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족쇄 같아, 너는 팔목에 있는 손목시계가 영 불편한지 몇 번이나 왼쪽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런 너를 보면서 이미 식어빠진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삼켰다. 이미 거의 절반 이상을 마셔 거의 빈 잔에 가깝지만 너의 얼굴을 어떤 표정으로 바라볼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냥 커피를 홀짝이는 행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손에 쥔 머그잔이 식다 못해 차갑다. 오늘도 30분을 기다렸다. 너는 이제 당연하다는 듯 내가 커피 한 잔을 다 마실쯤에야 나타난다.
비싼 거였어, 내 대답에 너는 그래도 못마땅하다는 듯 팔목에 감겨있는 시계를 다시 한 번 만진다. 시간에 얽매이는 게 싫어, 라고 말하던 너에게 시간으로 족쇄를 채운 내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번 찌푸려진 미간은 펴지질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어떠한 감정도 다 무뎌지게 되어 있다던, 어디서 봤던 건지 기억도 나질 않는 책의 글귀가 기억났다. 무뎌지는 것인지, 생채기를 내는 것인지 나는 너의 시간개념 하나에도 매번 큰 감정소모를 해야 했다. 시간이 많으니 괜찮다고 되려 웃어주던 게 바로 나였는데 말이다.
만남이라는 정의 안에 있는 감정이라는 종속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에게 더 큰 무언가를 원한다.
나보다 더 큰 감정을 보여줘, 나보다 더 큰 책임감을 보여줘. 증명해봐, 너의 감정을.
지금의 나도 너에게 자꾸 조르고 있다. 네 감정을 보여봐, 네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봐, 하고. 함께 공유한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왜 신뢰가 아닌 불신이 쌓이는 걸까.
나는 네가 입을 삐죽이며 더 늦으면 목줄이라도 채울 거냐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 우리가 공유한 시간 한구석 어딘가에는 신뢰도, 불신도 아닌 작은 바이러스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이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그런 치명적인.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하는 <봄날은 간다> 같은 대사는 던지지 않았다. 지금 막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가져온 너에게 간다, 하는 말만 했을 뿐이다. 가게를 나서면서 <봄날은 간다>의 상우는 집착밖에 남지 않았어, 하고 감상을 남기던 나와 상우는 은수를 사랑해서 그랬던 거야, 라는 감상을 남기던 너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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