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시간들
그때 너희가 그렇게 말했었지. 들을 땐 몰랐는데, 가끔씩 생각나더라. 그리고 한 십년쯤 지난 지금은 내가 나를 속이고 아웅하고 있었구나 싶어.
오랜 사이인 우리는 달에 한두번씩 셋이 만난다. 오늘은 친구 하나가 같이 가보자고 해서 성수동 디올 매장에서 전시를 봤다. 독특한 경험이었다. 이십대의 우리라면 절대 관심도 없었을 곳이지만,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이렇게 말했다가 친구들한테 혼남), 친구 따라 신기한 체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절대’라는 말은 시간의 변동 앞에서 종종 무색해진다.
언제나처럼 체험은 짧고 수다는 길었다. 나는 미국과
대구에서 두 아이를 둘이서(부부) 단촐하게 키울 때, 마치 육아중독자처럼 굴었다. 그때도 내가 귀국했을 때나 서울에 다니러 올 때마다 이 친구들을 만나 수다 시간을 가졌었다. 고만고만한 나이의 아이들 둘 또는 셋을 키우는 우리의 대화에서, 나는 자주 나의 아이들과의 즐거운 시간에 대해서만 주로 얘기했었다.
어색한 일이긴 하다. 집에서 아이들 돌보다가도 밖에서 친구들 만나는 시간이면, 그것도 육아 동지들과 함께라면 어디 가서 말못했던 고충을 토로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지. 게다가 아주 터프한 환경에 있는 나였으면 더더욱이. 그래서 그때 친구들이 그랬었다.
‘넌 좀 특이한 것 같아. 애들이랑 있으면 진짜 인내심 바닥나고 못해먹겠다 싶은 순간이 있을수밖에 없는데 말야.’
요즘 나는 알 것 같아지기 시작했다. 나도 분명 말도 못하게 힘들었고, 수천번 수만번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음을. 그럼에도 과거의 난 왜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단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좋은 엄마 컴플렉스가 있었을까.
친구가 말했다. ‘그런 거 아니었을까?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잠시 탈출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무의식이 억압한 거 아니었을까’ 라고.
듣고 보니 그런 거였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 나는 뒤늦게지만 도망치고 싶을 만큼 힘들었음을 인정할 수 있게 됐다. 그게 더 진실 쪽에 가까운 일이다. ‘힘들지만 행복한’ 게 아이들 키우는 일이지, 행복하기만 하고 전혀 힘들지 않을 수는 없는 거니까 말이다.
역시 시간은 종종 ‘절대’를 철회해주기도 한다. 지금은 힘들었음을, 때때로 도망치고 싶기도 했음을 인정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뒤늦은 감도 있지만, 아이들과 나와의 관계는 영원한 것이니, 분명 이 자연스러움쪽으로의 이동이 어떻게든 도움이 되어줄 것이리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