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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홈 Jan 30. 2020

거대 바퀴벌레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바퀴벌레 소탕작전

바퀴벌레가 출몰하고 있다. 신기하게 낮에는 안 나오고 모두 다 잠든 저녁에 나와 돌아다닌다. 행여라도 그 밤에 그 녀석과 내가 마주한 날은 내 쪽에서 위기감을 더 크게 느낀다. 어두운 밤이고 도와줄 사람 없이 온전히 나 혼자다. 당연히 내가 더 불리하다. 내가 더 쫄아붙는다. 생긴 것도 심난하게 생긴 것이 크기는 숨 막히게 크다. 크기에 한번 압도당하고, 생김새에 기가 죽어버리는 바퀴벌레 앞에서 당당해지기엔 무리가 있다. 바퀴벌레가 심리적 우위인 마당에 언제부터인가 집에서 출몰하고 있으니 온 신경이 곤두선다. 아무래도 음식 있는 곳에서 서식할 가능성이 많아 식탁 외 장소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도록 가족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하지만 이 녀석들이 어디선가 계속 나온다. 끊임없이 나온다. 바퀴벌레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어느 날 밤, 혼자 주방으로 나갔다가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바퀴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 내 움직임을 감지했던지 죽은 듯이 꼼작 않고 있었다. 일단 내 몸을 있는 대로 뻗어서 냉장고 뒤편에 있던 물건 중에서 손에 잡히는 거 하나를 무작정 손에 들었다. 눈으로는 그 녀석을 살피랴 안 그래도 작디작은 내 몸을 최대한 길게 펼치노라니 밤에 무희가 따로 없다. 아무거나 손에 들고 겁을 잔뜩 먹은 채  벽에 붙어 미동도 없는 그 녀석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공격이래 봐야 벽에 붙은 녀석을 살짝 건드린 정도였다. 벽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에 뒤집어져 바둥거리는 녀석을 보니 소름이 돋는다. 커도 너무 크다. 이 정도면 식용으로 먹는 다고 했을 때 한 입 가득할 크기다. '혹시 바퀴벌레 먹는 나라도 있으려나?'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상황을 보아하니 내가 저 녀석을 잡는 게 아니라, 저 녀석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해오지만 깊게 숨을 들이쉬고 벌레 잡는 도구에 불을 켜고 그 녀석을 지져본다. 날개 밑에 달린 다리 몇 가닥에만 전기가 올라 살짝 타는 냄새가 날 뿐 이 녀석은 아예 정신 줄 제대로 놓고 버둥거린다. 그러더니 냉장고 밑으로 전속력으로 돌진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진이 다 빠진다. 이렇게 허탈할 수가. 내가 저 녀석보다 조금 더 용감해졌더라면 소탕할 수도 있었을 텐데 너무 겁을 집어먹었나 보다. 그렇게 아쉽게 그 녀석을 놓친 후 내 신경은 계속 냉장고 근처를 주시하고 있었다. 



며칠 뒤, 가족이 모두 외출했다가 들어온 늦은 저녁이었다. 꺼져있던 집안에 불을 밝히고 주방으로 가던 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아주 신나게 돌아다니는 바퀴벌레 한 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가족 모두 집에 있는 상황이니 오늘은 내가 심리적 우위다. 혼자가 아닌 것만으로도 이렇게 용감해지다니. 벌레 잡는 채를 가져다가 녀석을 덮치고 빗자루로 그 녀석을 쓸어 담아 채 위에서 아예 바비큐를 만들어버렸다. 단백질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나름 바퀴벌레를 가볍게 소탕해버려 가벼운 마음으로 문 하나를 열었다가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거대 바퀴벌레 한 마리가 툭 떨어지더니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이다.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얘들아~ 엄마 좀 도와줘. 바퀴벌레다. 바퀴벌레."


"이 녀석을 잡으려면 우리가 연합작전을 펼쳐야 해. 각자 자기 자리를 지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대로 눌러. 냉장고 밑으로만 들어가게 두지 마. 며칠 전 날개 다리 다 부러진 바퀴벌레가 저 밑으로 들어갔다고. 이번엔 놓치면 안 돼." 


큰 아이가 빗자루 하나를 들고, 작은 아이가 대걸레를 들고, 나는 벌레 잡는 채를 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바퀴벌레를 한쪽으로 몰아 셋이 한꺼번에 덤빌 작정이었다. 크기에 기세가 눌려버리긴 했지만, 작전에 따라 셋이서 동시에 바퀴벌레 몰이를 하니, 바퀴벌레는 독 안에 든 쥐였다. 나의 지시에 따라 두 아이는 적절하게 신속하게 대응을 잘해주었다. 녀석이 냉장고 밑으로 들어갔지만 우리는 빗자루를 집어넣어 다시 나오게 했고, 냉장고 뒤쪽에 붙어 숨죽이고 있는 녀석을 다시 끌어내려 재소탕 작전을 펼쳤다. 녀석은 더 이상 도망갈 구석이 없었다. 제아무리 거대 바퀴벌레라도 셋이서 덤비는 데는 재간이 없을 터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바탕 난리를 쳐가며 바퀴벌레를 성공리에 굴복시켰다. 바퀴벌레가 우리 앞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때 우리 집 큰 아들 녀석은 호기롭게 장갑을 끼고 휴지를 들고 바퀴벌레를 잡아 변기 속에 넣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잘 자고 일어난 아들은 어젯밤 일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바퀴벌레 잡는 거 진짜 재미있더라." 


바퀴벌레 잡는 일이 아이들에게 한바탕 즐거운 놀이로 기억되는 한 우리는 바퀴벌레보다 심리적 우위에 있다.


"바퀴벌레야, 니들 이제 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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