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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dy Aug 11. 2022

회전목마

[Demolition, 2015] 데몰리션

[Demolition]은

한 사람이 아프게 되고 아픔으로부터 아픔까지의 연속에 빠지고, 그리고 다시 나아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영화는 주인공 아내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괜찮니? 지금 어디야?” 아버지가 그에게 문자를 보낸다. 장례식을 포함한 그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도 그는 도무지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는 방으로 들어와 편지를 쓴다. 대상은 ‘챔피언 자판기 회사’. 병원에 있을 당시 고장이 나 그에게 초콜릿을 내놓지 않았던, 정말 짜증스러웠던 그 자판기의 회사에 항의한다는 이유로.



하지만 편지 내용은 단순한 항의가 아니다. 먼 과거부터 혼란스러운 현재까지. 그는 평소 자신이 꾸려왔던, 아니 꾸려졌던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서술한다. ‘그가 갑자기 편지를 쓴다.’ 라지만, 어느 부분에서도 딱히 의문점이 들진 않았다. 그 순간 그가 편지를 쓰는 행위에 자연스럽게 들어선 부분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오히려 그는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했다. 그 어떤 것이든 무언가를 처리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그건 감정도 마찬가지다.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 글로 적어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말하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되지만. 먼저 글로 풀어내 보았던 말들은 훨씬 군더더기가 없고 명료할 수 있으니까. 꼭 이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그렇게 까진 생각하지 않았는데....’하는 후회를 줄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는 멍한 상태가 유지된다.

그가 멈추지 않고 그저 자신의 삶을 평소 리듬대로 바쁘게 굴리기 때문에 그의 멍함은 계속되고 심해진다. 그리고 반면, 그에게 평소 눈에 띄지도 않았거나 혹은 그가 스스로 그저 무심하게 보았다고 생각한 것들이 갑자기 그의 눈에 하나 둘 들어온다. 그것들에 과하게 집중하고 의미 부여하며 집착도 한다. 스스로도 너무 갔음을 인지하기도 하지만?. 영화에선 이 부분이, 평소에 데이비스가 그의 삶에서 무심하게 그저 두었던 것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 장면에서 데이비스가 어쩌면 더 위험한 상황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극히 나의 주관과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지만.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밑 빠진 독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의 모든 것을 지배했던 적이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흘러가는 세상에서 결국 난_그 밑을 들켜버리고 아무것도 남아있게 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까지 하면서 움츠러들었었다. 그때 나도 평소엔 별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굳이 집중해 보지 않았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고 이에 새로운 의미부여를 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들이 다 직업과 연관되어 보였다. ‘저것도 만든 사람이 있을 텐데. 어떻게 저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결국 그 사람은 결과물을 내보였는데, 난 어떤 결과물을 낼 수 있지. 그렇다면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 어쩌면 이 생각이 꽤 생산적이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보이는 모든 것들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 종일 수없이 드는 ‘쓸데없는?’ 생각들은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고 날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종일 공부를 하는 것처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결국 ‘당장의 직접적이고 생산적인’ 생각들을 할 수 없게 되어 아무런 생각 없이 잠자는 시간만 불안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었다. 그때의 난 적어도 내 삶에선 제일 위험한 상태였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 지금은 이렇게 객관적으로 그때의 날 서술할 정도로 성장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난 이 장면을 보고 그때의 내가 연상되었다. 그간 보지도 않았던 것들에  갑자기 너무 과하게 의미부여를 하고 집착하는 그가, 지극히 힘든 상태처럼 보였다. 많이 힘든 그가 정말로 쉼을 가지고 돌아봐야 하는 건 당장의 자기 자신뿐인데, 또 다른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의 연속과 집착을 빌미로 스스로와 직접적으로 대면하기를 회피하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를 계속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가는 과정 말이다. 영화는 그 과정에서 그럼에도 끊임없이 발버둥 치며 나아가는 모두를 그린다.



“talking to someone, I mean, professional?” “자네 혹시 상담받을 생각 없나? 전문가한테”

‘당신 아버지는 내가 미쳐간다고 생각하셔’


두 사람의 말과 감정이 모두 이해가 되는 부분이자 내가 보다 정신학에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싶어진 부분이다. 데이비스 곁에는, 딸을 지극히 사랑하고 그런 딸의 주위를 아낄 줄 아는 성숙한 어른이 있다. 장인어른인 필. 필이 데이비스에게 ‘상담’이란 단어를 전혀 섣부르게 꺼내지 않았음을 영화의 전개 과정에서 알 수 있기에, 데이비스가 그 말에 ‘미쳐가다’라고 단순하게 떠올린 부분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데이비스의 심정도 이해되었다. 내가 데이비스라도 과연 그 순간 그보다 더 속 깊게 받아들였을까, 그건 장담하지 못한다. 자신도 스스로 무슨 상태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금 넌 어딘가 치료가 필요해 보여’라는 말을 들으면 반발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신과 관련해 붙이는 ‘아픔’이, ‘감기’와 같지만, 막상 직접 겪고 스스로 알게 되기 전까진 다르게 들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정신적 치료와 감기 치료는 정말 다른 점이 없음을 안다. 감기도 언제였을지 모를 우연을 통해 일어나는 것처럼 정신적 아픔 또한 우연과 우연이 겹쳐 찾아온다. 

지극히 뻔해 보일 수 있는 대사 “Do u have anyone to talk to?”. 이 대사는 영화에서 순간 나를 바로 울컥하게 만든 포인트였다. 이에 난 ‘talking to someone’이란 접근은 누군가에게  꽤 도움을 주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작점을 함께 열고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 내가 더욱 공부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순간에 적합한 대처를 해주기 위해선 무엇이든지 많이 알고 느끼는 게 좋겠다는 얕은 판단을 한다. 



내가 이 영화의 꽃이라 생각하는 부분은 ‘데이비스와 크리스의 관계성’이다. 그들의 첫 만남은 크리스의 가시 돋음 속에서 데이비스의 승리로 끝난다. 크리스 옆에서 데이비스는, 그의 상태와 상관없이, 겪어 온 시간과 경험을 무시 못 하고 보이는 늠름한 어른의 모습이 알게 모르게 많다. 데이비스의 모습을 보며 그처럼 나도, 말을 함부로 쓰는 아이에게 기막히고 멋진 방식으로 충고를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 졌고, 남들에겐 선뜻 들어내지 않은 고민을 용기 내 들어내는 아이에게 부담 없고 담백한 방향성을 툭 던져 그 순간 아이의 고민을 가볍게 만들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둘은 좋은 친구가 된다. 난 데이비스와 캐런의 관계보다도 그와 크리스의 관계성이 더 돋보였다. 둘은 서로에게 적당한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담백하게 보여주며 자신을 드러낸다. 어쩌면 서로의 관계성 아래서 각자 비교적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스스로를 마주하고 돌아보는 것 같았다. 마지막쯤 크리스가 데이비스에게 보낸 편지와 선물의 센스는 지금 생각해도 기분 좋은 웃음이 난다.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회전목마와 그것을 타며 즐기는 사람들의 웃음, 그리고 그걸 보며 치유받는 등장인물들. 나도 영화에서 말하는 ‘토 나오는 롤러코스터’만 찾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그런 나도 놀이동산에 없는 회전목마는 상상할 수 없다. 에버랜드에서 주문한 치킨을 기다리면서 회전목마 맞은편에 있던 의자에 앉아 멍하게 회전목마를 타는 사람들을 구경했던 때가 있다. 아직도 그 순간이 나에게 이렇게 선명히 그려지는 것을 보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회전목마’였음이 너무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아마 난 이 마지막이 생각나 다시 영화를 찾아 돌아오는 순간들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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