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클로저>를 이해하다
* <위대한 개츠비>와 <클로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클로저>를 처음 본 것은 대학생 때 2008년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성장이 더뎌 그때는 24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뭔지 몰랐던 때였다. 당연히 클로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특히 여자들이) 명작이라고 여운이 많이 남는다고 했는데 내 눈에는 단지 앨리스(나탈리 포트만)는 종잡을 수 없었고, 댄(주드로)은 찌질했으며, 안나(줄리아 로버츠)는 나쁜년이었고, 래리(클라이브 오웬)는 마초 그 이상도 아니었다. 그리고 2018년 초 클로저를 두 번째 봤다. 내 나이 34살. 이제는 사랑을 조금 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알았지만 클로저는 여전히 나에게는 간밤에 꿨던 의미 없는 꿈처럼 느껴졌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런 꿈말이다. 클로저의 매력은 이것인가 보다. 잡힐 듯 잡히지 않아 한번 보는 걸로는 부족한 영화.
그런데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클로저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연결고리였다. 위대한 개츠비는 유명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명작을 현대판으로 영화화한 것이다. 처음에는 의미 없이 던지는 요란한 파티장면들에 영화가 목적 없이 표류하는 느낌에 지루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몰입도가 높아졌다.
내 생각에 두 영화는 매우 비슷하다.
1. 강력한 캐릭터
클로저의 캐릭터 네 명은 모두 개성이 강력하고 매력적이다. 감독은 캐릭터 빌드업을 먼저 하고 영화를 풀어나가기보다는 영화를 빌드업과 같이 진행하는 것을 택했고, 그만큼 관객이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캐릭터는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매력이 있었다.
개츠비의 캐릭터 네 명 역시 제 역할을 잘했다.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알맹이 없이 부라는 껍질만 존재하면서 자격지심이 있으나 항상 희망적인 돈키호테와 같은 인물을 잘 표현했다. 데이지(캐리 멀리건)도 사랑스럽지만 겁 많고 주체적이지 못한 당시에 있을법한 여성을 잘 표현했으며, 뷰캐년(조엘 에저튼)은 당시 가부장적인 마초의 느낌을, 캐러웨이(토비 맥과이어)는 제삼자의 시각에서 개츠비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2. 거짓된 표피
클로저의 댄은 앨리스과의 사랑을 소설로 써 성공한 후 거짓된 표피를 두르기 시작했다. 앨리스를 사랑했던 것은 사실이나 앨리스에 질려 다른 유혹에 열려있는 상황임에도 이를 부정하고 안나를 만난다. 그리고 안나에게 차인 후 다시 앨리스를 찾아가 사랑을 구걸한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 역시 가난한 환경에서 벗어나 상류층으로 가기 위해 거짓된 표피로 자신의 과거를 감쌌다. 이를 위해 데이지와의 재회를 연기하고 성공한 모습으로 늦은 타이밍에 나타나나 그것은 거짓된 성공이다. 그에게 진실된 것은 데이지에 대한 사랑 하나이다.
반면, 클로저의 래리와 위대한 개츠비의 뷰캐넌은 자신에게 매우 솔직하다. 표피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거짓되지는 않다. 자신에 대한 자격지심이 전혀 없음으로 인함이다.
3. 사랑에 대한 단편
사랑은 영원한 걸까? 변하는 걸까?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생각한다. 영원하다고 믿을 뿐이고 믿으라고 사회적으로 강압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클로저의 앨리스나 안나,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를 비난할 수 없다. 분명 앨리스와 데이지는 당시의 상대방을 미친 듯 사랑했다. 그러나 타이밍이 어긋났고 이 어긋난 타이밍으로 또 다른 사랑이 다른 사람으로 이동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캐러웨이가 한 말이 있다. “You can't repeat the past!"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랑은 항상 거기 멈춰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잡아야 하는 순간에 잡지 않으면 사랑은 나를 지나가고 사라진다. 마치 응답하라 1998에서 류준열이 사랑을 놓치듯 지나간 버스는 잡을 수 없다.
로맨스 영화에서 사랑은 아름답다. 현실에서도 사랑이 아름다울 때가 많다. 그러나 사랑이 꼭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랑은 항상 같은 곳에 있는 곳이 아니며 잡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나에게 오지 않는다. 현실의 사랑은 가까워질수록 멀어지고 멀어질수록 가까워진다. 이런 아이러니한 사랑 같으니
- 2018년 10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