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에 빠졌다는 이유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고민 때문에 괴로운 현재를 살고 있었다. '지금'이 없는 '내일'은 있을 수 없음에도 나는 오늘의 가치를 잊고 있었다. 내가 처한 상황,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감정에 따라 최고의 하루 또는 최악의 하루를 오르락내리락했다.
아무리 글을 써보고, 책을 읽고 생각을 곱씹어도 나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할 뿐 나의 감정과 상황을 내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지금 상황이 답답할 뿐이었다. 친구들과 가볍게 털어내는 것도 한계에 다달했을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번에는 심리 상담이 아닌 커리어 코칭, 상담을 받았다. 회사 조직,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큰 것은 분명했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삶의 방향을 뚜렷하게 계획 세우는 것.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만 했던 직업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필요한 게 뭔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 직접 부딪히는 용기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나 자신에게 솔직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
나를 다른 사람에게 솔직하게 표현하고 다가가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동시에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자기 객관화를 통해 나를 정확하게 인지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상담사 선생님에게 나의 지난 10년을 압축해서 설명했다. 남들과 비교하며 별 거 없다 생각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잘 살았고, 남부끄럽지 않은 직장생활이었다.
나는 '일을 잘하고 싶고, 그만큼 타인의 인정과 평판'을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란 걸 밝혔다. 상사, 동료가 나에 대해 실망하거나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일을 못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의 굴욕감을 참기 어려워 평가 한 마디 한마디에 자존감이 흔들리는 나약함을 고백했다.
열심히, 잘하고 싶은 마음에 달려왔던 시간들과 그에 비해 성장하지 못하고 멈춰있는 부족한 모습들이 유독 최근에 많이 드러난 것 같아 속상했다고 말이다. 말을 쏟아내다가 갑자기 울컥함과 함께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나도 모르게 쌓아왔던 아픔을 드디어 타인에게 당당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나는 슬펐다. 아팠다.'라는 사실을.
그 마음을 먼저 드러내고 나니 그다음 커리어로 고민하는 방향, 나는 어떤 가치관을 두고 일을 하고 싶은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에 대해서 그릴 수 있었다. 내가 번아웃이 온건 지금 하는 일이 의미, 물경력이 될 것 같은 커리어에 대한 고민보다 만족스럽지 않은 내 모습에 실망한 나,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면 정말 나는 일을 못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일이 나와 맞지 않다.' 합리화하며 커리어에 대한 고민으로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나'를 정의하고 추스르고 나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지금 나는 뭘 해야 할지 계획하고 방향을 잡는 건 쉽게 정리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흔들리지 않고 나를 세우는 일이 먼저였다.
일을 통해 타인에게 인정받고,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었다. 나를 일로 정의하려면 '나=일'이 된다. 일을 잘하면 가치 있는 사람, 일을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일을 잘하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인가? 그렇진 않다. 그럼에도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에 대해 놓지 못해 왔던 것이다. 나의 책장을 보니 온통 일 잘하는 법, 일과 관계에 대한 자기 계발 책뿐이다.
삶의 최종 목표가 일인가?
나의 일도 정의 못하면서 추상적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을 목표로 두고 조직에서 인정받으면 자신감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기적인 목표,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하는 것에만 몰두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삶에 대해서 고민해야 했다.
일을 잘하고 싶은 욕심,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은 타인의 평가에 휘둘릴 때가 많다. 인정은 남을 통해서만 입증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정, 평가의 시선을 바꿔 내가 나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타인도 쉽게 침해할 수 없다.
스토리브로그라는 야구 드라마에서 그런 대사가 있다. '자신의 가치를 본인도 모르는 사람에게 왜 우리가 그만큼 연봉을 보장해야 하죠?' 야구 선수의 연봉협상 단계에서 몸값, 연봉 금액을 두고 개인의 평가와 구단의 평가가 상충했을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연봉을 더 올릴 객관적인 평가 지표가 있음에도 선수 스스로 가치를 낮춰 인정하는 상황에서 고용주가 굳이 연봉을 올릴 필요는 없었다.
완벽함을 내려놓아요
진지함을 덜어내려고 노력 중이다.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심각해질 때가 많았다. 나의 심각함은 동료들에게도 전염된다. 실수할 것에 대한 부담감,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일을 대하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발표 긴장도 줄어들고 의사소통의 어려움도 해소할 수 있었다.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곧 나의 평가로 다가오는 두려움을 벗어나 어느 베스트셀러 책 제목처럼 그럴 수 있어~ 넘겨보는 여유로움을 가지니 나의 일상생활을 조금씩 일이 아닌 것으로 채울 에너지가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