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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Oct 25. 2020

취향 문구점 | 프롤로그, 나의 취향을 소개합니다.  

취향 문구점


취향이 많은 것이 취향. 호불호 중 '호'가 너무 많고 강해서 이제부터 좋아하는 것을 기록하기로 하였습니다. 나의 취향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다르지만, 같은 취향을 발견한다면 무척 반가울 것 같아요. 




'단점: 호불호가 강한 편.'

초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 나의 통지표에 적어준 평가였다. 


"엄마, 호불호가 강하다는 게 뭐야?"

"응, 좋고 싫음이 강하다는 뜻이야."


'호불호가 강하다.'는 평가가 장점에 적혀 있었다면 달랐을까. 나는 좋고 싫음이 강하다는 것을 평생 고쳐야 할 숙명(?)처럼 여기고 살았다. 면접을 볼 때도,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도 나의 단점을 묻는 질문에 늘 '저는 좋고 싫음이 강한 편입니다.'라고 머쓱하게 말하곤 했다. '내가 뭘 싫어하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때마다 

뭐가 싫은 지 딱히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어찌 됐든 싫어하는 것을 표현하지 말아야겠다고 나를 훈련하며 살았다. 


몇 년 전, 친한 동생이 가게를 오픈하여 열심히 축하의 인사를 전하던 중이었다. 


"누나. 누나한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너무 슬플 것 같아."

"응? 무슨 소리야?" 

"누나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진짜 표현을 잘하잖아. 그래서 그 사랑을 못 받는 사람은 소외감을 느낄 것 같아. 누나가 너무 좋아하는 걸 잘 표현해줘서. 고마워" 


아, 나는 그동안 '호불호가 강하다.'는 것을 왜 호'불호'가 강하다고 생각했지? 생각해보니 나는 '호'가 아주 많고 강한 사람이었다. 나는 싫은 상황이나 불편한 것에 대해 표현하는 것에 아주 서툰 사람이지만, 좋아하는 것을 유난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너는 어쩜 이렇게 손목도 가늘고 예뻐? 다음 생엔 삼신할매한테 꼭 너처럼 태어나게 해달라고 할 거야."

"양말 잘 신는 사람 진짜 존엄하지 않니? 그런 사람이 지나가면 프러포즈까지 하고 싶다니까." 

"오빠 나는 진짜 오빠를 너무 사랑해. 내 심장이 폭발하면 어쩌지?"

"이 노래 들어봤어? 진짜 좋다니까. 내가 죽을 때 단 하나의 노래를 가지고 갈 수 있다면 이 노래를 선택할 거야."


아, 나는 '싫은 게 강한 사람'이라기보다 좋아하는 것이 많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아주 재능이 있는 사람이구나! 그것을 깨닫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도, 경험도 다양해져서 요즘엔 좋아했던 것을 잊고 살았던 경우를 종종 발견하곤 한다. 

'아, 이 브랜드 내가 참 좋아했었는데 이번에 쇼룸을 냈구나.', 

'이 노래 너무 좋아해서 싸이월드 bgm으로도 해놓았었는데 잊고 살았네.' 

'저 영화배우 진짜 좋아해서 잡지 스크랩까지 했었는데 이번에 결혼하네.'


예전에는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 알알히 좋아하는 이유를 말할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는 '왜 좋아하는지'를 다 잊어버려 '좋아한다.'라는 감정만 남아버린 것을 자주 발견했다. 


열심히 덕질을 하던 해리포터에서 가장 탐났던 물건은 투명망토도, 올리벤더 가게의 지팡이도 아닌 바로 '펜시브'였다. 덤블도어는 무려 100년을 넘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일을 겪을 때마다 펜시브에 그 기록을 저장하곤 했다. 펜시브 덕에 덤블도어는 지나간 일도 제때제때 꺼내어 볼 수 있었고, 현명한 결정들을 내릴 수 있었고, 더 멋진 사람으로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덤블도어가 될 수 없고 펜시브를 살 수도 없지만 나만의 취향 문구점을 만들어서 자주 꺼내보기로 했다.


좋아했던 것을 언제든지 추억하고,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표현할 수 있도록

취향들을 기록해야지. 


기록하고, 감각하고, 공유하는 나의 취향은 

앞으로 더 짙어지고 빽빽 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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