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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이슬 Dec 27. 2021

속죄하는 마음으로 업사이클링

환경에게 미안할 일 많은 패션브랜드라서, 업사이클링 합니다

환경에게 미안할 일 많은 패션브랜드라서, 업사이클링 합니다

패션브랜드라서 미안합니다


패션산업이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보도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논문에 따르면 원단공장에서 50만톤의 플라스틱을 바다로 배출시키며, 셔츠 한장을 염색시키는 데 2700L의 물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한 번 입고 버려지는 낮은 내구도의 패스트패션도 환경파괴를 부추기는데 큰 몫을 한다고 합니다. 프랑스 자연환경연합의 엘레노어 큐빅은 이러한 환경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으로 '질 좋은 상품을 오래 쓰고, 적게 살 것 '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효성 '친환경 리사이클 섬유' 리젠, 생활한복으로 탄생」 뉴데일리경제 성재용기자


리슬은 패션업계가 환경에 끼치는 피해가 불가피한 것이라면,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에 대해 항상 속죄하는 마음으로 고민해 왔습니다. 아예 안 쓸 수 없다면 '최소한'으로만 소비될 수 있도록  '유행 타지 않고, 한번 사면 튼튼하게 몇년 간 입을 수 있는 생활한복'을 만들어 왔으며,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상품개발을 위해 친환경상품을 개발하고 있는 기업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고 협업을 해왔습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업사이클링

[리슬X효성]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리젠' 섬유로 만든 한복.

리사이클링이 커피찌꺼기를 거름으로 쓰는 것과 같이 '있는 그대로를 재활용' 하는 것 이라면

업사이클링은 '녹이고 가공하여 새로운 물건으로 재탄생 시키는 것' 을 의미합니다. 

리사이클링은 일반인이 실천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업사이클링은 일반인이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이 나서줘야 하는 영역이지요. 

리슬은 올해 초 선도적 섬유기술을 가진 효성과 함께 폐플라스틱을 업사이클링한 '리젠'섬유로 한복을 개발한 바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버려지면 환경을 병들게 하는 폐플라스틱이지만,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의 손길이 닿으면 새로운 생명이 부여된다는 것이 신비롭고 가슴 벅찼어요.


리슬의 업사이클링 노리개 플라옥

이렇게 근사하게 만들어진 한복을 보니, 폐플라스틱을 활용하여 전통장신구도 만들어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달 중순, 폐플라스틱을 업사이클링하여 '옥' 을 대체한 장신구 '플라옥노리개'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한달이면 될 줄 알았는데
반년이 걸린 작업

리슬의 업사이클링 노리개 플라옥


플라옥은 플라스틱+옥 의 합성어로 리슬이 만들어 낸 이름입니다.
플라스틱을 녹여서, 틀에 찍어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라고 간단하게 생각하고 시도한 일인데 금형을 만드는 데에만 무려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며, 최종 샘플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반년이 걸렸습니다.


전통 '구름문양' 디자인 


디자인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 플라옥은 전통 '구름문'을 담아 디자인 되었는데요,


“제석신이 흥륜사에 강림하여 머무르니 나무와 풀들이 이상한 향기를 내고 오색구름이 절을 덮었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숲 속 자주빛 구름이 드리워져 그 곳을 찾아가니 황금궤가 걸려있고 그 안에 한 사내아이가 있었다.” - 신라 김씨왕조 시조 김알지 신화


옛 문헌과 그림에 구름문은 신이 강림할 때, 용이나 백호처럼 영물이 등장할 때, 성스러운 인물이 탄생할 때 나타나는 것 이었습니다. 힘들었던 한해를 마무리하며, 이 노리개를 가진 사람들 모두 존귀한 사람으로 대접받으며 운수대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구름은 십장생중 하나로서 '무병장수'의 의미를 담고있는데요, 아픔이 많고 고생한 한해였으니 모쪼록 다들 건강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담았습니다.


폐 플라스틱을 업사이클링한 '옥'팬던트



플라옥의 '노란색'은 스팸뚜껑,  '하얀색'은 막걸리병이나 햇반용기 등등이 모여 만들어 내며 '검은색'은 편의점 도시락용기로 만들어진답니다. 한국인 1명이 1년에 배출하는 플라스틱이 88kg이라는데, 그 중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은 많지 않습니다. 오염정도가 심할 경우에는 활용이 어렵기 때문이죠. (분리수거와 깨끗히 씻어서 배출하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랍니다)

사용가능한 플라스틱을 찾아 컬러별로 분류하는 일도 어려웠지만 재료의 무른 정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녹여서 적절한 마블링을 만들어 내는 것도 난관이었습니다.
또한 플라스틱 특유의 둔탁한 질감을 없애고 매끄러운 옥의 느낌을 살리는 과정도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앙증맞은 결과물을 보니 고생한 보람이 들었습니다. 플라옥은 폐 플라스틱조각을 녹여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천연대리석과 보석에서 나타나는 마블링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우연성이 플라옥의 매력이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모양 이라는 차별성을 만들어 줍니다.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 '끈술'


플라옥노리개의 매듭은 흔한 '봉술' 디자인이 아닌, 영친왕비가 쓰던 것과 같은 '끈술' 매듭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끈목을 가닥가닥 동여매 술처럼 만들다 보니, 실이 줄줄 풀리는 일 없이 내구도가 좋습니다. 단, 모두 매듭장인이 수가공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작업시간과 비용이 3배는 더 걸립니다.


한땀 한땀 수가공으로 만들어진 전통노리개

그마저도 전통 매듭 장인들이 연세가 많이 들어 은퇴하시다보니 사방으로 수소문을 해서 가까스로 섭외하는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왜 굳이 생고생하며 만드냐는 핀잔도 들었지만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제품이라고 하면 부실하고 가치없는 제품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볼까봐, 전통장신구를 만드는 것과 똑같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공을 들여 제작하였습니다. 폐플라스틱의 무한한 가치를 재조명 하고 더 많은 업사이클링 제품개발을 촉구하려면, 이러한 고생이 충분히 가치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잉크를 최소화하여 천연접착제로 만든 박스

세상에 있는 모든 박스들은 다 만져본 것 같아요

다 만들고 보니 박스개발도 문제였습니다. 업사이클링의 의미에 반하지 않으려면, 화학접착제가 아닌 밀가루로 풀죽을 쒀서 접착하는 박스를 찾아야 했습니다. 전국의 박스공장을 찾아 미팅한 끝에 드디어 천연방식으로 접착하는 박스를 찾았습니다.




왼쪽 쪽빛 컬러가 예뻤지만, 결국 잉크사용일 줄인 오른쪽 흰박스 선택


박스 접착방식은 밀풀로 정해졌지만, 이번에는 박스컬러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박스에 쓰여지는 잉크 또한 환경오염의 주범이기에 화려한 박스를 쓸 수 없었습니다. 리슬의 브랜드컬러를 담은 쪽빛박스냐, 아니면 잉크사용이 거의 없어 다소 무성의(?)해보이는 흰박스냐 를 놓고 팀원들과 많은 갈등을 했습니다. 선물은 모름지기 화려해야 제맛이거늘.... 

아아, 그래도 환경에 부담을 덜 주자는 취지에서 개발된 플라옥노리개이니, 박스에서 욕심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업사이클링 플라옥노리개와 선물박스

그렇게 최종 탄생한 플라옥패키지 입니다.

업사이클링을 활용한 옥 개발과, 전통방식의 수공예 매듭, 박스에 들어가는 접착제 하나까지.. 모두 환경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정성과 노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친환경' 이라는 표현을 붙일 수는 없을 것 입니다. 패션산업은 '환경에 최소한의 악영향'은 줄 수 있어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소비자의 구매보다 
기업에 모티브가 되는 
업사이클링이 되었으면
리슬 플라옥노리개
리슬 플라옥노리개

리슬 플라옥 텀블벅 펀딩: https://www.tumblbug.com/leesle-plaok

리슬 플라옥 노리개는 1월 초까지만 짧게 텀블벅에서 펀딩이 진행 될 예정입니다. 소비자에게 "착한 제품이네? 구매해야겠다" 라는 설득보다 많은 기업에게 '이렇게도 폐플라스틱을 활용할 수 있구나' 라는 아이디어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어요.



아무리 업사이클링이라고 하여도 버려지는 순간 다시 지구를 병들게 하는 플라스틱이 됩니다. 

기업의 책임은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이 '언젠가 소용을 다 하고 버려질 때 이를 다시 수거하여 활용하는 것' 까지가 될 것입니다.


플라스틱은 500년간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말은 곧 500년이나 되는 활용가치를 가졌다는 뜻이겠지요. 


언제나 환경 앞에 미안한 패션브랜드로서, 자원의 수명이 다 할 때 까지 최대한 활용가치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전환시키는 것 까지의 단계를 고민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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