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예정일을 정하기 전에는 마음이 그냥 불안하다. 사무실 자리에 앉아있는 것조차 불편해진다. 이 회사가, 이 업무가 나에게 맞는 것인지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밤 잠을 자기 어렵고, 아침에 일어나기 어렵고, 회사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한없이 느려진다. 출근길을 걷다가 회사 건물까지 100m를 앞두고 괜히 눈물이 나서 커피숍에 들어가기도 한다. 퇴근하는 버스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에 감동한 척 눈물을 훔친다.
일 욕심을 버리고 원래 나의 직무 범위로, 나의 사회적 역할로 돌아왔는데, 내 마음은 이미 안드로메다에 가 버렸다. 더 이상 자리에 앉아있는 것조차 너무 싫다고 느껴질 때, 나는 즉시 상담받을 수 있는 철학관을 수색해 발길을 옮겼다.
사주.
올해가 '그런 해' 란다. 직장 스트레스 만빵이란다. 그냥 참으란다. 내년에 기회가 온단다. 내년에 귀인이 들어와 나를 인도해 줄 테니, 그때까지는 그냥 참으란다. 오호. 사주 상 그런 해라고 하니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조금 찾았다. 사주 비로 지불한 값이 아깝지 않을 만큼 그래서 며칠 안정을 찾았다.
그런데, 며칠이다.
'지금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어떻게 내년까지 참으란 말이냐!'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있다.
타로.
얼마 후, 나는 지인 찬스로 아주 유명한 타로 마스터와 상담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와중에 상담 전 '타로의 신빙성', '타로 믿을만한가?'에 대해 인터넷 서치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그냥 믿고 싶은 것만 믿자라는 생각으로 타로 마스터와 마주했다.
직장운을 봐 달라고 했다. 나보고 일을 엄청 잘하는 사람이랜다. 9장의 카드 중에 일을 잘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카드가 3장이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제대로 발휘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시기랜다. 그래서 스트레스 엄청 많이 받을 거랜다. 하지만 그만 두지는 못 할 거고 계속 다닐 거랜다. 그러니, 혼자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좀 가지랜다.
오호. 타로도 이렇게 나오니 진짜 그냥 그런 시기인가 보다 하고 또 조금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칭찬받으니 그것도 인정받은 거라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또 며칠이다.
나의 존재에 대한 무가치함을 생각하기까지 하는 거의 막다른 골목길에 다다랐다.
출퇴근하는 버스와, 지하철, 도보길에 문득 눈물이 났다. 원래 하던 업무인데도 기억이 잘 안 나고, 연결고리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에너지가 나지 않았다. 기능적인 면에서 손실이 나고 있다는, 비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을 인지한 후 나는 상담전문가를 찾았다.
심리상담
회사 내 심리상담 전문가가 있다. 인사팀 소속이기에 상담을 받으면 모든 정보가 다 인사팀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마음의 불안함이 극도로 높아지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 인사팀에 소식이 전해지든 말든 상담사를 찾아갔다.
첫 번째 상담 때는 무슨 말만 해도 눈물이 쏟아졌다. 울고 싶었나?
두 번째 상담 때는 어린 시절 살아온 경험을 파고들었다. 그래. 심리상담은 과거 어린 시절의 결핍이 현재의 문제로 드러난다는 것을 전제로 하니까.
세 번째 상담 때는 '저 좀 괜찮아진 것 같은데요. 안 올까 하다가 그래도 상담사님이 보시기에도 괜찮은 건지 물어보고 싶어서 왔어요.' 하고 갔는데,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괜찮은 척하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네 번째 상담 때는 시간도 좀 흐르고, 마음의 안정도 되찾은 것 같고, 근무시간에 자리 비우는 게 드디어 눈치 보이기 시작해서 메신저로 양해를 구하고, 이제 상담을 종료하고 싶다고 의사를 전했다. 메신저를 통해 전해받은 마지막 상담 같은 멘트. "괜찮아지셨다니 다행이에요. 아마 회사 평가만 잘 받았어도 괜찮으셨을 것 같아요. 그만큼 인정의 욕구가 높은 것인데, 스스로 자신을 많이 인정해 주시면 좋겠어요."
어린 시절 엄마에게 갈구했던 인정의 욕구가 회사라는 조직의 일원이 되면서 조직 내에서의 인정 욕구로 갈아탔고, 조직 내 인정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이 지경이 됐다는 결론이었다. 그래 조금 더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런데,
또 며칠이다.
여전히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너 이대로 괜찮니?'라는 질문을 하루하루 곱씹다 보니 또다시 '퇴사'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한창 좋을 때 읽었던 김미경 대표의 책에서 워킹맘들은 너무 쉽게 퇴사 옵션을 생각한다는 글이 자꾸 마음에 박힌다. 좀 찔리기는 하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