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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원 Mar 20. 2020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섬세함과 웅장함이 이루는 아름다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은 고전음악의 피크 (peak)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이다. 이 곡을 듣고 있자면 마치 비엔나로 순간 이동하여 아름답게 장식된 드레스를 입고 연주회장에서 우아하게 감상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곡은 바이올린의 고음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해주고, 바이올린의 연주가 잠시 멈췄을 때 웅장하게 치고 들어오는 오케스트라 투티(tutti)가 대조를 이루어 마치 우주만물의 극과 극을 본 듯하다. 연주해보고 싶은 곡이었지만 연주와 콩쿠르의 연속으로 미루고 미루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바이올리니스트 Soovin Kim의 베토벤 협주곡 연주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 특히 3악장 마지막 페이지의 여운은 대단했는데, 자그마치 50분 정도 되는 대장정을 함께하다가 마지막엔 복합적인 감정이 폭죽처럼 터지며 끝나는 해피앤딩의 느낌이었다. 그 여운이 고마운 촉매제가 되어 그다음 날부터 악보를 집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만 새로운 곡을 시작하는 건 설레는 일이다. 꼬꼬마 시절 선생님이 새로운 곡을 내주실 때면 부픈 마음을 안고 악보 상점으로 쪼르르 달려가 코팅된 빳빳한 악보를 손에 쥐고, 보면대에 악보를 피고 한 음을 긋고 나면 아직 길이 들지 않아서 언제 폈냐는 듯 다시 닫혀있는 악보를 무릎에 올려놓고 다시 꾹꾹 폈다. 그리고 듣기만 하던 곡을 느리지만 내 손으로 한 음씩 만들어냈을 땐 마치 새하얀 도화지에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그림을 실현시키는 듯한 느낌이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많은 곡을 연주했지만 아직도 새곡을 대할 때 그 느낌이 주는 창조의 희열은 변함없다.


그렇게 부푼 마음을 가지고 마주한 첫마디 -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첫마디는 바이올리니스트 사이에서 음정 맞추기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편안히 앉아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할 때는 문제없을 것 같았는데 실전은 달랐다. 베토벤 협주곡 특유의 맑고 투명함과 베토벤을 향한 경의로움 때문인지 그의 곡은 조금이라도 더 신경 쓰고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런 순간엔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Martha Argerich)를 떠올려본다. 그녀는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거장인데, 심지어 그녀가 연거푸 거절을 날려도 굴하지 않고 오케스트라는 계속해서 섭외 전화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베토벤의 음악을 대하는 잣대가 높아서인지 그 기준에 미달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자신의 베토벤 협주곡 3번은  "very bad"고 5번 협주곡은 연주 못하시겠다는 Argerich님.... (네?)

 


그렇게 어찌어찌 혼자만의 시간이 흐르고 피아노와 맞춰보기로 한 어느 날이었다. 하늘이 수채화처럼 보라색과 분홍색으로 물든 느지막한 저녁이었고, 피아니스트와 나는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어느 방에서 만났다. 그분은 만나자마자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셨고 예쁘게 포장되어있는 조그마한 종이 상자를 건넸다. 예쁜 스티커로 닫혀있던 뚜껑을 열어보니 예쁘게 놓여있는 수제 마카롱. 이런 순간들이 바로 소소한 행복이 아닐까? 그렇게 당 충전도 하고 마음도 따뜻해진 그 날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전하게 연주했다.


얼마나 많은 곡을 연주했던, 새 곡을 처음으로 탄생시키는 순간은 매번 특별한 것 같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 마카롱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 힐러리 한 (Hilary Hahn)의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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