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D-day는 말이지..
첫 번째 퇴사 예정일을 정한 이유는 내가 회사를 버려도 되는지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던 것 같다.
2017년 첫째 육아휴직과 둘째 육아휴직을 연결해 19개월을 휴직하고 돌아온 내가 무사히 과장 진급을 한 것이 회사 내에서는 꽤 뉴스거리였다. 인사담당자마저 내가 복직하지 않고 그냥 퇴사할 줄 알았다고 얘기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이런 사람을 과장 진급을 시켜준 인사체계가 마음에 안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사실 승격 포인트로는 진급이 당연한 거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업무공백을 생각하면 누락될 수도 있겠다 마음먹었었는데, 무사히 진급된 것이 신기하고 또 감사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커피와 밥을 샀고, 또 복직 빨, 진급 빨로 열심히 달렸다.
2018년 나는 만 10년 차 근속상을 받았다. 번쩍거리는 금 다섯 돈 메달과 함께 '당신의 공로에 감사한다'는 근속 상장을 받았다. 만 20년 차 근속상을 받은 친한 선배와 단 둘이 육즙이 환상적인 소고기로 축하 만찬을 즐겼다. 아이 셋을 키우는 워킹맘으로서 20년을 살아온 그 선배가 눈물겹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혹은 그 선배의 금 열 돈짜리 메달이 부러웠을지도? 아무튼 에너지음료 10캔 정도를 들이마신 것처럼 불타오르는 파워로 업무를 해내었다.
나는 명확한 프로젝트의 직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그저 내가 하고 있는 업무만 충실히 하면 되었다. 뭐, 그것만 하면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물가상승률에 따른 기본 연봉 인상과 편안한 직장생활, 무엇보다 Work & Life Balance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일 욕심을 부린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그 두 아이는 매우 심한 엄마 껌딱지였다. 남편은 내가 일 욕심을 내려고 할 때마다 첫 번째 직장을 버리고 이직을 선택한 것의 목적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한 것이었음을 계속해서 상기시켜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어진 직무 외의 직무를 떠안았다. 나의 일 욕심, 성장 욕심, 경력 개발 욕심으로 업무를 수행했고, 또 '잘' 수행했다. 심지어 몇 개월간 다른 지역으로 매일 출퇴근해야 하는 파견 업무를 요청받았을 때도 기꺼이 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엄마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가족의 불만과 분란이 일어났다.
나는 그 당시 비싼 등록금을 내고 특수대학원을 평일 야간에 다니고 있었는데, 2개월 동안 출석을 제대로 하지 못해 말도 못 할 학점을 받았다. 그나마 기대했던 업무 평가도 직무 외의 업무 수행으로 인해 평가를 할 수가 없어 내 기대와는 달리 결과가 좋지 못했다.
나는 '가족'도 놓쳤고, '학업'도 놓쳤고, '평가'도 놓쳤다. 편안한 삶의 경계를 넘어선 욕심이 화가 되어 돌아왔다.
2019년 초
번 아웃(Burn-out) 이 왔다.
나를 위한 성장 욕심을 좀 냈기로서니, 그에 따른 크나큰 기회비용의 공격으로 무기력 상태가 찾아왔다. 만 10년 차의 슬럼프인가? 했는데, 슬럼프라고 하기에도 너무 큰 우울감이 왔다. 그냥 당장이라고 그만두고 쉬고 싶어졌다.
내가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라는 생각만이 뇌에 새겨졌다. 내가 가진 그 많은 역할을 제대로 하지도 못 하면서. 인정도 제대로 받지도 못하면서. 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래서 첫 번째 퇴사 예정일을 정했었다. 몰상식한 사회인은 아닌지라 후임을 채용할 시간을 줘야 했고 나 또한 그만두고 뭐 할지 생각은 좀 해 보고 싶었으니까.
퇴사 예정일을 일단 정하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이 조금은 여유로워진다. 과거지사에 얽매였던 우물에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랄까? 물론 퇴사 예정일은 너무 급박하지 않게 약 3개월 정도 후로 잡아야 당장 내일 아침 눈 뜨자마자 퇴직원을 작성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생각을 좀 해야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