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로운 Feb 23. 2023

<다음 소희>가 소환한 열아홉의 기억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수능이 끝나고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간 첫 아르바이트는 텔레마케팅이었다. 집에 큰 보탬이 되진 못하더라도 내 힘으로 내가 쓸 돈을 벌고 싶었다. 중앙교육진흥연구소? 이런 그럴듯한 이름을 가진 회사였는데 실체는 중고등학생 학습지를 판매하는 영업 사무실이었다. 친구랑 나는 책상을 하나씩 지정받았고, 그 책상 위엔 유선 전화기와 두툼한 A4용지 더미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초, 중학교 졸업앨범 뒤에 실린 연락처 복사본.


내가 아는 학교부터 모르는 학교까지 부산의 중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집 전화번호가 빼곡히 쓰여있었다. 실장님이라는 아저씨는 졸업앨범 인쇄소에서 건당 5천 원씩 주고받아온 자료라고 했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감각도 언어도 부족했던 시절이었지만, 떳떳하지 않은 거래라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중앙교육진흥연구소입니다. OOO 학생 집이죠? 어머니 되시나요? OOO 학생 이번에 고등학교 올라가죠? 아시겠지만 고등학생이 되면 학습지 하나씩은 기본으로 다 하죠? 두 개씩 하는 친구들도 있구요. 혹시 생각하고 있는 학습지 있으세요? 아아, ‘케이스’나 ‘블랙박스’ 요. 물론 두 개 다 좋은 회사긴 한데... 혹시 ‘총력테스트’라고 들어보셨어요? 저희 연구소는 전국 모의고사 출제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유명하구요, 수많은 전문가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난이도에 맞춰 어쩌고 저쩌고... 저희는 TV광고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어쩌고 저쩌고... 지금 신청하시면 혜택이 어쩌고 저쩌고...”


20년도 더 된 일인데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날까... 이 긴 멘트를 외우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같은 말만 되풀이하다 보면 자동으로 외워져 딴생각을 하면서도 자동으로 뱉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멈칫하게 되고 목이 막히는 구간이 있었으니 다음과 같은 멘트였다.


“OOO 학생이 진도를 잘 나가고 있는지, 어떤 문제 유형을 어려워하는지 저희가 직접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관리해 줄 거예요... 모르는 게 있으면 선생님한테 언제든지 물어봐도 돼요.”


실장님께 물었다.

“여기서 선생님이 혹시 저인가요? 저는 성적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고, 어려운 문제를 물어보면 잘 가르쳐 줄 자신이 없는데...”


“아, 그건 신경 쓰지 말아요. 일단 그렇게 접수되고 나면 사후 관리는 다른 팀에서 할 거니깐.”


다른 팀 같은 건 없었다.


“네... 근데 왜 저를 선생님이라고 말해야 하는 거죠? 그냥 선생님이라는 말 빼면 안 될까요? 부모님이나 학생은 제가 직접 가르쳐 준다고 오해하실 것 같은데...”


“상관없어요. 로운씨는 그냥 오늘 건 수만 맞추면 돼요. 고등학생인거 안들키게 하고.”


처음엔 5시간 동안 맡겨진 통화 업무만 하면 시급으로 계산해 주기로 했는데 어느새 최소 실적 n건이라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한 달간 최소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기본 급여도 못 받을 수 있다는 얘기에 신문광고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고 했더니, 누가 고등학생한테 똑같은 조건으로 일을 시켜주냐며 싫으면 관두라는 말이 돌아왔다.


최소 실적을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그 업무에 능숙해져 갔다. 실장은 로운씨가 마음만 먹으면 잘할 줄 알았다고 이번 참에 급여를 시급제 대신 수당제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수당제는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가 쌓여 훨씬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함께 들어간 친구 경은 이미 수당제를 선택했고 너무나 능숙하게 선생님 목소리를 내며 실적을 쌓아가고 있었다. 실적표를 보니 나도 욕심이 났다. 무언가에 홀린 듯 수당제로 바꾸겠다 했고, 더 능청스러운 연기로 내 실적을 올렸다. 학부모의 욕망과 중고등학생들의 불안을 매개로 쌓은 점수였고, 점수가 쌓일수록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도 쌓여갔다.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2주 정도 흘렀을 거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그만두겠다고 말했더니 아저씨는 아직 한 달을 채우지 못했으니 급여를 줄 수 없다고 했다. 시급제를 선택했다면 최저시급이라도 챙겨줄 수 있지만 수당제를 선택했기 때문에 기본급여도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너무 화가 났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돈을 받겠다고 한 달을 채우는 건 더 못할 것 같았고, 억울한 마음에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집에 있었던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기 시작했다. 전화로 따지다가 분에 못 이겨 택시를 잡아 타고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우리 딸 첫 사회생활이야! 안 그래도 세상에 나가면 더러운 꼴 많이 보며 살아야 하는 애한테! 교육 어쩌고 간판 달고 일하는 사람이 고등학교 졸업도 안 한 애들 데려다가 사기나 치고 말이야! 얼른 돈 줘! 당장! 내가 다 고발해 버릴라니까! “


다음 주에 송금해 주겠다는 아저씨를 현금 지급기 앞에 데려가 보초를 선 다음에야 20만 원 못 되는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아빠는 봉투를 내게 전해주며 네가 처음 번 돈이니 네 마음대로 쓰라고 했다. 평소에는 점잖은 사람이지만 뚜껑이 열리면 눈이 뒤집히고 목소리가 커지는 아빠. 아빠가 그럴 때면 너무 무섭고 싫었는데 그날은 세상 든든했다.


사회적으로 의미있고, 영화적으로 재미있는 영화! -FM영화음악 김세윤




나는 운이 좋았고, 세상은 더 나빠졌다. 고등학생의 노동력을 값싸게 착취하는 것도, 개인정보를 빼돌리는 것도, 보란듯이 합법이 돼버린 세상. 감언이설과 눈속임,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강박 속에서 참으며 버티는 건 늘 약자다. 특성화고를 졸업했다는 카페 사장님은 <다음 소희>를 보고 와서 내게 말했다. “저랑 친구들이 겪었던 일들이라 너무 많이 울었어요. 나는 어떻게 소희가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생각했어요.” 우리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안 좋은 상황, 더 나쁜 사람, 더 절망적인 시스템…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것들. 우리가 ‘운’이라고 말하는 것 뒤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공’이 숨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땐 미처 몰랐던 누군가의 희생과 용기가 지금의 나를 살린 것일지도. 반면,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싶은 마음, 쉽게 외면하는 얼굴들 사이로 누군가의 ‘불운’의 씨앗이 커져 가고 있을지도.


#영화 #다음소희 #역주행응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