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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홈 Jan 06. 2020

김밥보다 맛있는  엄마의 간장게장

"엄마의 손맛"

수산 시장에 갔다가 꽃게를 만났다. 크기는 딱 어른 손바닥 만한데 겉껍질이 아주 딱딱하게 생겼다. 저걸 먹으려면 이빨 꽤나 튼튼해야겠다 싶다. 해산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나에게도 유일하게 좋아하는 밥도둑이 하나 있다. 바로 엄마가 담가주는 간장게장이다. 이것만은 꼭 우리 '엄마표'여야 한다. 간혹 간장게장으로 유명한 식당에 가서 주문해 먹을 때가 있는데, 영 시원찮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그 간장게장 맛이 안 난다. 너무 달거나, 때로는 게 살이 너무 삭았다.


간장게장은 싱싱하게 살아있는 게를 사다가, 간장 한 병을 쏟아붓고 하루쯤 묵혔다가 팔팔 끓여 붓는 과정 한 번을 더 거쳐야 한다. 그렇게 한 후 먹어야 제맛이다. 먹는 시간도 중요한데,  만들어서 하루쯤 있다가 먹어야 가장 맛있다. 며칠 더 두면 너무 짜고 게살이 다 삭고 녹아버려 통통한 '생'게살을 느낄 수 없다. 딱 적당할 때 먹어야 하는데 아낀다고 며칠 더 두었다가는 낭패다. 아끼는 게 아끼는 게 아닐 때가 그때다.


간장게장! 엄마가 살아계실 때 꼭 배워두고 싶은 엄마의 요리다. 엄마는 별다른 재료 없이, 앉은자리에서 뚝딱 만들어 내는데, 나는 재료 고르는 것만도 하세월이다. 결혼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한참 요리를 하던 때, 엄마가 쉽게 만들던 간장게장이 생각나서 마트에 갔었다. 엄마가 사 온 꽃게는 싱싱하고 큼지막했는데, 마트 어디에도 그런 꽃게는 없다. 엄마가 꽃게를 잘 고른 것인지,  특별한 맛을 내는 뭔가를 더 집어넣은 것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면 언제나 똑같은 답이 되돌아온다.


 "뭐 특별히 넣은 거 없는데? 그냥 만들면 돼"


그냥 만들어서는 전혀 그 맛이 안 난다는 게 문제다. 누워서 떡먹기처럼 만들어내는 간장게장이 엄마에게는 무척 쉬워 보이나, 내게는 너무나 어렵다.





아이들을 터울 지어 둘 낳고 두 아이가 커가는 동안 거의 다 내 손으로 밥을 해 먹였다. 우리 아이들도 엄마가 해주는 밥을 제일 맛있다고 한다. 요리 솜씨 없는 엄마의 요리를 잘 먹어줘서 고마운데, 맛있다고 칭찬까지 해주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쓰윽 올라간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 내가 가장 쉽고 간단히 만들어 주는 게 김밥이다. 야채 몇 개 데치고 볶아, 햄 하나 끼워주면 마냥 좋다고 먹는다. 그 누군가에겐 김밥이 쉽고 간단한 요리가 아니다. 준비해야 할 야채의 개수만도 여러 개다. 야채를 다듬고 그걸 대충 데치고 볶아 준비하는 시간도 꽤 걸린다. 그런데 만들어놓으면 뭐 먹을 것도 없는 '딱' 한 덩어리 김 뭉치다. 이걸 만들려고 이 긴 시간 준비했단 말인가? 허탈하다. 손만 많이 가고, 다 만들어 놓으면 수고한 노력에 비해 먹을 건 그닥 없어보이는 김밥을 몇번 해보고 나서 묘안을 생각해내었다. '김밥에 들어가는 각종 야채는 꼭 다 넣어야 할까?' '이참에 김밥은 으례히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 틀을 내가 한 번 '팍팍' 깨 봐?' 그 생각이 머리 속을 스치자마자 야채 딱 두개 데치고 볶아 아이들 앞에 내놓았다. 뽀얗고 기름진 베이컨도 함께.



이만하면 아이들도 만들 수 있을만큼 아주 간단하고 쉬운 버전이다. '너희들 이 엄마의 김밥 만드는 솜씨 한번 볼래?"그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신들린 사람처럼 휙! 한 줄 말아내었다. 아이들은 이 날 그 전에 먹었던 어떤 김밥보다 훨씬 많은 김밥을 앞다투어 입으로 가져갔다. 야채 딱 두 개에 햄 한 개만 넣고 만드는 약식 김밥은  시간도 오래 안 걸리고, 아이들도 좋아한다. 어느 날 우리 딸이 나에게 김밥을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온다면 나도 엄마처럼 똑같은 대답을 해줄 것 같다.


"그냥 만들면 돼."


우리 엄마에게 간장게장은 내가 만드는 김밥처럼 간단하다. 더 늦기 전에 꼭 한 번은 엄마와 함께 수산시장에 가보고 싶다. 그래서 꽃게를 고르는 그 순간부터 함께 해야겠다. 엄마표 간장게장을 만들기 위해 엄마가 거닐었던 그 과정을 나도 같이 걸어보고 싶다. 가져온 꽃게를 씻어 그 자리에 앉아 가볍게 간장게장 한 통을 만들어내는 그 손맛을 내 손에 깊게 새겨두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언젠가 엄마를 추억 속에서 소환해야 될 때가 온다면 수산시장에서 꽃게를 사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엄마도 이제 연로하셔서 우리들을 키우고 시집 장가보내기 전만큼 요리를 하지 않으신다. 엄마의 간장게장 먹기는 더 힘들어졌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엄마의 간장게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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