제야 그것이 사랑이었구나를 깨닫는다.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는 서로를 이미 다 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 착각은 호기심에 조금씩 찬물을 끼얹는다. '매일 얼굴 보는데 뭐'라는 문장으로 사실 바래진 애정을 가리는 것은 아닐까. 혹은 상대방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데 쓰는 에너지조차 버거워진 것은 아닐까 돌이켜본다.
반데어 콜크는 《몸은 기억한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기 인생에 중요한 사람들이 자기를 지켜보고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평온과 안전을 느낀다." 타인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은 이 세상에 사람다움을 더해준다.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바라봐 주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을 안다면, 삶을 포기하려던 사람도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오늘부터 진심 어린 호기심으로 내 주변 사람들을 살피고 알아가 보면 어떨까? 단순히 지적 욕구를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소중한 존재이기에 알고 싶어 하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만약 기질적으로 호기심이 잘 생기지 않는다면, 그저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된다. 데이비드 브룩스가 《사람을 안다는 것》에서 말했듯, "눈이 깊이 바라본 것을 마음은 한결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바라보다 보면 궁금증이 피어난다. 가령 '저 사람은 쉴 때 항상 눈을 반쯤 감는구나. 졸린 건가? 아니면 생각 중인 걸까? 충전 중인 걸까?'와 같이 말이다.
진심 어린 관심이 서로에게 향할 때, 평온과 안전을 느끼는 개인들이 모인 사회가 될 수 있을 거라 소망해 본다. 그리고 타인에게 건강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감정적 어른이 많아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