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가 한창일 때 나는 JTBC의 "싱어게인" 시즌 1을 열심히 챙겨 봤다. 내 1호는 30호 가수. 그 후로 승윤 님의 콘서트도 두 번이나 갔다. 그의 음악도 좋았지만, 음악과 삶을 대하는 태도- 그 사람 자체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당시 여러 어록을 남겼지만, 5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멘트가 있다.
"지난번 경연을 하고서 제가 살아남아 생각이 되게 많아졌습니다. 사실 저는 어디서나 약간 애매한 사람이었거든요. 충분히 예술적이지도 않고, 충분히 대중적이지도 않고, 충분히 락도 아니고, 충분히 포크도 아니고. 그래서 제가 살아남는 거, 약간의 환대를 받는 이런 게 어리둥절했습니다.
사실은 좀 이게... 요행이 길다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어쨌든 4 라운드까지 와서 제 존재의 의의를 좀 더 구체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제가 애매한 경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걸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혹은 냉철한 세상의 반응을 거치며 깊은 고민 끝에 나온 멘트겠구나 싶었다. 나를 포함 스스로 애매한 지점에 놓여있다고 생각했던 뭇사람들에게 무척 위로가 된 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30호 가수의 우승은 '난 좀 애매한 것 같아'라고 느꼈던 많은 무명 가수들이 다음 시즌에 도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나 또한 스스로를 애매한 사람이라 여겨왔다. 이것저것 기웃거린 분야는 많은데 전문성을 가진 분야는 딱히 없었다. 그래서 하나만 오래, 길게 판 사람들을 멋있어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애매함이 결코 헛발질은 아니었음을 깨닫고, 나의 애매함들이 조화를 이루는 분야를 찾아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그 영역이 코칭이었는데, 코칭을 처음 만났을 때 흩어져 있던 나의 인생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애매함들이 모여서 폭발적 시너지를 내는 구간은 분명히 있다. 나를 포함 모두에게 말이다. 회사 내에서 팀을 보면, 뛰어난 개인들이 모인 팀보다 다소 평범하지만 다양한 강점이 어우러진 팀이 더 큰 역량을 발휘한다. 1인분을 단순히 더한 것보다 더 큰 힘, 바로 하모니에서 나오는 시너지다. 내 안에 그런 애매함들을 한 명 한 명의 팀원으로 한 번 바라보자. 각자 1인분은 못할 수 있지만, 그 친구들이 빠짐없이 한 데 모여야만 가능한 영역이 분명히 있다. 우리의 몫은 그 영역이 있을 거라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 두 가지 중 하나는 자기의 존재의 의의를 정의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알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승윤 님이 말했던 "제 존재의 의의를 좀 더 구체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는 그냥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실제 무엇을 하기 위한 테크닉보다 (혹은 테크닉을 쌓으면서도)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내 최고의 가치는 무엇이며, 앞으로 무엇을 향해 가는지 등을 정의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 없이는 애매함들의 교집합 구간을 찾기 어려우며, 설령 찾을지라도 뿌리내리기 어렵다.
두 번째는, 부딪혀보는 것이다. 이승윤 님의 꿈은 원래 "방구석 음악인"이었다. 아무도 자길 모르지만 음악은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누군가는 들어주는 모습을 그리다, 음악을 그만두기 전에 마지막으로 도전해 본 것이 싱어게인이었다. 1) 음악을 계속하고 싶음 그러나 2)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좋겠다 가 더 이상 양립할 수 없음을 알고 더 가치가 큰 1번을 위해 2번을 한 번 내려놓고 부딪혀본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거쳐왔던 모든 것들은 의외의 영역에서 시너지를 낸다. 이미 알고 있던 영역에서 다른 방식으로 날 수도 있고, 전혀 내 인생의 맥락에 없던 새로운 영역에서 시너지를 발휘할 수도 있다. 여기서의 공통점은 "내가 알지 못했던"이다. 올리버 스미시스 (Oliver Smithies)의 토요일 아침 실험실*과 같이, 평소에는 하지 않던 것을 시도해 보며, 나의 애매함이란 재료를 호기심이라는 도구로 이리저리 요리해 보는 실험이 필요하다.
애매한 사람이기에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정형화되어있지 않고, 족보도 없는, 끈기가 꽤나 필요한 과정이지만 다른 사람을 흉내 내지 않은 나만의 영역을 발견하는 여정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애매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그걸 축복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당신의 삶은 앞으로 더 흥미진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탐험과 실험 끝에 만날 당신만의 본진을 기대하길 바란다.
*토요일 아침 실험실: 데이비드 앱스타인의 <<늦깎이 천재들>>에서 참고. "1954년 1월 23일은 토요일이었다. 올리버 스미시스는 으레 그랬듯이 토론토에 있는 연구실에 나와 있었다. 자신이 토요일 아침 실험이라고 부른 것을 하기 위해서였다. 토요일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기에, 평일 때와 달리 엄격한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실험을 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토요일에는 이런저런 사항들을 꼼꼼하게 따질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 시간을 활용해 주중에는 시간과 장비의 낭비라고 여겨졌을 법한 실험에 매달렸다. 자신의 주된 연구 과제와 거의 상관없긴 하지만, 흥미롭다고 여기는 실험을 해볼 수 있었다. 그는 뇌가 매일 하는 일이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토요일에는 완전히 합리적으로 살 필요가 없다." -《늦깎이 천재들》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