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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울 Mar 05. 2020

꼭 죽어서 천국에 가야만 해?

외계인 잡념이 지구 생활 사진 에세이 32

 

 종교를 비하하려는 건 절대 아니야. 이런 얘기를 할 때는 내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영향력이 있는 만큼 입이 무거워져야 하거든. 특히 종교적인 문제에서 말이야. 그런데 종교계가 항상 시끄러운 걸 보면 영향력이 없어서 그런 건가? 물론 일부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 일부가 그렇다는 건 누구든지 그럴 수 있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보자. 


 이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교리인가? 아니면 천국을 위해서 신을 섬기는 것이 교리인가? 나는 대부분 종교가 후자라고 생각해. 솔직히 말해봐. 신을 믿는 것이 이유인지 천국을 가기 위함이 이유인지. 또 사는 목적이 죽어서 천국을 가기 위해서라면 인간의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싫어. 그러나 전자가 교리라면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 종교의 목표가 되지. 꼭 죽어서 천국을 갈 필요가 없어. 죽어서 천국을 가기 위해 신을 섬긴다면 지금 이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는 건가?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도 몰라. 모르기 때문에 신이 있고 천국이 있다는 걸 가정했을 때 그것을 믿는 것이 단순하게는 합리적인 사고가 되지. 신이 없다한들 신을 믿어도 손해 보는 게 없거든. 신이 있다면 신을 안 믿는 게 손해가 되잖아. 


 조금 더 복잡하게 가정을 해보자. 자신이 신이라고 상상해봐. 물론 신처럼 사고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해봐. 나는 신이고 어항에서 내가 창조한 생물을 기르고 있어. 어떤 기분일까? 단지 이 생물들이 조화롭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 모든 걸 내팽게치고 나를 실제로 섬길 수도 없으면서 영생을 구하고 기도를 하며 내가 사는 천국이라는 곳을 마음대로 정하고는 그곳으로 보내달라고 하며, 그 방법이 다르다고 서로를 헐뜯고 싸운다면 전혀 예쁘지 않을 거야. 물론 나를 부정하고 나에게 대들고 협박한다면 그것도 싫겠지. 근데 말이야. 나라는 존재를 몰라도 어항 속에서 서로를 돕고 아끼며 예쁘게 살아간다면 나는 흐뭇하게 미소 지을 거야. 나라는 신이 사는 곳보다 더 이상적으로 살아준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서 어항을 지키고 싶을 거야. 


 그렇다면 왜 종교가 생기고 신을 추앙하게 되었을까? 내가 어항의 신이라는 관점에서 조금 더 이어가 보자.


 내가 어항 속에 창조물을 만들었을 때는 조화롭게 살아주기를 바랐는데 서로 계급을 만들고 착취하고 싸우는 거야. 직접적으로 개입하기에는 어항이라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어.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창조물 중 지배자 계급(왕 같은)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나의 뜻을 전했어. 왕은 신의 대리인으로서 명분이 생기고 그것으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규칙을 정했지. 한데 내 창조물은 갑의 위치에서 나를 업은 채 그것을 권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어. 나는 내 창조물들이 모두 평등해지기 전까지는 나의 이런 뜻이 실행되기 어렵겠구나 하고 생각했지. 


 그래서 내 창조물 중 피지배층의 괜찮은 놈 하나에게 "나는 창조주인데, 너희는 그렇게 살면 안 돼. 앞으로는 이렇게 이렇게 살아줬으면 좋겠어. 내 뜻을 모두에게 전해줄 수 있겠니? 대신 너에게 작은 기적(어항 속에서 일어날 수 없는)을 선물하지."라고 했어. 생각처럼 고통받는 을들에게는 조화로운 세상을 위한 평등의 교리가 가슴을 울렸어. 많은 핍박이 있었지만 종교로 자리 잡게 됐지. 한데 종교단체가 또 다른 권력이 될 줄은 몰랐어. 어항은 나를 추종하는 세력으로 인해 또 어지러워졌지. 신을 위하기보다, 세상을 위하기보다, 자기들의 종교 존립 그 자체를 위해 교리가 바뀌게 되었어. 나의 모든 뜻은 저기 구석으로 몰리고 종교의 부흥을 위한 사후의 천국을 전면으로 내세우게 됐지. 그 결과 나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생겨났어. 우습게도 나는 너희들의 행복을 바랐는데 나의 존재가 삶의 이유를 천국으로 가기 위한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지. 


 불신지옥. 잘못된 믿음은 믿지 않는 것보다 더 무서워. 어항 세상의 종교의 시대가 물러나고 실용주의 시대가 왔어. 그리고 그 종교의 불씨는 곳곳으로 흩어져 각각이 더 이상한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지. 어항 속은 이전보다 합리적으로 돌아가게 되었어. 무엇보다 내 창조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 


 나는 언제부턴가 직접적인 개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지. 나의 개입이 옳았나 하고 의문을 가지게 되었어. 내 존재를 드러낸다면 이미 너무 커져버린 어항 속의 세상을 모두 컨트롤해야 할 것만 같았거든. 억울함, 분노, 보상, 타협, 배려, 사랑, 원인과 결과, 질병, 평등, 자유, 가치관, 사고, 재해, 봉사, 기부, 희망, 꿈 모든 것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어. 자기의 뜻과 다르게 일이 풀린다면 모두 나를 원망하겠지.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모두 나를 바라보겠지. 나의 힘이 어디까지인지 안다면 나를 우습게 보겠지.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관찰자가 되었어. 


 나를 찬양하고 노래하며 어항 속을 어지럽히는 자들아. 나는 듣고 있지만 보고도 있다는 걸 알아둬. 내가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 같아? 가끔씩 어항을 갈아엎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어. 그래도 내가 왜 그러지 못하는 줄 알아? 아직 어항에는 나를 흐뭇하게 하는 작은 사랑들이 많기 때문이야. 이 기나긴 어항의 역사 속에서 나를 미소 짓게 했던 것은 나를 향한 시끄러운 큰 사랑이 아니었어. 너희가 보여주는 작고 예쁜 사랑. 그것을 보기 위해 가끔은 시련도 주었음을 인정하지. 나의 기적을 바라지는 마. 나는 관찰자. 다만 관찰을 위해 가끔 시련은 줄 수 있어. 


 그리고 나의 시련 없이도 조화로운 어항을 만들어가는 그 날, 그때는 나도 너희와 함께하지. 천국 같은 어항에서 말이야. 내가 사는 곳도 쉽지 않아서, 너희가 잘 사는 거라도 보고 싶은 거거든. 나의 신도 비슷하지 않을까? 






# 지구라는 행성에서 조화롭게 사는 날 진정 우리의 신이 미소 짓지 않겠어?

# 신이 미소 지을 때 지구는 천국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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