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성시경 연말콘서트
돌아보면 한 명쯤 있을 것 같았다.
우리 학교는 멋진 공대생이 많기로 유명했는데, 그중에 키 크고 목소리 좋은 ‘성시경’ 같은 선배 한 명쯤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좋았나 보다. 노래도 노래였지만, 큰 키와 목소리 그리고 안경 뒤 살짝 처진 눈웃음을 보면, 마치 조만간 사랑하게 될 미래의 남자 친구를 보는 것 마냥 가슴이 콩닥콩닥했더랬다.
유튜브를 좋아하는 남편이 어느 날 성시경 콘텐츠를 보여주며 함께 보자고 한다.
“당신이 좋아하는 성시경이야.”
오잉. 난 요즘 성시경 이야기 한 적 없는데.
그런데 남편이 더 재미있게 본다. 알고 보니 맛있는 음식점을 소개해주는 맛집 콘텐츠였다. 맞다. 성시경은 먹는 것에 진심이라고 했다. 그래서 예전에 신동엽과 요리프로그램도 찍었고, 인스타그램에 요리 콘텐츠도 올린다고 했다. 맛집 소개는 그에게 어울리는 새 옷을 하나 더 껴입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그의 음악을 여유 있게 들어본 게 언제 적인가. 음악을 들으며 설렜고 아팠고 아렸던 날들이 있었지. 아이들 키우며 음악을 잊고 살다 보니 어느새 남편이 성시경을 좋아하며 그의 방송을 챙겨보는 날도 온다.
얼마 후, 남편이 성시경 콘서트에 같이 다녀오자고 한다.
“당신이 좋아하는 성시경이야. 당신을 위해서 예매했어(씨익).”
나를 위한 게 아닌 것 같은데.(장난) 고맙다. 요즘은 예매도 하늘의 별따기라던데. 챙겨줘서 고마웠다. 우리가 공통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그 사람의 음악을 향유할 수 있게 된 것도 고맙다.
사실 우리 부부는, 성시경의 음악을 많이 그리워했었다. 작년 이맘때쯤 <놀면 뭐 하니?>에서 성시경이 피아노를 치며 본인의 음악 몇 곡을 부른 적이 있다. 태어난 지 7개월 조금 넘은 둘째가 매일 밤 새벽까지 울고 자고 울고 자고를 반복하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던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추억의 음악을 들으며, 귀가 사르르 녹아내렸고, 입에서는 언제 외웠는지도 모르는 가사가 술술 나와, 그야말로 힐링의 시간을 가졌었다.
“나중에 코로나 지나가면 우리 성시경 콘서트 한번 가보자.”
남편이 그냥 분위기에 취해 흘리는 말인 줄 알았다. 그걸 이렇게 훌륭하게 지켜낼 줄은 몰랐다. 덕분에 그 목소리를 (드디어) 실제 라이브로 듣게 되었다.
성시경은 버터왕자였다. 나는 그 버터왕자를 좋아했다. 나와 같은 20대 여성팬을 제외하고는, 비호감이라 생각했던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버터왕자가 어느 순간 백만 유튜버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사랑받고 있다. 그의 팬으로서 기분 좋은 일이다.
백만 유튜버답게 콘서트도 매우 유쾌하고 경쾌했다. 관객의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보여서 새로운 매력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음악이 정말 감동이었다. 대형 스크린에 띄워준 가사 한 줄 한 줄이 예술이었고, 거기에 멜로디를 입혀 그의 목소리로 깊이깊이 요리해 내었다. 어렸을 때 들었던 멜로디, 가사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눈물이 쏙 빠지도록 한 소절 한 소절이 감동이었다.
때로는 이 길이 멀게만 보여도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흘러도,
모든 일이 추억이 될 때까지
우리 두 사람 서로의 쉴 곳 이 되어주리.
아이 둘을 키우며, 함께 지치고 함께 힘들어하고 안쓰러워하는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렸다. 키운 날보다 키울 날이 켜켜이 쌓여있기에 앞으로 닥칠 시련도 서로 손잡고 견뎌내야 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느끼는 측은지심에, 아내를 위해 어려운 예약에 성공했다는 기특함에, 여전히 나를 아껴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에, 오늘은 <두 사람>의 가사가 예전처럼 그저 사랑이야기로 들리지가 않았다.
백만 유튜버가 된 버터왕자 덕분이다. 여전히 멋지지만 한껏 여유롭고, 멋진 척하지 않아도 매력적인 그의 음악 덕분에 우리 부부는 또 한 번 손 붙잡고 서로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또다시 가지고 싶은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