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하고 영의 수필
한 달 340,000원.
누구에게는 겨우?라고 할 수도 있고 그걸로 뭘 해?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남편도 자식도 직업도 없는 우리 고모님에게는 이 국민연금이 유일한 수입이자 생계비이다.
날마다 무엇을 썼는지 나의 쓰다만 공책들을 모아다가 꼬박꼬박 가계부를 쓰시고,
“세상 참 좋아졌어. 나라에서 쌀 주지, 이렇게 한 번도 안 빠지고 월급 주지 아껴만 쓰면 난 먹고사는 거 문제없어 참, 세상 신기하다. 오래 살다 보니 일 못하는 우리 노인한테 돈을 주는 희한한 세상을 다 보네.”
기회 될 때마다 고모님은 국민연금이 얼마나 훌륭한 제도인지 이것이 아니면 어찌 살았을지 모른다고 하신다.
자식이 없는 고모님에게 그런 큰돈을 매월 드릴 수 있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ㅡ여기서 고모님은 사실 고모 할머님이시지만 우리는 모두 고모님이라고 부르고 동네 사람들도 남편과 자식이 없는 우리 고모님을 모두 고모라고 한다.ㅡ
고모님의 일생은 고생의 역사이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초등학교도 못 나온 고모님이 할 수 있는 일은 남의 집 일을 돌봐주는 것이었고 마음 편히 자보거나 양껏 먹어 본 일이 없다고 하셨다.
지금 70이 넘으신 어르신들은 그 당시 대부분 그런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 노후는 어찌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사셨고 그러기에 감히 저금은 할 엄두도 못 했다고 하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저금할 돈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고모는 결혼도 하셨지만 고모부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자식도 없다. 그 누구도 고모님의 노후를 돌보아 드릴 사람이 없었다.
우리나라에 국민연금이 시작된 것은 1988년 1월이나 전 국민으로 확대된 것은 1999년. 그 당시에는 이 제도의 취지를 잘 몰라 모든 국민이 꼭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을 못 했다고 한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 대표적이시다. 한 달에 만원이나 이 만원씩을 내는 것이었는데 –그 후 금액을 계속 늘여 가셨다고 하신다ㅡ할머니께서는 이것을 믿지 못하시고 마을 동장이 와서 국가가 최종적으로 지급을 보장하기 때문에 국가가 존속하는 한 반드시 지급된다고 설명을 해 드려도 끝까지 듣지 않으셨다고 하셨다. 나중에 못 돌려받을 거라고 생각하셨다고 하셨다. 그와는 반대로 할아버지는 지금 조금 내고 나이 들어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과 나라에서 한다는 데에서 무조건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셨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노후는 삶의 질이 다르다.
배움도 지식도 전혀 없는 우리 고모는 그 당시 어떻게 국민연금을 꼭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셨을까? 아마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셨을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우리 고모님은 나이 들어서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할지가 가장 큰 걱정이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법으로 정해진다는 것은 고모님에게는 굶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준 것이었다. 그 당시 하루 빠듯한 생활에서 고모님에게서 만원이라는 돈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고 하셨다. 그래도 결심을 하신 것에 대해 지금도 고모님이 인생에서 하신 일 중 가장 잘했다고 하셨다.
62세가 되던 해
수입이 전혀 없었던 고모님과 할아버지는 통장으로 들어오는 연금을 보고 믿기지 않았다고 하셨다.
가장 놀란 분은 우리 할머니.
할머니는 통장에 돈이 들어오기 전까지도 설마 하셨다고 하셨다. 할아버지께는 50만 원이 넘는 돈이 들어온다. 아버지께서 늘 입버릇처럼 할아버지께 그 정도 용돈 선 듯 드리기는 어렵다고 너무 잘하셨다고 하신다.
고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님께서는 함께 사시는데 두 분의 연금은 세 분이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하다. 만약 할머니까지도 연금을 받게 되었더라면 지금보다 자식들에게 덜 의지 해도 되고 생활수준도 훨씬 좋았을 텐데라고 할머니는 늘 미안해하신다. 연금이 통장으로 들어오기 직전까지도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고모를 생돈 버리는 것이라고 엄청 말리셨다고 한다. 비록 100만 원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아버지와 큰아버지 두 분이 이 정도의 돈을 책임지시기에는 엄청 큰돈이다. 이 국민연금은 워낙 절약이 몸에 밴 분들이 시라 시골집에서 세 분이 사시기에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눈치 볼 정도는 아니라고 하신다.
우리 부모님들은 적지 않은 돈을 연금으로 받으실 수 있다. 아버지는 나에게 부모님 노후는 걱정 말라고 하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상반된 삶을 보신 아버지는 더더욱 연금의 소중함을 알고 계시는 것 같다.
지난주 교육원으로 가는 날.
고모님과 할아버지께서는 내 손에 꾸깃꾸깃한 봉투를 주시며 건강하라고 하셨다. 매 달 받으시는 연금 월급을 또 아껴 쓰시고 모았다가 손자 용돈으로 주신 것 같았다.
“나 무시하지 말어. 나 아직도 매 달 월급 받는 사람이여”
70 넘으신 고모님과 90 가까이 되신 할아버지께 용돈을 받아 든 나는 월급 타는 두 분이 자랑스러웠다. 누군가에게는 받지도 못할것을 내가 왜내야하냐고도 하지만, 아끼며 고맙게 쓰는 두 분에게 연금은 그 어떤 자식보다도 효자중의 효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