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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팍 Sep 05. 2023

백수 생활을 청산하다.

백수 탈출, 그 혼돈의 3주

취업을 한지 3주가 지나고 이제 출근 4주차에 접어들고 있다.

주 2회의 재택근무 때문에 아직 사무실이 어색하기만 한데,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니 떨떠름하기만 하다.


지나간 시간과는 별개로 아직 월급을 받지 않은 상태라, 일정만 직장인일 뿐, 거의 백수나 다름없는 재정 상태이다.

그말은 즉슨, 백수와 직장인의 과도기인 것.

감사하게도 회사에 출근한 날은 무조건 밥과 커피를 법인카드로 사고 있어서, 전 직장에서처럼 식비에 허덕이지는 않고 있다.

대신 직장 생활의 보상 심리로 이것저것 눈이 돌아가는 것들 투성이라, 최근에는 직접 8월 급여 지출계획서까지 짰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는 F&B 업계의 신생 개발팀에 속한 유일한 프로덕트 디자이너이다. 개발팀의 리더인 CTO님조차 8월 1일에 첫 출근을 했다고 하실 만큼 따끈따끈한 조직이다.

CTO님은 연차도 많으시고 경험과 노련함이 많으신 분이셔서, 아무것도 구축되지 않은 상태의 팀이지만 든든하게 팀을 서포트해주고 계신다.

소위 ‘서번트 리더십’이라고 하는 것을 추구하신다고 하는데, 일전의 회사에서는 수직적인 결정을 내리시던 대표님과 사뭇 다른 리더셔서 신기함을 느끼고 있다.


CTO님의 리더관 때문인지, 팀의 신입으로는 최초인 나는 지난 3주간 꽤 둥기둥기 칭찬과 격려를 받을 수 있었다.

신입 디자이너 답지 않은 적극성으로 중요한 프로젝트에 제안서를 발표하고 진척도를 꽤 올리기도 하고 - CTO님은 2달을 단축시켰다고 말씀하신다 - 직접 프로젝트 진행 계획서를 세우고 담당자님과 미팅을 잡기도 하고 있다.

이 모든 자발적 업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순도 100% 스타트업인 이전 직장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비즈니스의 맥락을 빠르게 파악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할 줄 아는 직관력과 통찰력은 나의 가장 큰 장점인데, 이런 장점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사실은 지난 10개월 간, 회사에서 그토록 빠르게 퇴사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능력에 대해 많이 자책하고 괴로웠었다.

이 괴로움은 단순히 꾸짖음을 받아서나, 나의 작업물과 나를 동일시해서가 아니라,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의 내 가치가 없는게 아닐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몇 달전 작성한 글 <맞아 나 못해> 편에서 밝혔듯, 나는 사실 UI 디자인에 특화된 디자이너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콘텐츠 디자인에는 더더욱 장점을 발휘할 수 없는 편이다.

나의 장점이 제대로 발휘되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성과를 자발적으로 낼 수도 없는, 어쩌면 현 직장보다도 딱딱했던 이전 직장은 내게 이런저런 추억과 레퍼런스가 되긴 했으나 내가 활약할 수 없는 곳이었음은 자명하다. 대표님도 나와 마지막 면담에서 그렇게 말씀하기도 했고.


그런 측면에서 현 직장은, 마치 지난 직장에서 못다한 한을 다 풀으라는 듯이 아무것도 구축되어 있지 않은 환경이다.

자발적인 태도는 권장되고, 나의 직관력과 통찰력은 업계의 흐름을 빠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이는 곧 타 부서의 업무 파악에도 도움이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입사 후 4주차인 현재, 적어도 우리 팀과 바로 옆 팀의 전체적인 사업 진행에 대해 큰 틀을 잡고 이해하게 되었다. 아직 그밖의 부서에서 각 업무의 담당자가 누구인지, 어떤 프로세스로 타 부서가 일하고 있는지 등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최소한 내 업무에 필요한 이해는 걸림돌 없이 착착 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모두가 나의 업무 협조 요청에 즐겁게 응답해주시고 친절하게 협조해주고 계신다. 마음 놓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착착 진행시켜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정말 즐거울 것 같다.

회사에 전력을 쏟아붓기를 권장하는 곳도 아니어서, 체력이 쉽게 방전되는 내게 딱이기도 하다.


무엇이 바뀌지 않았나?


한편 나의 건강은 나날이 위태롭다.

필라테스를 그만둔 것이 4월이니, 이제 필라테스를 한 기간만큼의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낸 셈이다.

근육을 마치 빨간 포션이라도 되는 양 계속해서 소비하다보니, 이제는 퇴근 후에는 몸이 비실비실해서 움직이고 싶지 않을 지경이다.

겨우겨우 몸을 이끌어 움직이기라도 하면, 특히 헬스장에서 1시간 안되는 시간동안 운동이라도 하면 그 날은 집에서 바로 떡실신한다.

필라테스를 재등록하기 위해 월급일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금주 금요일이 나의 첫 월급일이다.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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