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인정하고 희망을 품는 태도란
“개… 인가?”
박스에 담긴 너구리를 보고 주인공이 처음 내뱉은 대사이다.
“데려가 주세요”, “기르기 쉽다”는 메모를 보여주면서 동행을 요청하고, 주인공의 1차 거절에 굴하지 않고 박스 안에서 우산을 꺼내 건넨다. 글을 통해서 의사소통이 가능한 신비한 능력을 가진 동물과 소설가이자 혼자 살고 있는 젊은 여성(주인공)의 동거 생활을 소소하게 담아낸 <비와 너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때부터 너구리는 ‘개’가 됐다.
조금 비현실적인 여름
작품의 특이점은 이 조금 비현실적인 개의 존재이지만, 서사 진행의 초점은 개와 주인공의 평화로운 삶, 주변인들의 소소한 일상에 맞춰져 있다. 개와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는 일상적이다. 검진을 권하고, 산책을 하면서 이웃을 만나거나 함께 씻는다. 와중 개가 고맙다는 표현을 하고 스스로 개임을 주장하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할 테다. 다만 그 반응들은 지나치게 일반적이어서 괴리감이 없다. 검진을 권하자 부르르 떨고, 산책하러 나가자고 하면 좋아하고, 씻으면서 안정감을 느낀다.
<비와 너와> 속 인물들은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어영부영 수긍한다. 동물 병원의 의사도, 산책길에 만난 어느 남성이나 여학생들도, 주인공의 부모도 너구리가 ‘개’임을 주장할 때 인정하고 넘어간다. 자신의 신념을 어떻게든 관철하려 하지 않는다. 주인공 역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자연스러운데, 연대도 어색하지 않다. 또 <비와 너와>에서는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경제적 어려움이나 관계에서 촉발되는 난항의 굴곡진 서사를 확인할 수 없다. 사소한 일로 고민하다 나름의 해답을 찾고 만족하는 짧은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사회적 시선이나 경제적 성과, 개인적인 만족 어느 한쪽에 매몰되지 않는 균형 잡힌 삶으로 인해 건강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로 인해 의사소통이 가능한 너구리가 개로써 살아가는 게, 각 인물이 그저 그 인물들로서 살아가는 게 당연하게 되었다. 나도 저런 이상적인 관점으로 살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는 주변의 인정에 따라 살아 있음을 느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고자 애썼지만, 전부는 아니었기에 과정조차 즐거웠다. 타인이 원하는 모습에 본인을 맞추는 시기를 거쳐 자아를 확립하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기준에 적응해 가는 걸 우리는 ‘성장’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저 느끼고, 받아들이는 여름
하지만 지금의 우린, 어린 시절 바라던 ‘나’로 성장했을까. 미래를 준비한다는 명목하, 계산과 타협이 쌓이면 쌓일수록 현실과 일상은 뜨거운 햇볕처럼 불편해지지 않았나. <비와 너와>는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그 찰나의 감각, 즉 현재만을 조명한다. 미래를 외면하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면 시간은 순간의 나열이 될 테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분류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주인공과 개가 해변에 간 에피소드가 있다. 개는 “즐거워.”라는 메모를 보여준다. 대체로 따뜻한 반응을 보여주던 주인공은 어쩐지 냉소적으로 답한다. “그래… 잘됐네.” 그러자 개는 “안 즐거워?”, “즐겁다고 말해!!”라며 주인공에게 즐겁다는 말을 듣고자 한다. 이에 대한 주인공의 대답은 신중했다. “…여름 햇살에 바다 냄새.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는 거야. 그걸 말로 하면 느낌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비와 너와>는 혼자도 잘 살고자 하며 같이도 잘 사는 성숙한 어른의 태도를 그린 작품이다. 그러므로 불안함을 인정하고 희망을 품는 태도도 자연스럽다.
햇볕을 피해 그늘을 찾고 바람이 반가운 시기, 쏟아지는 빗줄기가 기다려지는 여름이다. 각자의 고충을 안고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을 이들에게 <비와 너와>의 풍경에서 잠시 쉬어가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