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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균열 May 25. 2020

001. 진실을 향한 시선; 지가 베르토프

지가 베르토프 Dziga Vertov의 미학이론, 키노아이

“자신의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줄 기술의 정수를 찾는다.” 오늘날, 영화라는 매체가 유희적 도구로 전락해버린 시대 속에서 과연 카메라와 카메라를 든 감독들이 응시하는 곳은 어디인지 반추해보게 만드는 말이다.


Dziga Vertov, Man with a Movie Camera (1929)


베르토프 Vertov에게 영화란 비단 이미지를 담아낸 매체를 넘어 세상의 진실을 드러냄과 동시에 담아낸 구슬과 같은 것이며, 이를 빛으로 영사(映寫)함으로써 그것의 아름다운 빛깔은 개인과 사회에게 다가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간주되었다. 따라서,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가 바라보는 진실된 세상의 모습을 어떻게 잘 담아낼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해당 장에서 그가 추구하는 영화의 목적과 카메라의 역할을 녹여낸 키노-아이 Kino-Eye 개념에 대해 제시하고, 해당 개념을 어떠한 방식으로 구현하고자 했는지에 대해 언급할 것이다.


베르토프는 당대의 소비에트 사회를 지배했던 마르크스의 Marx의 유물론 Materialism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즉, 관념으로 가득 메워진 세계관에서 벗어나 세상의 모든 것들을 물질의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따라서 베르토프가 카메라를 통해 투영하고자 했던 요소는 관념이나 서사와 같이 인간의 의식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물질 그 자체 혹은 물질적 지각 등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오롯이 물질들 간의 유기적 관계로써 직조되는 세상의 미묘한 움직임은 인간의 시·지각으로 쉽히 인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인간의 단편적 지각 행위와 제한적 의식 행위에서 비롯된 한계라고 파악될 수 있는데, 베르토프는 카메라를 이러한 인간 시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간주했다. 즉, 인간의 의식과 신체가 시·지각에 드리운 장막은 세상을 편협하게 혹은 왜곡된 상으로 바라보게 만들지만, 카메라의 무결함과 자유로운 이동은 그 장막을 걷어낸 채 물질로 직조된 세계 속에 스며들어 “사물의 운동과 리듬을 찾아내 있는 그대로 재구성해낼 수 있고, 현실의 조각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조직해 일상의 배후에 숨어 있는 진실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물질과 대면한 또다른 물질적 지각으로써 세상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카메라의 진실된 시선을 베르토프는 ‘키노-아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했다.


훌륭한 관찰자로서의 키노-아이는 크게 가시적, 비가시적 영역 모두에서 특별한 힘을 발산한다. 또한 우리는 각각을 ‘지각적’ 측면과 ‘구성적’ 측면으로 구분지어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는 무엇보다 그것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지각 형태로써 세상을 훨씬 더 면밀하게 지각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인간의 지각 범위 밖의 것까지 포착해낸다. 즉, 인간의 시선이 가닿을 수 없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의 시선이 좇을 수 없는 속도감 속에서 물질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는 키노-아이의 힘을 빌려 우리 인간은 보다 더 진실되고 넓은 세상의 모습을 감각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지각의 대상은 인간의 인위적인 연기나 움직임 등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필름에 켜켜이 쌓인 이미지들은 단지 기록물로써 남지 아니하고, 또다른 물질의 조각들로써 진실된 세계의 모습을 조직해낸다. 이처럼 키노-아이의 지각행위는 진실의 층위를 드러낸다는 합목적성에 의해 작용하기 때문에,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물질적 형태로 뒤이어 물질의 리듬에 맞게 구성하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는 현대 영화가 지닌 매체적 특질과는 완전히 방향을 달리하는데, 현대 영화 속 이미지 조각들이 현실적 층위에서 재현 혹은 상징과 같이 지표적 기능을 지닌 반면, 키노-아이가 담아내는 이미지 조각들은 진실의 층위에서 유효할 수 있는 코드로써 작용한다. 따라서 키노-아이의 의의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각각의 이미지가 지닌 지표들을 제거하고 진실된 세계를 구축해내는 중성적인 요소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현대 영화가 그러하듯 극적 효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의 배후에 있는 진실을 보다 잘 읽어내기 위한 영화 기술이 사용되어야 하는데 신속한 이동수단, 빛에 민감한 필름, 가벼운 카메라 등이 이를 위한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키노-아이를 주조해내기 위한 재료로써 ‘몽타주’와 ‘간격 Intervale’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다. 실은 구태여 해당 개념들을 키노-아이와 별개로 언급하는 게 무색할 만큼 각각의 것들은 이미 서로의 개념을 내포하고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키노-아이 개념에서는 ‘과연 카메라가 어떤 것들을 담아내는가’에 보다 초점을 맞추어 제시했다면, 몽타주와 간격 개념에선 ‘그것들을 영화 속에 어떠한 방식으로 담아내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베르토프에게 몽타주란 다른 감독들이 정의하는 것과는 다르게, 촬영 이후의 편집 과정을 칭하는 게 아니라 제작의 전 과정 속에서 이뤄지는 “정신적·물리적 구성작업”을 의미한다. 즉, ‘물질의 끊임없는 움직임과 상호작용’를 포착해내기 위해 예술가로서의 개인이 카메라의 눈을 달고 세계의 리듬과 끝없이 교감하며 모종의 진실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투철한 사투를 벌이는 일련의 과정이다. 따라서 몽타주의 과정 속에서 감독은 ‘다차원적 매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우주 내의 각기 다른 시공간에 놓인 물질들을 연결하는 매개자이며, 동시에 이러한 비가시적인 물질 간의 운동, 지각이 이뤄지는 물질 세계와 현실 속 관객들을 접하게 해주는 매개자다. 베르토프의 관점에서 세상은 “그 스스로 만곡되고, 평형을 이루고, 분배되고, 약분되고, 증식하고 있으며 끝없는 변증법적 운동 속에서 지속적으로 서로 작용하고 상호침투”하고 있는 물질들로 구성되어있다. 따라서 몽타주 과정에서 키노-아이는 이러한 물질 각각의 고유한 동태(動態)와 상호 작용을 비인간적인 시선으로 대면하고, 이를 그만의 지각으로 새로운 시공간적 차원에서 서로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물질에 지각을 부여함과 동시에 물질을 지각하며, 이러한 지각의 결과물들을 제작의 모든 단계에서 보다 표현하고 구성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키노-아이와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들 간의 역학관계는 곧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지각할 수 없었던 진실의 층위를 조금이나마 선명하게 드러내보이는 작품의 형태로 탄생한다.


‘간격’ 개념 또한 내재적인 관점과 외재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간격은 영화적 장치로써 물질을 표현하고 영화 속에 담아내는 방식을 결정짓기도 하며, 그러한 이미지에 모종의 힘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베르토프의 영화 속 이미지들 간의 관계는 특정한 서사의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한 연결고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의도적으로 그러한 서사적 알레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린 채 세상의 진실된 구성 원리를 체험할 수 있는 추상적인 장(場)을 마련하고자 했고, 그러한 간격 속에서 관객들이 새로운 지각을 할 수 있게끔 이끌었다. 또한 베르토프는 이를 위해 평면들, 단축법, 프레임 내의 움직임, 빛과 그림자, 촬영속도 등과 같이 이미지들 간의 관계를 보다 다채롭게 드러낼 수 있는 효과를 사용했다. 이 때, 키노-아이로 포착된 이미지들은 단순히 정지 상태의 ‘순간’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라는 개념이 그저 인간의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허상인 것처럼, 그에게도 ‘이미지’는 정지된 무언가가 아닌 끊임 없이 “생성 중이고 변주 중인 세계의 운동과 힘”이 내재된 장(場)인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이미지들 사이의 간격 또한 서로 상호작용, 즉 운동을 야기한다. 한 편 이러한 이미지들 간의 상호작용은 더 나아가 “보편적 변이의 세계로서의 물질적 우주”를 보여줄 수 있는데, 이는 서로 다른 차원의 시공간에 놓인 물질들 간의 간격으로 환원됨으로써 가능해진다. 즉,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의 즉자적 운동이 “다른 모든 물질과 부단히 상호작용”함으로써 세계 전체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간격 개념이 단순히 영화 내에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간격은 세상의 진실된 모습을 보다 생생하게 담아내는 장치로 기능함과 동시에, 영화 바깥의 관객을 진실의 층위로 이끌어내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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