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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균열 Jul 02. 2020

003. 사실상의 미학; 앙드레 바쟁

진정한 리얼리즘 Realism이란 무엇인가?

언젠가 필자는 알폰소 쿠아론 Alfonso Cuaron 감독의 <로마 Roma>라는 작품을 보고 한동안 감정의 시름을 경험했다. 분명 영화는 어떠한 중심적 서사와 의미를 둘러싸고 전개되지 않았고 어떠한 시점에도 뚜렷 하게 나를 찌르는 무언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 영화가 왜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으며 종래에는 큰 울림을 주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어왔다. 그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앙드레 바쟁 André Bazin의 영화 이론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더불어 영화의 진정한 사실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허상과 허구를 통해 현대인들의 감각을 마취시키는 사회 속에서 이러한 리얼리즘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Roma, Alfonso Cuaron (2017)

‘영화’를 논함에 있어 우리는 그것이 뛰어난 재현, 모방의 매체라는 것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재현’이 어떠한 의의를 갖고 목적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의견을 달리하게 되는데, 이를 기반으로 우리는 영화의 역할과 이상적인 표현 양식을 사유해볼 수 있게 된다. 앙드레 바쟁 AndréBazin은 영화를 조형 예술과 같은 것으로 간주했다. 그에게 있어 조형 예술이란 ‘겉모습을 보존하여 존재를 살려내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에 해당했고,조형 예술로서의 영화는 연속된 시간 속에서 대상의 외양을 그대로 필름 속에 담아냄으로써 존재의 순간까지도 보존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모방’을 가능케 한 것이다.


하지만 바쟁은 단순히 제시하고자 하는 대상을 온전히 담아냈을 때에만 영화에 사실성을 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이러한 물음 끝에 그는 빠짐 없이 모든 내용을 담아내는 것보다 내용을 진정성 있게 담아내는 것이 사실성을 갖추기 위한 조건이라고 보았다. 더욱이 그는 영화가 지닌 포착 혹은 재현에서의 필연적 불완전성 속에서, 오히려 영화가 단순한 기록 매체가 아닌 예술의 한 유형으로써 논의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줄 수 있음을 피력했다. 즉, 모든 것들을 프레임 안에 담아낼 수 없다는 한계로 인해, 감독은 어떠한 장면들과 대상을 ‘선택’하고‘주조’함으로써 영화만의 미학이 구축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오히려 모방을 벗어난 영화의 모방만이 역설적으로 지닐 수 있는 진정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다음으로 ‘사실’이란 추상적 개념을 바쟁이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사실을 ‘실제로 일어났던 일’ 정도로 간주하지만, 바쟁의 경우 연출된 장면들까지도 사실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무엇이 사실에 해당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선별하고 구성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즉, ‘사실’이라는 단일체만으로 리얼리즘이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단위 요소들, 관객들 간의 유기적 작용과 조합을 통해 진정한 의미를 산출해내고, 영화 예술이 구축될 수 있음을 논하고 있다.


Roma, Alfonso Cuaron (2017)

다른 한 편, 그는 몽타주의 사용에 대해 제한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그에게 영화의 이상적인 특질이 그것의 사실성에 놓여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성을 저해하는 몽타주는 지양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어떠한 사실 혹은 내러티브를 최대한 왜곡 없이 관객들이 지각하길 바랐고, 이를 위해 ‘시간의 지속성’과 ‘공간의 연속성’이 보존돼야 한다고 보았다. 즉, 몽타주는 불필요한 것만을 덜어냄으로써 작품의 개연성을 저해하지 한도 내에서 활용돼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영화적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한 촬영 기법으로 그는 시퀀스 쇼트 Sequence Shot 와 딥 포커즈 Deep Focus 등을 제시하였다. 시퀀스 쇼트의 경우, 하나의 시퀀스를 컷 없이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시공간의 연결성을 확보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 편, 딥 포커즈의 경우 보다 특별한 위치를 점하는데, 그것은 오히려 관객의 수용보단 참여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즉, 감독은 작품의 전체성 혹은 진정성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관객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관객들은 여러 이미지가 한 데 담겨있는 장면에서 무언가를 선택함으로써 그것의 다양한 의미를 파악해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영화의 기본 단위를 이미지-사실 Image-fait 로 규정함으로써 그만의 리얼리즘 개념을 영화 속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제시한다. 앞서 밝힌 것처럼 그에게 리얼리즘이란 사건에 대한 단순한 모방이 아니며, 그 중에서 진정성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의 제거’와 같다. 따라서 그것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본질적인 요소들까지 제거하는 것은 그가 추구하는 리얼리즘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이로써 영화의 기본 단위는 ‘실제 삶의 연속된 순간들’이 되어야 하며 그러한 순간들은 모두 존재론적으로 평등하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그것은 이미지-사실 각각이 이미 그 자체로 다양성을 지니기 때문이고, 각각이 내포하는 다양성은 곧 다른 사실들과 상호작용함으로써 모종의 의미가 드러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때의 ‘의미’란, 특정한 관점에서의 분석에 앞서는 현실의 풍부함이다. 즉, 개인의 독자적인 삶의 배경과 경험을 토대로 주어진 이미지-사실을 감상함으로써 훨씬 더 풍부한 의미를 산출해낼 수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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