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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설 Aug 08. 2023

자만과 오만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을 바다라고 믿었다.

'영어 배우러 가서 스페인어도 배우고 오더니 한국어로 글을 쓰는 녀석'이라고 내 친구들은 나를 불렀다. 응원의 농담과 조롱의 진담이 섞인 그런 말투로. 

2017년 작성한 글

단어의 활용은 커녕 기본적인 문법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글을 쓰고 싶다는 그 욕구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털어내지 못한다면 마치 나를 짖밟아 깨져버릴 듯이. 무거워 참을 수 없었다. 나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다, 외국어를 배우고 와서 한국어로 글을 쓰고 싶다니, 말이 되지 않고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그에 따른 비난과 질타가 돌아올 것을(당시에 그정도로 거센 비난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었다). 


2017년부터 2023년, 6년이 지났다. 운이 좋게도,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고 말할 수도 있는, 그러나 가치가 없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경험을 했다. 개인작과 단체작을 출간하고, 문학 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여러 전시회를 기획하고 참여했다.

2017~2023 주요 활동 정리

주변에서는 대단하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아직 경험하고 싶은, 그리고 해야할,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남았다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전부터 무의식적으로 자만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값진 경험은 나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감사보다는 어째서 더 기회를 주지 않느냐는 불만이, 겸손함보다는 '나보다 뭐가 잘났냐'라고 생각하는 오만함이 무의식적으로 가슴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며 나는 진짜 천재라고 말할 수 있는 수많은 이들을 만났다. 나는 전혀 생각치 못했던 점들을 찾아냈고, 오직 나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을 이미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어째서 글을 쓰는가부터 시작해, 글을 계속 쓰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생각했다. 차라리, 꿈을 가지기 전이 더 좋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꿈과 목표가 생기기 전에는 오히려 편할 수도 있다. 그저 '무엇을' 하고 싶은가 고민하며 여러 경험들을 하면 된다. 그러나 꿈이 생긴 이후는 다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눈을 감고 아무거나 집으라고 말하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정해진 무언가를 잡으라고 한다면, 그다지 쉽지 않다. 꿈을 가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저, 꿈을 가졌을 때 우리는 더욱 방황하게 됨을 의미한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요동친다. 곧 부러질까 두려움을 느낀다. 자만과 오만, 이는 어쩌면 나는 꿈을 위해 잘 나아가고 있음을,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무의식적으로 만든 방어 기제.


확실히, 나는 재능을 가지지 않았다. 재능이 있다면 그저 남들보다 글을 조금 더 좋아한다는 것 하나. 여전히 나는 철이 없다. 잃기 싫어 이를 보인다. 절박하게, 처절하게 반항한다. 잃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언제나 최고가 되어야만 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야 했다.


친한 작가님이 전에 내가 너무 급해보인다고 말했다. 절박해보인다고, 그럴 필요가 없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속 물을 바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곳이 바다의 일부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발악한다. 그게 내 모습이다.


내 인생이 끝날 때까지 평생 함께 할 친구, 그리고 평생 사랑할 동반자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가진 것이 없고 불안하니 몸을 부풀린다. 웃기지.


지독하게 복잡하고, 어렵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아름다움은 분명 피어있다. 그저 내가 찾지 못했을 뿐.


하나, 둘, 셋, 눈을 감고 다시 일어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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