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냄새, 이진명 시집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에서
쉰 냄새는
지나친 냄새
모든 익은 것들이 이상해질 때는
쉰 냄새가 난다
분명 알맞게 익어서
처음에는 향기로웠을 그것이 쉬는 데는
수십 년 만의 이상 기온
섭씨 삼십팔, 구 도의 장마철 찌는 더위 한낮으로 금방이다
알맞게 익었던 그것이 향기로웠던 그것이
한낮 잠깐 사이
쉰다는 것은 슬픈 일
이상 기온뿐이 아닌 이상 정황 이상 심리 속에서일지라도
쉽게 쉰 냄새 피우지 않으려면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알맞게 잘 익은 다음에도
소금을 더
물기를 아주 싹
쉰 냄새는
지나친 냄새
모든 익은 것들이 익은 그 다음에도
어떻게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한다면
이상 기온도 탓은 탓이지만
그보다 먼저 스스로
무엇을 속에 계속 넣고 있지 말고 비우기를
자리를 고집하지 말고 구멍 숭숭한 허한 곳으로 나가 앉기를
제목이 다가와 중고로 산 시집에서 옮긴 시다. 그 전에 이웃 작가님이 발췌한 시가 구매를 부추기긴 했다.
얇고 작은 시집은 들고다니기 편해 부리나케 현관문을 열기전 가방 속에 넣기를 반복했으나 일독은 안되어 야금야금 조물거리듯 읽고 있었는데, 문득 이 시가 오늘 들어온다. 그러고보니 여름 더위에 대한 다른 시 <여름 폭양 속>이라는 제목도 있다. 들추다 1994 라는 숫자가 들어왔고, 아, 펴낸 때가 1994년 11월이다.
30년 전의 시집, 사실 소설과 달리 시집은 어떤 방식으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꾸준히 써놓은 걸 모으는지, 출간을 위해 특정 시기에 몰아서 쓰는지) 시인이 가을 출간을 염두해두고 그 여름 지독한 더위를 통과하며 쓰기에 박차를 가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올 여름처럼 기록적인 더위에 대해 이야기할때, 1994년 여름은 빠지지 않는다. 덥긴 더웠다, 94년 여름이.
올해로 결혼 30주년이니 그해 가을에 결혼을 했다. 사람은 고쳐지지 않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철이 없어 가을에 결혼한다는 들뜬 기분에 더위쯤은 별 상관이 없었다. 길을 걸으며 땀으로 옷이 젖어도 다른 생각에, 덥다는 건 그냥 더운 것이었다.
폭염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이 되어 다른 생각이 현실화 되었고, 다른 생각이 이루어낸 지난 30년 동안 여전히 다른 생각으로 살았다. 더위보다 더한 폭풍우가 몰아치고 뇌우가 떨어져 널브러져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고 돌아온다.
쉰 냄새가 날 때가 되었다.
비운다면서 다른 쪽을 움켜지고, 고집하지 않는 고집을 하며, 덜어낸다면서 온갖데 밀도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