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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gnitis Dec 15. 2023

[번외] 반갑지 않은 손님

슬럼프와 번아웃 그 어딘가 쯤에서

이번 이야기는 한동안 쓰던 글을 이어 쓸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 글을 쓰고 발행을 하기까지 꽤 많은 결심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이 글은 나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변인들이 볼 수 있음을 알기에 괜한 걱정을 일으키기도 싫었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변명이다. 성실하지 못했던 글쓰기에 대한 반성이다. 덧붙여 누구나 힘든 시기를 겪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때로는 백 마디 위로의 말보다 같은 상황에 처한 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느끼는 위로가 더 다가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힘든 상황에 있는 당신에게도 이 글이 위로가 되길 바란다.




나는 지난 여러 달 동안 꽤나 바쁜 시간을 보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어찌어찌 적어둔 내 글들이 좋아요가 눌리고 있을 때, 면접에 관한 이야기까지 완성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어 타인에게 '내가 감히 조언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도 될까'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동안은 과거에 대한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자신감으로 글을 써왔다.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내가 생각해 왔던, 고집스럽게 유지하던 것들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우선은 함께하던 동료가 회사를 떠났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회사를 떠나면서 그 공백이 채워지지 못했다. 특히 내 추천으로 함께 일하기 시작했던 동료가 여러 사정으로 인해 떠나게 되었다. 있는 힘껏 도왔지만 핵심적인 문제는 해결해주지 못했고, 계속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즐겁게까지는 아니어도 의미 있는 일을 함께 해보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두 번째 원인은 업무에서 오는 많은 스트레스를 잘 처리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한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이유 없이 머리가 아팠고, 특별하게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기침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준비했던 긴 여행을 떠났는데, 마치 마법처럼 아픈 곳이 없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우스갯소리로 직장인들의 만병통치약은 퇴사라는 말이 진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짓눌리던 것이 없어진 것 같았다. 결국 긴 여행은 너무나 즐겁고 좋았지만 돌아오고 난 뒤에는 많은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세 번째는 가장 가까운 이가 갑작스럽게 쓰러졌다. 다행히 회복되어 지금은 잘 지내고 있지만, 사건 자체는 나에게 너무나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예상하지 못했고, 막을 수도 없었다. 이런 종합적인 이유로 인해 나는 기분이 오르락내리락거리기 시작했다. 통제감을 잃은 기분이었다. 나의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좌절감'이었다. 계속해서 뜻대로 무엇하나 풀리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처음에 분노했다. 상황이 생기는 원인을 제거하고 싶었다. 열정적으로 막아보려 애썼다. 그러다 느리게 이어지는 통제불가능한 상황들에 낙담했다. 그 이후에는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며 외면했다. 결국 열정, 침체, 좌절, 무관심과 회피로 이어지는 이 단계들은 번아웃 증상처럼 보였다. 스스로 회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에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좌절감을 느끼는 일이었다.


좌절감은 그 모든 일에 진심이었기에 생기는 감정이었다. 일과 일상 모두 할 만큼 했는데 변화가 찾아오지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체념에 이르고 나니 더 이상 같은 온도로 지속할 수가 없었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소들이 많아지며 노력으로 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의 결론은 힘을 빼자는 거였다. 힘을 더욱 단단하게 쥘수록 더 많이 다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힘을 빼고 있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도, 한번 더 양보하고 물러나고 말았다.


결국 이런 일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다양한 것이 있겠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었다. 도저히 기존의 환경에선 개선의 여지를 찾기 어려웠고, 외부요인의 변화를 바라는 것은 배부른 소리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몇 개월에 걸쳐 이직에 성공했다. 환경 변화는 꽤나 효과적이었다. 더 이상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일을 보지 않아도 되었고, 여유가 생겼기에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볼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모든 것이 만족스럽진 않지만, 이전의 일을 돌이켜볼 때면 이 정도의 고민과 시련은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1년 여를 돌아보면 많은 일을 겪어 괜스레 더 조심스러워지기도 하고 걱정도 많아진 것 같다. 이런 것들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반증이라 생각해볼까 싶다. 24년에는 조금 더 성숙하고 영감과 방향을 줄 수 있는 글에서 만나길 바란다.





PS. 예비 디자이너들을 위한 인터뷰에 대한 글은 꼭 언젠가는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좀 더 강하고 단단한 마음을 지녔을 때 작성하고 싶습니다. 회복과 비워냄 이후에 더 정갈한 글로 돌아올게요. 기다리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미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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