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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Jan 19. 2022

직장인 우울증 한번씩 겪는 거지?

내 불안에 브레이크 걸기가 필요한 순간

생각이 생각을 물고 이어진다.


도대체 생각은 정리가 되지 않고, 내가 억울한 것을 생각하다, 미안한  것을 생각하다, 죄책감을 생각하다, 무가치함에까지 생각이 미쳐 결국 눈물이 터진다.


이럴 때는 일단 쉬어야 한다. 몸도. 마음도.


마침 여수로 출장 갈 일이 생겼다.

교통편 사정으로 한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근무태만 아니다. 어쩔 수  없는 대기시간이다). 여수 앞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출장지 근처다. 내 발로 걸어가 내 돈으로 커피 사 먹었다). 운이 좋게도 얻어걸려 꽤 분위기 있는데, 아무도 없어 조용하고, 앞바다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 자리 잡았다. 게다가 아메리카노 리필 포트를 당연한 듯 함께 주는 고마운 곳이었다.


한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을 멈췄다. 생각이 나려 하면 애써 일랑이는 파도를 찾아 생각을 멈췄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내자 마음이 고요해졌다.


우울감이 있을 때는 약간의 충동성이 따라붙는다.

갑자기 금요일인 오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렁인다. 평생 짝꿍에게 톡을 보냈다. "갑자기 온천이 가고 싶은데, 이따  출발할까?" 이래서 평생 짝꿍이다. "가자!" 갑자기 에너지가 샘솟아 1박 할 숙소를 찾아 당일 예약하고, 쏜살같이 퇴근해 집에 가서 1박 할 간단한 짐과 수영복을 챙겼다. 여행 간다니 마냥 신나 하는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밤길을 달려간다. 충동적인 것이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해 보는 게 낫다.


몸이 힘들 때는 남의 눈치도 덜 보게 된다.

심지어 인정의 욕구를 지나치게 신경 쓴다는 것을 알아챈 이후로는 조금 더 나를 챙기게 된다.


시댁에 갈 일이 생겼다. 오랜만에 와서 반갑다고  밤 열두 시가 되도록 만담을 펼쳐가는 시간에 감기는 눈 겨우 붙잡고 있던 것을, 그날은 하지 않았다. 어머님이 새벽 5시부터 아침 준비를 하시면 눈 비비고 겨우 일어나 옆에서 알짱대던 것을, 그날은 하지 않았다. 어린 둘째의 낮잠시간, 토닥여 재워주고 다시 나와 어머니 말동무가 되어 드리는 것을, 그날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잤다.

낮에는 '애가 졸린가 봐요'하고 둘째 끌어안고 방에 들어가 덩달아 잠들었다. 밤에는 '애 재울게요.' 하고 들어가 재우면서 나 자신도 재웠다. 소심해서 내가 졸린다는 말은 못 하고, 먼저 자겠다는 말은 못 했지만. 어쨌든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이 잤다.


그런데, 그렇다고 뭐라 하는 사람 한 명도 없더라.

물론 내가 올라온 후에 누군가 '큰애가 좀 이상한데?' 했을 수는 있지만, 내가 잠을 좀 더 잤다고 뭐라 하는 사람 한 명도 없더라. 이 또한 시부모님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나의 욕구가 만들어 낸 눈치보기였구나 싶다. 조금 개인주의적으로 해도, 그것이 무례하거나 폐를 끼칠 정도가 아니라면 '괜찮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무런 의욕도 없는 사람처럼 멍 때리고 싶어지는 순간, 에너지가 생긴 것이 아니라 그저 현실에서의 회피로서 불쑥 여행을 떠나고 싶은 순간, 이전에 신경 썼던 것들이 무의미해지면서 그냥 잠이나 자고 싶어지는 순간. 워킹맘으로서 살아가는 불안한 삶이 보내는 신호가 아닐까.



사람들은 자동차 계기판을 얼마나 자주 볼까?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시동을 걸면서, 주행을 하는 중간중간, 그리고 마치면서 꼭 확인하는 것이 계기판이다.

계기판은 친절하게도 내가 어떤 속도로 가고 있는지, 과속을 하고 있는지 더디게 가고 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급발진을 했는지 서서히 달구다가 달리는지 그래서 내가 에코운전을 하는지 과격 운전을 하는지도 알려준다.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 Full에 가까운지 Empty에 가까운지,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120km의 거리인데 충분한 에너지인지 부족한지 가늠할 수도 있다. 심지어 어디 고장 난 데가 있거나 문이 살짝 열려있거나 안전벨트만 안 매도 명확하게 알려주니 이보다 더 안전하고 정확하고 고마운 나침반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아쉽게도 그 고마움을 간혹 잊을 때가 있다. 아무리 Warning을 줘도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내 맘대로 하련다' 하고 무시해버리기도 한다. 에너지원이 바닥나고 있다고 반짝 주유 등에 불이 켜져도 무시하고 가다 고속도로 가는 도중 차가 멈춰 서야 그제서 '아.. 왜 못 봤지? 아까 그 휴게소에서 넣었어야 했는데..' 후회하게 된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도 한평생을 살며 참 많은 일이 일어난다. 신기하게도 몸과 마음은 계기판의 역할처럼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주고 있다. 먹고 싶은 음식, 먹으라고 한다.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영양소이기 때문에 소위 당기는 것이란다. 왠지 느낌상 왠지 그럴 것 같은 추측, 예측, 의심 등의 기제들이 나의 몸과 마음이 시기와 상황에서 적절하게 혹은 안전하게 움직이도록 도와준다. 심지어 화가 나 미치기 직전에도 혈압이 높아지고 체온이 올라가고 주먹 하나가 저절로 올라가는 행동 동기가 발휘되는 정보들을  우리 몸과 마음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나의 계기판을 확인했던가?


내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이미 '화났어'라는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답답하네, 짜증 나기 시작하네, 화가 나려고 하네. 이런 과정의 감정들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었나. 나의 불안함을 인지하고 있어야 조절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나의 계기판은 알려주고 있었다.

나, 인정받지 못해서 속상했구나.

나, 눈치 보지 않고 살고 싶었구나.

나, 몸과 마음이 많이 쉬고 싶었구나.

나, 여러 가지 역할들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죄책감을 느꼈구나.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지고 싶구나.


그것을 이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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