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습관과 인생을 바라보는 습관
저는 글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은 아니지만,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혼자 마음을 다스릴 수단이 필요해서 시작했었는데, 쓰다 보니 여러 경력이 쌓이고, 지금은 이 글쓰기를 시작으로 사업까지 기획하는 단계에 왔으니, 글쓰기 자체가 생업과 연계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글이 없었다면 어쩌면 나에게 미래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서전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던 중 '글쓰기는 운동과 같다. 매일 루틴을 정해두고 해야 한다.'와 같은 구절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2018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당시에는 '아, 글쓰기도 역시 매일 해야 하는구나.' 생각하며 단순하게 넘겼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아무래도 글을 쓰기 시작하고 단 1년 만에 책을 냈다는 그 결과론적 사고와 10대에 책을 냈다는 주변에서의 존경 때문인지, 마치 제가 최고인 듯 오만하게 생각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조언을 마치 '감히?'라고 생각하며 무시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상상하며 후회하기도 합니다.
2018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대략 6개월 정도의 휴식 기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당시에 입시 관련 문제도 있었고,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원치 않았던 휴식이었지만. 그리고 2019년부터 다시 활동을 시작하며 9월과 10월 즈음 작가의 신분으로 처음 전시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차근차근 관련 경험과 지식을 쌓는 와중에도 '나는 왜 글이 늘지 않을까?'라는 고민과 함께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모르겠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어쨌든 그때도 지금과 같이 글을 쓰고 있었고, 글을 써야 하니 고민과 의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는 것은 뒤로 미뤄두고 계속 썼습니다. 그리고 2020년이 되었고, 9월 전시회 참여와 함께 입대를 하였습니다.
2020년 9월 22일부터 해의 마지막까지의 시간은 정말 그 어떤 때보다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내가 뭘 하면서 지냈었는지, 뭘 먹기는 했고 잠을 자기는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군생활에 조금 익숙해졌다 싶었을 때 친구와 짧은 전화를 끝마치고 인터넷을 보던 중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상'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을 보았습니다. 새벽 4시에 기상해 일정한 시간대에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진 그의 하루 일상. 저는 원래 일정을 정하고 지키는 삶에 큰 부담감을 느끼는 편입니다. 일정을 정한다는 것은 곧 단 1초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 인생에 발생할 수도 있는 모든 변수 발생 여부를 배제하는 듯한 기분이 그다지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군생활에 익숙해지며 '정해진 일정을 보내는 생활' 자체에 대해서는 익숙해지기도 했고, 이러한 생활의 장점도 어느 정도 인지해서 그런지 글을 쓰는 시간을 정해서 적어보자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아마 2021년 2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부터 오후 5시 30분 휴대폰을 받은 후에 7시부터 8시까지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그런지 집중도 잘 되지 않았었는데, 한 달이 지났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몇 달이 지나니 그 시간에 글을 쓰지 않으면 하루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훈련으로 글을 쓰지 못할 때는 휴식 시간을 활용해 글을 썼습니다). 이런 습관은 군대를 전역한 후에도 이어져, 일정한 시간을 정해 그 시간마다 글을 쓰며 생활했습니다.
예전에 한 작가님의 북콘서트에서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작가님은 어떻게 글을 쓰느냐?'는 질문에 작가님께서 했던 답변이 기억납니다. 작가님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이렇게 글을 쓰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글을 단순히 '영감이 떠오를 때만 쓴다는 것' 자체가 되게 모순됐다고 생각해요. 이건 마치 '직장을 출근하고 싶을 때만 출근한다'와 같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래서 우선 정해진 시간에 모니터 앞에 앉아 우선 써요. 그래서 결국 그날 썼던 문장을 다 지우고, 결과적으로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날도 있어요. 그래도 우선 써요."
저는 이것이 결국 글을 쓰는 사람, 예술을 하는 사람 말고도 우리 전부가 가져야 하는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일정을 정한 삶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로 '삶에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모두 차단하는 듯한 느낌' 때문이라고 말을 했었습니다. 시간을 투자했지만 무언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 이것도 결국 그 변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는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하고, 이것 때문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실제로 저도 지금까지 대략 3년 정도 글을 쓰는 습관을 가졌지만 그 시간 중에 반은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고 말해도 거짓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큰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고,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 3년 중 반을 무의미하게 버렸는가,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그 시간을 통해서, 그 시간에서만 배울 수 있는 무언가를 분명히 배웠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에는 느낄 수 없을 수도 있지만, 분명히 그렇다고. 그리고 그 시간이 존재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최근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어느 정도 답을 내렸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인생을 배우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이전에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한 것과 같이 예술과 인생을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봅니다. 문학이라는 이름의 예술을 함으로써 인생을 배우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인생을 닮았고, 인생은 예술을 담았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결과적으로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배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 그러나 이런 오만과 자만으로 나락과 최악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주는 만큼 다시 받기를 바랐고, 그러하지 못하니 실망하고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사랑에 쌍방향적인 움직임은 없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결국 무언가 하나에 대한 가치는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결국 같을 수 없다고. 지금은 진정으로 사랑을 주는 법, 그리고 믿음을 주고 가지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금 당장 잃는 것을 넘어 내 전부를 잃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다시 돌아온다는 믿음을 가지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잃은 것보다는 얻을 것을 바라보는 습관, 그리고 사라진 것보다는 나타날 것을 바라보는 습관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딱히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니거니와 대단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약간은 조심스럽지만, 조금은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습관을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에 글을 쓰기 위해 밖을 나갔었는데, 그날은 유독 하늘이 예뻐 글에 집중하지 못하고 결국 한 글자도 쓰지 못했었습니다. 그래도 그날은 글을 쓰지 못해 화가 난다, 슬프다, 그런 감정보다는 '이런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있었기에 기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제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의식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습관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렸을 때 자주 들었던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모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