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보낸 편지는 잘 받았다. 아빠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쁘구나. 편지가 도착하길 오래 전부터 기다렸거든. 너희들이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엄마가 알려 줬단다. 그 편지를 (어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썼다면 정말로 글쓰기 실력이 늘었는데? 그러니 앞으로도 아빠에게 자주 편지를 써 줬으면 좋겠다.
페리뇨네트는 성악 수업이 재미가 없니? 하지만 너는 멋진 실력을 가지고 있어. 네가 그 소질을 계발할 수 있었으면 한다. 훌륭한 가수의 노래를 듣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 그런 훌륭한 꼬마 가수가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정작 그 아이가 몰라준다면, 아빠는 정말로 슬플 거야. 멜라니는 지금 배우고 있는 모든 과목에 흥미를 가진 듯 하구나. 그건 매우 대단한 일이란다. 페리뇨네트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되면 아빠의 기쁨은 두 배로 커질 것 같다.
너희들이 아빠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서로서로 권면하고 열심히 배워서, 아빠가 집에 돌아왔을 때 너희들이 배운 것을 보고 놀라게 되기를 바란다. 지혜는 모든 미덕 중에 가장 중요한 거야. 지혜가 없다면 우리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재능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단다. 자녀들의 지혜는 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나는 셈이니 지혜가 너희들의 첫 번째 재능이 된다면 아빠는 참으로 행복하겠다. 설령 너희들이 (다른 재능 없이) 지혜만을 갖게 된다고 해도 말이다. 알겠니, 지혜를 얼마나 귀하게 여겨야 하는가를...
엄마에게 너희 둘을 똑같이 사랑해 주라고 부탁했단다. 너희 둘 모두가, 그리고 너희들이 원하는 것 모두가 아빠에겐 똑같이 소중하기 때문이야. 아빠는 엄마가 그 약속을 지켜 주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엄마를 항상 믿을 수 있어 안심이 된다. 나 역시 너희들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엄마와 똑같이 할 것이고 너희들이 원하는 일을 해 줄 수 있는 아빠가 되었으면 한다. 아빠는 곧 그 때가 올 거라고 믿어.
이 편지는 너희 둘뿐만 아니라 페리뇨네와 앙리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해. 너희가 그 애들에게 (아빠의 말을) 대신 설명해 주는 것이 어떻겠니? 너희들이 누나니까, 동생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도와 주고 동생들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녕, 얘들아, 건강을 잘 챙기거라. 항상 지혜롭게 행동하고 해야 할 일에 정진하고, 너희들이 재능을 발휘하지 못할 순간은 거의 없다는 것을 믿거라. 그리고 너희들을 생각할 때면 얼마나 행복한지를 결코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을, 이 아빠의 포옹을 받으렴.
페리뇨네트, 멜라니, 페리뇨네, 앙리, 엄마에게 큰 사랑을 보내며
아빠가
도미니크 카트린 드 페리뇽[Dominique-Catherine de Pérignon, 1754-1818] 장군은 1796년에서 1797년 사이 주에스파냐 프랑스 대사로 근무하며 고국에 있는 가족들과 많은 편지를 교환했다. 그 중에서 오늘 번역한 편지는 그가 맏딸 제르멘[Germaine, 애칭 페리뇨네트, 당시 11세]과 둘째딸 멜라니[Mélanie, 당시 10세]의 편지에 답장으로 보낸 것이다.
그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장군은 아니었다. 나폴레옹이 직접 임명한 원수였으나 정작 나폴레옹의 기억에서조차 잊혀진 인물. 그러나 그는 위대한 아버지였다. 어쩌면 그의 애정은 무훈이나 야망이나 출세보다는 몽테슈 마을의 고향집과 가족에게 오롯이 향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편 없이 혼자서 자식들을 키워낸 노모와 인생의 든든한 동반자였던 아내,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이들에게. 18세기 말에 작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딸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격려가 담긴 문장이 돋보이는 이 편지는 그의 가정적인 성격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너희들이 원하는 일을 해 줄 수 있는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맏딸 제르멘에겐 지켜지지 못할 약속이었다. 13년 후 어른으로 성장한 제르멘은 한 장교와 사랑에 빠졌는데, 페리뇽은 딸이 평범한 젊은이 대신 나폴리 왕비가 소개해 준 장군과 결혼하기를 원했다. 제르멘은 아버지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언제나 딸들을 지지했던 그도 결국 사위 문제에서만큼은 '딸의 지혜'를 믿지 못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