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민맘 Mar 16. 2024

인생은 낯선 여행지의 식당 메뉴 같은 거

밥 먹다가, 울컥

비가 오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파전과 칼국수. 대학시절 비가 내리는 날에는 친구들과 파전과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시장 골목에 있던 가게는 비가 오는 날에는 유독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비가 내려 눅눅한 공간에는 사람들이 먹고 즐기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날의 기억이 좋아서  비가 오는 날에는 파전과 칼국수를 찾는다. 함께 했던 친구들은 없지만 그날의 추억을 먹는다. 


#박찬일 #산문집 #밥 먹다가 울컥 에서는 음식에 얽힌 그리운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소설을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배고픔이 일상이었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에 마음이 울컥하기도 하고, 식당 주인의 거침없는 말들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맥주 한 상자 사서 먹을 돈도 있는 데 나도 너도 바쁘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서슴없이 던지며 만나서 밥 한 끼 먹기 어려운 바쁜 일상을 살고 있다. 책은 오래된 기억을 꺼내 들게 한다. 작가가 써 내려간 추억들에 나의 추억들을 포개어 본다. 


새벽에 식어가는 생수병 대신 그의 등에 살을 붙였다. 체온이 그리도 위안이 되는 밤이었다. 


열 마디 말보다 행동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다. 아픈 이에게 따뜻한 죽을 건네주고, 추운 겨울날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네주는 이의 모습은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다. 서럽고 차가운 마음에 위안이 되는 순간이었다. 저자가 느낀 그 마음이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함바집으로 망해버린 내 친구 아버지나 도시의 함바집에서 저녁술을 드시던 내 아버지나 다 세상에 안 계신다. 더러 남아 있는 함바집 밥도 맛이 없어졌다. 중고 패널로 얼기설기 못질해서 만들고, 바닥은 그대로 흙이어서 탁자가 기우뚱하던 그 현장의 밥이 자꾸 생각난다. 


어린 시절 먹던 양념통닭이 먹고 싶었다. 프랜차이즈 통닭에서 파는 양념치킨 맛이 아니다. 통닭이라고 부르던 그때 그 시절 맛이 먹고 싶어 시장에 있는 통닭집을 찾아다녔다. 혹시나 어린 시절 먹던 그 맛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결국엔 찾지 못하고 포기했다. 책을 읽다가 양념통닭 생각이 자꾸 났다. 


"나는 밥을 안 먹어. 라면만 가끔 먹어. 그래도 이렇게 잘 살아 있잖아요. 라면만 먹어도 살아, 사람은. 벽돌 질 때도 뭐 먹고 지었나 깡으로 지는 거지, 살자고 지는 거지. 그러면 다 살게 돼."


무덤덤한 말에 삶의 단단함이 느껴진다. 살려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시장통 대폿집 주인장의 말이 어느 명언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어느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오래된 식당을 찾아가 밥을 먹는 장면을 보았다. 그 식당의 주인은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셨다. 주인 할머니의 투박한 말투와는 달리 밥상에는 넉넉함이 가득했다. 책에서 만난 대폿집 이야기에 그날 티브이에서 보았던 할머니 생각이 났다. 


인생은 낯선 여행지의 식당 메뉴 같은 거라고 했다. 메뉴판에 적힌 것과 달리 뭐가 나올지 모른다고. 우리는 보통 꼬였다고 했다. 인생 꼬였네. 군대 생활 꼬였네. 회사 생활 꼬였네. 꼬인 줄을 풀다 보면 어느새 삶은 풀 수 없는 실타래 같은 거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생이 낯선 여행지의 식당 메뉴 같은 거라는 책의 말처럼 세상은 어떤 일들이 일어나지 예상하지 못한다. 감자탕 한 그릇 놓고 꼬인 인생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풀어내고 덜어 낼 뿐이다. 

화가 나고 우울할 때 매콤한 불족발로 스트레스를 풀어 버리고, 우울한 친구를 위해 막창에 소주잔을 기울인다. 오래전 할머가 해주시던 팥죽을 생각하며 그리움을 불러 세운다. 이토록 먹고사는 이야기에는 저마다의 울컥하고 걸리는 지점이 있다. 


인생이 그리다 삭막하고 쓸쓸한 것만은 아니라고 저자는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있다. 저자의 오래된 이야기에서 기어 올린 든든한 추억 한 공기 먹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피엔딩이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