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와칼 Feb 09. 2022

내가 할 수 있는 펜싱의 전부

설거지를 하다가 알았습니다. 상상 속 대만 대회에서 펜싱하는 제 모습과 국내 엘리트 대회에서 펜싱하는 제 모습이 다르다는 걸요. 대만 대회를 뛰는 제 모습은 자신에 차 있고 과감합니다. 여유가 있고 몸의 움직임은 원활합니다. 머리는 복잡하지 않고 상황을 판단합니다.


국내 엘리트 대회에서의 모습은 다릅니다. 몸은 긴장되어 있고 프레-알레 순간부터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합니다. 상황을 보고 하기 보다는 성급해지고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고민합니다. 움직임은 부자연스럽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대만 대회보다 국내 대회 수준이 높기 때문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수준이 높은 미국의 NAC 대회 뛰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제 모습은 대만에서처럼 자신만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국내와 해외의 차이일까요? 그건 어딘지 좀 이상합니다. 해외에 가서 오히려 긴장을 하면 모를까요. 제가 동호인으로 펜싱을 시작해서 국내 대회에서 주눅드는 걸까요? 그것도 이상하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한 외부 요인과 제 실력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잘하든 못하든, 국내 대회든 해외 대회든, 동아리 연습 경기든 올림픽이든, 제 실력은 동일합니다. 긴장한다고 해서 평소 못하던 걸 할 수 있게 되지 않습니다. 내 앞에 누가 있든, 내가 나 자신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상상 속의 나는 긴장할 필요가 없겠군요. 어차피 내가 발휘할 수 있는 건 내 안의 실력이니까요. 긴장되거나 어려운 상황을 상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상상은 현실을 왜곡합니다. 상대가 어마무시 하게 빠르고 기술이 매우 정교하면 뭐 어떻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걸로 싸우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승패는 제 소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수 있는 현명한 행동은 제 안의 실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태도로 경기에 임하는 것이겠군요. 자신 있고 과감하게. 싸워볼만 하다는 태도로. 이길 방법을 찾아 죽을 힘을 다해서. 그렇게 해서 이겼다면, 잘 싸운 겁니다. 졌다면, 어쩔 수 없죠. 최선을 다했다면 거기까지가 그날의 제 도달점인 셈입니다.


실력은 외부 요인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실력을 결정하는 건 평소 해온 훈련일 것입니다. 훈련을 통해 실력의 최대치를 끌어올리는 것. 그렇게 키운 실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태도로 경기에 임하는 것.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펜싱의 전부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펜싱 선수의 진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