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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전 Mar 09. 2020

수레바퀴 아래서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곳일까

수업 시간의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책이 생각난다. 이 책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로, 슈바츠 발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우수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한스 기벤라트라는 소년이 엄격하게 규격화된 제도권의 교육제도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신랄하게 보여준 글이다. 


어린 시절 이 책을 읽었을 때, 그 줄거리가 내게 크게 와 닿지는 않았지만, 결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다. 나는 그때 비교적 모범생이었고, 학교 교육이 나를 포함한 우리를 올바르게 키우고, 밝은 미래를 약속해 준다고 믿었다.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개인’의 잘못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한스 기벤라트의 삶은 내게는 단지 안타까운 실패자의 이야기 정도로만 여겨졌다.


지금껏 교사로서, 담임으로 처음 얼굴을 마주하던 시간이 되면 아이들에게 늘 해오던 말이 있다. '1년 동안 우리 모두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루 중에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려 8시간으로 하루의 삼분의 일이나 차지하고 있어, 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의 반을 학교에서 보내지 않는가. 만약 학교에서 즐겁지 않다면 우리의 청소년기는 온통 불행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덧붙였다. '게다가 수업에 투자하는 시간은 무려 예닐곱 시간이다. 이 시간을 자거나, 멍청하게 있거나, 쓸데없이 장난을 치는 일 등으로 의미 없이 보낸다면 우리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통째로 쓰레기통으로 던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순간에는 아이들도 똘망똘망하게 쳐다보며 듣고 있다. 아마도 낯선 선생님이 처음 하는 말이라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하루만 지나면 곧 아이들의 원래의 일상사로 돌아가서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일 년을 보낸다. 


수업시간의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씩 가슴이 답답하고, 혹은 자괴감이 밀려올 때도 있었다. 아이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그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 여기에도 한스 기벤라트가 앉아있는 것은 아닌지.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김이섭 역, 민음사



교육정책 입안자들의 책무성

나는 내가 서 있는 현실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질 때면 그 이유가 주로 나에게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노력하면 그 현실이 개선될 것으로 믿으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나름 긍정적이라는 점도 있지만 뭔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좁다는 말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나라 교육계는 교육과정 개정의 폭풍 속에서 몇 년째 몸살을 앓고 있다. 7차 교육과정, 2007 개정 교육과정, 2009 개정 교육과정을 거쳐 지금은 2015 개정 교육과정 시기로 들어서고 있다. 이와 같은 혼란 속에서 교사들도 우왕좌왕하며 실수도 거듭하면서 현장에서 폭풍에 맞서고 있다. 아니, 맞선다기보다는 그냥 변화의 폭풍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고 해야 옳다. 단지 불평을 하면서 말이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교사들은 교육과정에 대하여 총론이든 교과 교육과정이든 별반 관심이 없었다.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주로 자신이 맡게 될 교과목, 시수, 교과서 내용 등 교사 자신의 이해와 관련된 부분에 한정되었고 <교육과정> 분야에 대한 내용을 배우기 이전에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경험으로 생각해보면, 교사가 교실 수업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실제 교재 연구와 같은 사전 준비를 할 때, 수업을 가치 지향의 행위나 실천으로 생각하기보다는 효과적 운영을 위한 방법적 기술로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이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집단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01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미국 교육개혁을 위한 계획으로 학업 낙오자 방지법(NCLB:No Child Left Behind)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높은 표준 성취기준, 학업성취도 검사, 책무성 강화의 새로운 시대를 약속하면서 단 한 명의 학생도 낙오되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10년간 미국 공교육 개혁은 학생의 성적에 대한 일선 학교의 책무성 강화와 학교선택제(Charter School)를 핵심으로 실시되었다. 그러나 그 후의 사태는 우리도 겪고 있는 일련의 현상들로 점철되었고 비판이 쏟아져 나왔으며, 이 개혁을 적극 지지했던 다이앤 래비치도 마침내 학업 낙오자 방지법의 실패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학업 낙오자 방지법이 학교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잘못된 가정 – 예를 들면, 교사나 교장에게 수치심을 준다면 성적이 오를 것이라는 가정 - 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처벌적 법안이며, 따라서 시험은 교과과정과 교육 활동의 대체물이 아니며 아이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고, 교육자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고, 학교를 폐쇄하는 전략으로는 좋은 교육을 얻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동시에 미국의 뉴욕에서도 학업 낙오자 방지법과 발을 맞추어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과 교육장 조엘 클레인 주도하에 아동 우선 계획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학교현장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성취도 시험의 실시는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났던 성적조작과 같은 부작용을 낳았으며 학업 성취도는 오히려 더 낮게 나오기도 하였다. 즉, 학교의 개혁은 일제고사를 실시하거나 거버넌스 구조를 개혁하는 것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이렇듯 미국의 실패한 개혁을 여전히 답습하며 우리를 힘들게 하였다. 지금은 교육혁신의 바람이 불어와 일부 시도에서는 전국단위의 성취도가 폐지되어 부분적으로 표집학교 중심으로 치르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각종 시험이나 입시 결과에 따른 학교 간의 비교, 교원 및 학교평가와 교원성과급제 같은 시장의 논리가 학교를 지배하고, 우리들을 지배하고, 바로 벗어나기 힘든 굴레가 되어 ‘나의 수업과 학생들’을 지배하고 있다.


오히려 교육정책입안자들에게 학생과 교사들의 삶에 대한 책무성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흔들리며 피는 꽃

내게도 반성할 여지는 많았다. 여전히 수업 준비를 할 때 교과 교육과정의 차원에서 교육과정의 기본 지침이나 아이들이 가져야 할 삶의 지향점에 대하여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좀 더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지, 아이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지, 수업에 협조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등이 먼저였다. 그리고 수업 후 뿌듯했던 순간은 내가 수업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잘했다고 느꼈던 순간으로 아이들의 변화에는 별 무관심했던 것 같다.


나 자신도, 아이들이 학업성취도 평가를 잘 보기를 바라고 시험공부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기를 바라고 수업시간에 그저 순종적으로 잘 받아들이기만을 바랬다. 정해진 수업의 내용을 새롭게 재구성해볼 엄두도 내지 않았을뿐더러 정해진 내용을 모두 가르치려고 너무나 애쓰고 있었다. 수업 내용을 아이들이 선택하게 하는 행동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때로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너희들이 얼마나 힘든지 다 이해한다. 하지만 어쩌겠니? 한국에 태어난 이상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모두 너희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 것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자. 등등. 이쯤 되면 내가 교육학에서 배운 내용들은 모두 허공에 흩날려 버리고 실제 교실 수업에서는 늘 하던 대로 가르치고 있어, 나의 배움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서로 겉돌기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에 특히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어떤 ‘주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한계 때문일지도 모른다. ‘교실 수업’에 계속 집착을 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그 영역은 ‘나’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교사들의 개인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주어진 틀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시선을 넓힐 필요가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에서 시작하더라도 교사 개인에게 주어진 어떤 '틀'과 각자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분명 아이들에게 '진정한 배움'이라는 멋진 경험을 건네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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