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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설 May 13. 2024

운명과 재능의 관계에 관한 고찰.

정리되지 않는 이야기.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자신은 매우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 되면 차분 앉아 책을 쓰는 일을 하는 작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작가가 될 운명을 타고났으며, 그 운명의 발걸음에 맞춰 살며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나도 그와 같이 '글을 쓰며 살아갈' 운명을 타고났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이것이 내가 그와 같은 재능을 타고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며, 그를 폄하하고자 하는 의미가 전혀 아님을 밝힌다).


모순적일 수도 있지만, 나는 운명의 존재 유무를 논하는 대부분의 자리에서 '운명은 존재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면 한다.'라는 내용으로 결론을 내리는 편이다. 이러한 결론에 대한 이유는 인생이란 우리가 매 순간마다 내린 선택의 연속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 아닌 '이미 정해진 흐름을 따라가는 행위일 뿐'이라는 사실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는, 한 사람이 타고난 운명은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운명을 나는 '재능'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즉, 재능이란 우리의 실존 이전 타고난 유일한 본질이며, 결국 우리는 무슨 수를 써도 이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전에 혈육과 재능에 관해 논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긴 논의 끝에 재능은 '무언가에 대한 무의식적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령 우리는 문득 전혀 관심이 없었던 무언가를 보며 '이거 재밌어 보인다', '내가 이걸 하면 더 잘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무의식적인 관심은 해당 대상에 대해 우리가 타고난 본질, 즉 운명이자 재능이라는 결론이다. 이 작은 관심의 시작으로 나의 혈육은 음악을 하고 있으며, 나는 이렇게 문학을 하고 있다.



처음 문학을 시작하고 6개월 동안 나는 두 권의  책을 만들었고, 여러 채널과 작가님들과의 연락을 통해 나름의 작은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었고, 총 두 곳의 사설 문학 단체에서 연락이 왔고, 더욱 좋은 조건을 제시했던 그곳에서 콘텐츠 기획 등의 일을 담당해서 진행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때도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지 고민했다. '그저 글을 쓰고 싶다'라는 추상적인 목표는 글을 쓰기 위한 동기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때 발견한 것이 바로 '브런치'였다. 그때부터 매년 2번씩은 지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한 횟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8번 불합격한 후에 2022년 10월 18일, 9번째 지원만에 결국 합격하였다.


이처럼 브런치 합격에  마치 강박증에 걸린 듯 집착했던 이유, 내가 믿는 나의 재능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기 위한 방식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내가 가진 재능을 증명할 수 있는 현재 존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재능과 믿음, 확신을 정명하기 위해 총 6년에 조금 더 가까운 5년을 투자했다. 생각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고 싶지 않다. 처음 지원할 당시에는 적어도 한 번, 많아도 두 번 떨어진 후에는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으니.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는 나 자신에게 걸었던 배팅에서 결국 승리했다.



여전히 나는 재능은 각자 개인이 가지는 무의식적 관심에서 비롯되며, 이는 곧 우리가 타고난 본질이자 운명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재능을 찾았다는 것이 곧바로 성공과 직결된다고 믿지는 않는다. 성공한 이들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찾는 것'이 아닌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이 찾아왔을 때 바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준비는 많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글'이라는 나의 본질이자 운명, 재능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때부터 공부하고 연구하기 시작했고 일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부터는 오만하게 생각했다. '이거면 충분하다', '이제는 충분하다'라고. 이것이 나의 재능에 대한 증명에 예상 이상의 시간을 허비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때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그때 내가 좀 더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면'이라고 생각하며 여전히 후회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운명은 그저 '길'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사라진다. 이는 마치 불이 꺼진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것과 같다. 우리는 불을 켜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재능의 증명과 1차적 목표.


증명, 우리는 이제 한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다. 무대는 시작되었고, 우리는 춤을 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확고히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재능을 따라가는 것이 무조건적인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믿는 이유, 재능은, 운명은 답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목적.

나는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목표.



이제야 무대에는 불이 들어왔고, 관중은 침묵하며 나의 춤사위를 기다린다. 나는 이 무대가 끝났을 때 무엇을 얻고 싶은가, 나는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나 이것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라 또 다른 선택을 해야만 한다. 여행 뒤에는 여정이, 여정에는 시련이, 그리고 시련이 끝난 후에 우리는 어디에 있을지.


나는 인생이란 하나의 책, 혹은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결말은 죽음으로 정해져있을 뿐. 결말이 정해진 게임이라면, 적어도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결말에 도착할 수 있는 길과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길은 우리의 운명을 따르는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운명과 재능에 대한 정리되지 않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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