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살이
은평구에 처음 발을 디딘 날, 나는 낡은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집 같은 걸 절대 소유할 것 같지 않던 친구가 녹번동에 집을 샀다. 예상치 못한 소식에 덧붙여 친구가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이사할 집이 많이 낡아 수리를 하고 있는데 페인트 칠을 도와 달란다. 같은 과 선후배인 우리 무리는 불러 낼 힘센 남자는 고사하고 손끝 매운 남자도 곁에 두지 못했으니 그 일은 온전히 어리바리한 우리들의 몫이었다.
구름이 말을 할 것 같은 하늘이었다. 가을 날씨가 청명했고 뺨을 스치는 바람이 간질간질했다. 어디론가 떠나 파란 하늘을 그윽히 쳐다보거나 마흔이 되기 전에 젊음을 불사르기라도 해야 어울릴 토요일이었다. 몇 번이나 덧발랐는지 두꺼운 스케치북처럼 뚝뚝 떨어지는 벽지를 칼로 긁어 내는 작업을 시작으로 방문에 크림색 페인트 칠을 하는 일로 하루가 지났다. 일머리라고는 없고 페인트 칠을 한답시고 얼룩이나 잔뜩 만드는 바보들 몇이 애를 쓰기는 했는데 가까이 보면 낯부끄러운 결과물이었다. 우리는 짜장면을 얻어먹었고 삼청동 길가의 까페에 앉아 노동의 하루를 되새김질하며 신나게 뿌듯해 했던 것 같다. 물론 그 때까지만 해도 내가 은평구에 살 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친구가 은평에 착륙하며 또 다른 친구가 은평으로 거처를 옮겼다. 고양시에 살던 내게 멀게만 느껴지던 불광역은 친구 집으로 가는 길목으로 존재감을 높이더니 성큼 가까워졌다.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참 더디고 멀었다. 숨죽이고 사는 사람들이 오피스텔의 한 방을 차지하고 서로 못 본 척,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하며 사는 게 이물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 중 세 번째로 은평에 터를 잡았다. 친구 집에서부터 골목 안쪽으로 집들이 겹겹이, 켜켜이 들어차 있었으니 그 중 하나쯤 내 집으로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 때부터 10년이라는 시간이 나 몰래 흘러가 버린 것처럼 지났다. 그 사이 은평의 곳곳과 좁고 굽이진 골목에 익숙해졌다.
은평은 골목의 연속이다. 내가 살았던 불광동이나 녹번동은 직선으로 된 길이 거의 없다. 골목이 좁고 촘촘하게 나뉘어 있다. 그 골목의 어느 끝을 예상하고 걸어가다가 길을 잃기도 한다. 머릿속으로 구역을 나누고 이쯤에서 이어지리라 생각했던 골목은 엉뚱한 곳으로 이끈다. 숨은 듯 보이지 않던 사잇골목의 이어짐과 나뉨은 여전히 새롭다.
은평의 골목은 비탈길이 많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에서 “프란츠 카프카는 비탈길을 좋아했지. 온갖 종류의 비탈길에 마음을 빼앗겼어. 경사가 급한 비탈길 중간에 서 있는 집을 바라보기도 좋아했어. 길바닥에 주저앉아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그 집을 바라봤다네. 물리지도 않고 한 번씩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똑바로 세우기도 하면서.”라고 쓰고 있다. 비탈길은 멈춤을 유도한다. 걷다가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쉼. 내려다보고 올려다보고, 숨 한 번 쉬고, 돌아보고, 다시 한 걸음씩 내딛는 발걸음. 천천히, 한 걸음씩. 그 길에 북한산 봉우리 두어 개쯤 눈에 담는 것은 덤이다.
때로는 길에서 울컥 마음이 회오리를 치는 날들도 있었다. 마흔이 되기 전에 와서 오십을 코앞에 둔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눈물의 순간이 없었겠는가. 다행히 친구들이 있었다. 부끄럽게 흐르는 눈물을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 어디쯤 골목으로 새어 친구 집 벨을 누르면 맥주 몇 병으로 속이 시원해지기도 했으니 내게 골목길은 어둠에도 낯익은 위로의 길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한 동네에 산다. 친구 서너 명이 더 이사 와서 은평에 여러 명이 모여 산다. ‘삶은 춥다. 추울 땐 황제펭귄이 허들링을 하듯이 모여 살아야 옳다.’고 한 작가 은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집은 A친구 집과 맞은편이고, B친구 집과 ㄱ자로 떨어져 있고, C친구의 집과 대각선에 있다. 내가 내 집을 가늠하는 방식이다. 그 사이의 골목길은 친구에게 가는 길이고 차가운 가슴을 데우는 군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