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멀고 연구실은 가깝다
요즘의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하는 오매불망이고, 그 대상은 내 첫 논문이다. 남은 기간보다 지나온 기간이 길어진 (맞겠지?) 대학원 생활의 반환점에서 나는 내 이름 들어간 논문 한 편이 없다.
누가 물어보면 아니라고는 하지만, 나는 요즘 매일 같이 나의 심연을 본다. 그도 나를 본다. 자격지심이라고 매번 합리화하던 내 오래 찌든 열등감. 성실성을 위한 연료라 위안하기도 했다. 나는 나보다 먼저 좋은 논문들을 내는 친구들을 축하하며 살면서 겪어본 적 없는 상태에 놓였다.
내 논문 결과는 언제 나오나. 작년 7월에 처음 제출했으니 반년이 넘었다. 내가 누른 새로 고침의 수를 센다면 아마 기네스북에 오를 것이다. 첫 수정본을 제출한 10월부터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논문을 쓰지 못하는 대학원생은 무슨 쓸모인가.
최근 2주는 대단했다. 다음 달 중요한 실험을 앞두고 중요한 장비에 내리 문제가 생겼다. 한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겼고, 그 문제를 해결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그럼 나는 사수와 함께 문제를 해결했고, 해결했고, 해결하고 있다. 그렇게 수리 중인 장비로 얻은 결과도 일단은 만족스럽다.
그 순간만큼은 한순간에 없어졌다. 그 순간만큼 나는 방법을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원하던 대로 되었을 때는 정말 짜릿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2주는 정말 대단했다. 새로 고침을 거의 누르지 않았다. 제출한 지 반년이 지난 논문은 내가 아니었고 그 저널이 가진 평판 또한 내가 아니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적이 있는데, 한순간에 사라지는 건 내가 아닌 거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방법을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
대학원은 정말 굴욕적인 곳이다. 실패와 무지의 굴욕에 익숙해지면서도, 결국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곳이다. 그 속에서도 찾고자 하는 것은 몰입에 그에 따른 성취, 그리고 그게 나라는 것. 박사를 Doctor of Philosophy라고 부르는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