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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하 Jan 14. 2024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난 인연들

사는 게 지쳐서 독일 여행을 떠났다.



오스트리아 디저트, Apfelstrudel (아펠슈투루델)

일주일 간의 베를린 일정을 끝내고 오스트리아로 넘어갔다. 입사하고 처음으로 길게 떠난 휴가 기간 동안 베를린 한곳에만 머무른다는 것이 아까웠기 때문에, 친구들과는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고 오스트리아로 넘어갔다. 비엔나는 어릴 적 8살 때 처음 가보고, 성인이 되어 처음 가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에 대한 기억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왜 비엔나로 행선지를 택했는가 하면 - 에곤 쉴레의 도시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예술가들 중 에곤 쉴레를 좋아한다. 뭉툭하지만 날카로운 선이 강렬해서, 유려한 다른 화가의 그림들에 비해 머리에 깊이 각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에곤 쉴레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자세하게 쓸 것이기 때문에 차치하고 비엔나에서 만난 순수한 두 친구 Shirley와 Jolie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친구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베를린은 아직은 기댈 구석이 남아 있는 도시였다. 지도 없이 돌아다녀도 가야할 곳이 정확하게 어디인지 알 수 있었기에 고향이라는 별명은 거창하지만 조심스럽게 마음의 고향이라고 불러본다. 하지만 비엔나는 달랐다. 새롭고 신선한 공간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도시에 정을 붙이기 위한 쉬운 방법은 호스텔에서 비엔나의 매력을 보고 찾아온 각지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홀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함께 하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에 4인 도미토리에서 2박 3일 간 머무르며 새로운 인연 만나기를 기대했다. 


도미터리에서 나는 벙크 베드의 2층 침대를 사용했고, 1층 침대를 쓰던 미국에서 온 Shirley가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었다. 도미터리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런저런 대화를 걸어왔다. 미국인들은 스몰토크 문화에서 자라온 터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흥미롭다는 듯이 말을 잘 건넨다. 내가 짐을 풀고 있었을 때도, 셜리는 비엔나에 왜 왔는지부터 시작해서 비엔나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여러 질문을 던졌고, 대화를 나누다 그녀가 이틀 후에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음 날 우리는 비엔나의 마지막 날을 재밌게 즐겨보자며 Prater Park를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Prater Park 일행으로 방을 같이 쓰던 영국인 Jolie가 있었고, 이렇게 3명이서 걸스나잇을 계획했다. 



함께 프라터 파크를 돌아다니다 보니 알게 된 것은 그들은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이었다는 거다. 나는 만 28세였고, Shirley는 만 23세, Jolie는 만 18세였다. 어쩌다 보니 20대의 초입에 들어선 사람, 절반을 달린 사람, 그리고 30으로의 도약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난 셈이다.


각자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는 다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Jolie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다며 입학을 미루고 갭이어를 선택했다. 1년 간 영국을 벗어나 다른 유럽 국가들,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여행 가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포부였다. 모든 내딛음이 첫 순간인 그녀의 눈은 반짝 거렸고, 들뜬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24세의 Shirley는 Jolie에 비해 덤덤했지만 여전히 설렘을 찾아볼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회사에서 1년차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아직 경험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했다. 오스트리아에 오게 된 것도, 일 때문에 출장 왔다가 유럽을 더 경험하고 싶어 연차를 내고 휴가로 폴란드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왔다고 했다. 중국계 미국인으로 성장하면서 문화의 다양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나에게 한국의 음식 문화 정치 문화 등등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30을 앞둔 나는 20대를 회고하며 어떻게 단단한 삶을 살까 고민하며 다양한 경험에 대한 갈망 보다는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는 본질 찾기에 집중을 한다는 것을 얘기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으로는 편하게 자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본인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추구하는지에 대해서 편안하게 얘기를 하면서 들뜬 목소리로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어린이의 세계> 에서 작가는 어린이들이 특별한 이유는 저마다의 “고유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뚜렷이 드러나는 특징이 아니라, 개개인마다 갖고 있는 선호와 의견이 고유성을 이루는 요소라고 어린이들의 예시를 통해 얘기한다. 순수함도 이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나의 고유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이것이 순수에 대한 정의가 아닐까.


사회 생활을 하며 종종 고유성을 숨기는 경우가 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괜히 센 척을 하면서 나의 안 좋은 점을 숨긴다던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인간 심리를 다루는 문학 책인데, 괜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꿀리지 않기 위해서 시간을 쪼개 경제 서적을 읽는다거나. 


종종 내가 가진 고유성을 보여주면 나의 약점도 함께 보여주는 게 아닐까 두려워 꽁꽁 감추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두 친구를 통해,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편하게 나의 얘기를 하는 것도 하나의 스킬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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