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잃은 아이의 나이는 스물일곱
하비에르 사네티의 인터 밀란으로 유럽 축구에 입문한 나는 위르겐 클롭의 게겐프레싱에 빠져 도르트문트 서포터라는 종신형을 받게 되었다.
살면서 도르트문트와 가장 가까운 곳에 살았던 시절, 교환학생 신분의 나는 수업을 빠지고 참 많은 곳을 쏘다녔다. 행선지 중에는 당연히 도르트문트도 있었다. 스텁허브에서 큰맘 먹고 산 최고로 좋은 자리의 표 가격은 2주치 생활비와 맞먹었지만, 이왕 보는 거 제대로 보고 싶었다.
기차와 야간버스에 몸을 싣고 도착한 지그날 이두나 파크는 정말이지, 웅장하고, 아름답고, 벅차오르는 모습이었고, 비극의 시작이었다. 나는 사기를 당했다. 아무리 바코드를 입력해도 유효하지 않았다. 직원은 사무실로 나를 안내해줬고, 나와 같은 이름의 판매자로부터 사기를 당한 한국인 1명, 그리고 벨기에인 2명이 나를 반겨줬다.
방법이 없다는 통보를 받고 낙담하고 나왔을 때는 전반전이 끝날 무렵이었는데, 약 1시간 전 입장을 위해 싱글벙글하며 줄을 서고 있을 때 옆에서 암표를 판매하고 있던 사람이 보였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오직 이 경기를 보기 위해, 중학생 때부터 좋아하던 지구 반대편 나라 축구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온 나를.
암표를 팔던 사람은 경기장 외곽의 가장 먼 자리에 정말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불렀다. 내가 사기를 당했던 표와 거의 맞먹는 가격이었다. 돈이 없어 영어를 못하는 그 사람에게 가진 모든 지폐를 꺼내 흔들며 손짓 발짓을 하며 흥정을 했다. 결국 나는 그 표를 샀다. 마침내 경기장으로 들어간 내가 느낀 감정은 말해 뭐하겠는가.
절대 후회하지 않을 줄은 알았다. 수업을 빠졌고, 국경을 넘었고, 사기를 당해 거의 한 달 치 생활비의 가격을 내고 좋지 않은 자리에서 후반전만 볼 수 있대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줄을 알았지만, 만족을 해버렸다. 아는 형의 말처럼 그 차이는 정말 컸다.
요즘 나는 그때 생각을 한다. 한다기보다는 났다. 그때 생각이 났다. 만족을 하기 위해 살다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 살다가, 후회를 하며 산다. 그 차이는 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