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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Jul 07. 2024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이 글감을 받고 일주일 내내 무엇에 대한 글을 쓸까 고민했다. 하지만 쉽게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괜히 양귀자 작가님의 책을 뒤적거려도 보고, 나의 소망과 금지사항을 리스트업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리스트는 한 자도 채워지지 않았다. 현재 이 시각 - 일요일 오후 다섯 시 - 까지 적당한 소재를 찾아내지 못했다.


둘 중에 하나다. 딱히 바라는 게 없거나,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거나. 적어 놓고 보니 난 참 속 편한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바라는 게 없다면 실망할 일도 없고, 못할 게 없다면 자유롭다는 것이니까. 그런데 어쩐지 이 결론이 찜찜하다. 나는 정말 속이 편한가? 행복한가? 글쎄, 잘 모르겠다.


나는 생각한다. 자유롭다면서 왜 고작 나로 살고 있는 것인지. 사실은 실패와 실망이 두려워 아무것도 소망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그저 안전하게 살고 싶어서, 아무것도 꿈꾸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경제사정, 애매한 학력, 외국인 신분, 어설픈 외국어 실력, 두 아이의 엄마라는 역할 등 내게 제동을 거는 여러 요소들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가지고 징징거리기엔 양심에 찔린다. 오히려 이것들을 핑곗거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는, 시작하지 못하는 좋은 핑곗거리로.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도 한 때는 모험을 즐기는 청년이었다. 새로운 일에 뛰어들고 모르는 분야를 배우는 일에 겁이 없었다. 맡은 일은 그게 무엇이든 잘 해낼 자신이 있었고 결국 해냈다. 가정을 꾸리고 지킬 것이 늘어가면서 상황이 변했다. 아픈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는 더더욱. 상황이 변하자 나도 서서히 변해갔다. 현실 안주. 현상 유지. 안전제일. 이런 모토를 가지고 살았다. 그 결과 가정은 평화롭게 유지되었으나 내 가슴속에는 내 존재에 대한 불안과 거기에 뒤따르는 두려움이 자라나고 있었다. 


이제는 그게 무엇이든 잘 해낼 자신이 없다. 제대로 해낼 수 없다면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 괜한 일을 벌여서 폐를 끼치지 말자. 내게 실망하지 말자. 상처받지 말자.

자신감이 바싹 말랐다. 소망은 쪼그라들었다. 


이것은 내 무의식의 생존 전략인지 모른다. 덜 바라고 덜 실망하도록, 덜 시도하고 덜 실패하도록, 그런 식으로 내 마음 덜 다치도록, 안전한 곳에 머물도록 하는. 실제로 그동안은 이 전략이 나를 지켜왔던 것도 같다. 하지만 이제는 나라는 존재까지 바싹 말리고 쪼그라들게 만드는 것만 같다.

나는 어디까지 작아질까?


아, 이제 알겠다. 나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바로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그걸 보지 못하고 그 무엇도 나를 제재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내 삶이 자유롭다고 오해했다. 나는 내게서 자유롭지 않다. 나는 나를 금지한다.


나는 소망한다. 말라버린 자신감이 싱싱해 지기를. 쪼그라든 소망이 생생해 지기를. 

이것은 내게 금지된 것. 내가 나에게 금지한 것. 지금 이 순간에도 감히 소망하기를 뜯어말리고 싶은 것. 그래서 무척 서러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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