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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Apr 01. 2024

그림자 바라보기.

To Each Other - Adam Bokesch

“너 지금 나 협박하니?”


“아니, 협박하는 게 아니라, 필요하니까 말하는 거야.”


“너, 네가 일해서 벌면서 약을 먹어 차라리.”


*


“나 외로워.”


“얼른 남자친구 만들어야겠네. “


“아니, 그런 외로움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 같이 있어도 외로워.”


*


“나, 너랑 대화하고 싶지 않아.”


“그럼 난 누구랑 얘기해야 돼? “


*


“너는 나만, 나만 모르는 체 하지.”


”그리고 지금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으로 다른 사람도 똑같이 쳐다봐. 왜 나만 그렇게 봐? 왜 나한테만 그렇게 (냉정하게) 반응해? 왜 나는 네가 힘든 걸 눈치 봐가면서 대화를 꺼내야 해? 다른 사람들이랑 대화할 땐 안 그러잖아. 내가 만만이야?”


*


“너네 삼촌도 그렇고, 이모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나를 가만 못 둬서 안달인데?”


“왜 나랑 대화하는데 삼촌이랑 이모까지 묶어서 말해? 삼촌 일은 삼촌이랑 얘기하고, 이모한테 불만인 건 이모한테 말해. 왜 나랑 얘기하는데 안 좋았던 거 다 끄집어서 나한테 다 쏟아붓냐고. 왜 나한테만. 언니한테도 안 그러고, 아빠한테도 안 그러잖아. “


*


”불쌍한 척하지 마. 안 불쌍하고 왜 그러나 모르겠어. 왜 그래? 정말? 왜 자꾸 자기 배가 나왔다는 둥, 자꾸 주름이 늘어간다는 둥, 못생겼다는 둥 왜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지 마.”




***


엄마와 대화하고 싶었고, 엄마는 피곤하다고 미룬다. 자꾸 내가 가진 그림자를 보기 싫어? 힘들어? 한다. 힘들다는 쪽이 좀 더 맞는 표현 같다.


엄마는 왜 그렇게 내 표정을 무서워하고, 힘들어하는 건지.

경험 상 이해는 되지만, 가만 보면 내 감정에 대해서 유난히… 무관심해왔고, 무반응이다. 아니, 반응하지만 무반응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 엄마가 좀 불쌍하다, 겁에 질려있는 엄마.


엄마가 불쌍해서, 나는 내 그림자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괜찮은 척하고 살았다.

엄마가 그림자를 다루는 방법은 ‘긍정’이라고 이름 붙인 철저한 외면이었다. 그런데 난 엄마의 방법이 맞지 않았고, 더 커다란 그림자는 나를 집어삼켰다.

그래서 그림자를 뒤집어쓰고 엄마에게 다가가 노크를 하면, 엄마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다시 엄마의 환한 세상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다시 내가 스스로 그림자를 벗어던지라고 뒤돌아서 조언할 뿐이었다.


*


“저기, 긍정도 주기가 짧아지는 것 같은데 어떡하지?”


“잊어버려 그냥.”


*


사실 엄마뿐만 아니다. 아빠도, 언니도. 그리고 나조차도, 가장 바라봐줘야 하는 나조차도 내 그림자를 무시해 왔다. 그래서 그 그림자가 지금 어마무시하게 커다래져서 나를, 내가 여기 있다고, 버젓이 있는데 왜 못 본 척하냐고 인정해 달라고 소리 지르고 있다.


내가 가진 부모에 대한 원망은 왜 내 그림자와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 에 대한 건데 사실… 그런 부모는 정말 드물지 싶다. 아이의 그림자를 알고 대화하는 그런 사람은 참 드물다.


한편으로는 정말 공감도 잘해주고, 먼저 들어주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참 귀하고.. 부럽다.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은 잠깐 가지고 있다가 놔버리자. 부모를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용서하자는 것도 아니다. 감정을 여기저기 묻히지 말고 내가 그냥 그랬거니… 생각하자.



잠깐 언니에 대해서 부러운 점은, 엄마는 힘들어했을지언정 언니의 그림자는 똑바로 바라보고 안아줬다.

그래서 나는 더 서운함을.. 모르겠다. 그래서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부모가 안아주는 것보다 스스로 껴안는 게 더 위로가 되기도 한다.


엄마는 나에게 인형을 사줬다.

애착인형, 이런 건 없는데 어제는 혼자 토끼인형을 안고 잠들었다.

어릴 때 상상친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인형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받고 싶은 스킨십을 인형에게 해줬다. 뒤통수를 쓰다듬어주고, 손을 잡아주고, 품에 껴안아주고. 내가 받는 게 아니라 해주는 건데 위로가 됐다.

부모가 어린 자식에게 위로받는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조금은 이해가 갔다. 해줌으로써 ‘위로받는다.’는 건가 싶다.


***


약 이야기는… 내가 필요하다고 느껴져서 말한 건데 엄마가 흥분해서 반응할 줄 몰랐다.


엄마가 스트레스가 확 올라가면 유독 나에게는 마음껏… 분출하는 느낌인데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 존중받는 느낌이 아니고 기분이 정말 나쁘다. 아마 엄마도 나에 대해 똑같이 느꼈겠지. 엄마나 나나 집안에서 크게 화내지 않는 부류였으니까.


사람들은 거울 같다.

메롱하면 메롱하고, 눈물 흘리면 눈물이 나오고.


이렇게 지지고 볶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있으니까 지지고 볶는 거다.



엄마도 힘들겠지. 그런데 엄마도 나에게 그랬듯이 나도 엄마의 힘듦을 짊어지고 싶지 않다. 미워서도 아니고, 싫어서도 아니고, 그냥 내가 힘들어서 그렇다.

우린 왜 그렇게 여유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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