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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Sep 19. 2024

thisiswater

theocean?

박사가 되었다. 사실은 조금 됐다. 6/11일, 화요일 오후 2시. 이 날짜를 잊을 수 있을까 싶다.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지도 교수님도, 같이 일하던 타 기관 박사님들이 나를 학생이 아닌 박사라고 부르기 시작하긴 했어도, 스스로가 아직 어색하다. 정상보다 빨리 졸업한 탓도 있겠지.


이렇게 늦게까지 공부를 할 줄은 몰랐다. 처음엔 그저 재밌어서 시작했다. 원래 처음 하는 건 웬만하면 재밌으니까. 그다음에는 엄마가 시켜서 했다. 이때부터는 공부하는 걸 싫어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수단이 되었다. 나 자신을 남에게 보여주고, 과시하기 위한.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대학에 입학해 시선에 담긴 위계를 누리기 위한. 나는 이때가 공부의 끝인 줄 알았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몇 가지 변곡점 중 하나를 맞이했다. 대학원에 입학한 이유를 깨달은 순간이었고, 공부가 정체성이 된 순간이었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수년간 나를 괴롭게 한 것은, 아직까지 내 인생 최고 업적이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에 입학했다는 단 하나였다는 것이다. 자신을 소개해 보세요. 저는 여기 학생입니다. 아.

얼마 전부터 나는 나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내가 전공하는 특정 분야를 공부하고 세상에 없던 지식을 연구하는 사람. 문제를 해결하고, 그를 위해 몰두하며, 성취의 희열을 느끼는 사람. 자신을 소개해 보세요. 저는 이것을 위해 무언가를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아하.


스스로가 아직 박사라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깊이에 도달하지 못한 채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정도는 깨달아야 박사겠지, 근데 내가? 소울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번에 부산에 내려가서 외할머니 집을 들렀다. 외할머니는 항상 하던 말씀을 또 하셨다. 어찌 되든 남한테 안 뒤지도록 열심히 하라고. 그래, 박사 딴 게 뭐라고.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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