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스테이블코인을 바라보는 관점
미국 상원이 오늘(6월 17일) ‘GENIUS Act’라는 스테이블코인(달러 가치에 고정된 코인) 법안을 표결합니다. 12일 예비 표결을 68 대 30으로 통과했으니, 이번 표결은 사실상 상원의 마지막 절차입니다. 상원을 통과하면 하원과 대통령 승인 단계가 이어지며, 빠르면 올가을 ‘달러 담보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연방법에 정식 등록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법안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발행사가 스테이블코인 1달러어치를 찍으려면, 현금이든 만기 90일 이하 미국 국채이든 똑같이 1달러어치를 반드시 예치해야 합니다. 준비금 내역을 매달 공개하고, 회계법인 감사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며, 이를 지키지 못하면 발행 자체가 금지됩니다.
그런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코인을 규제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미국이 왜 지금 제도권 편입에 힘을 쏟는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달러 패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달러 패권이 작동하는 흐름을 한 줄씩만 잡아보면 이렇습니다.
1. 달러 수출
미국은 의도적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유지하며 해외에 달러를 흘려보냅니다.
(미국이 물건을 사 주면, 다른 나라들은 달러를 벌어들이죠.)
2. 달러 보유 → 미국채 구매
이렇게 번 달러를 각국 중앙은행과 국부펀드는 ‘가장 안전한 자산’인 미국 국채에 다시 묶어 둡니다.
달러는 다시 미국 재무부로 되돌아오는 셈입니다.
3. 국채 발행 → 달러 창출
미국은 외국이 사 준 국채를 담보 삼아 추가로 달러를 발행하거나, 재정지출·투자를 이어갈 여력을 얻습니다.
4. 순환 고리 완성
달러가 해외에 퍼질수록 → 해외는 국채를 더 사게 되고 → 미국은 또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달러 공급–국채 수요–달러 발행’이 돌아가는 구조가 완성됩니다.
이를 통해 미국은 막대한 빚(채권 발행량)을 지면서도 이자만 지불하며, 계속해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 시스템에 문제가 생깁니다. 과거 미국채의 최대 매입자였던 중국과 일본이 최근 들어 매수 규모를 줄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미국채 비중을 낮추고 금을 사들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석유 등과 같은 자원의 위안화 결제 확대에 집중하고 있으며, 일본은 엔화 약세를 방어하려고 달러를 소진하면서 보유 국채를 현금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GENIUS Act가 통과되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때마다 자동으로 단기 국채를 매입해야 하므로, 미 재무부에는 미국채를 매입해 줄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라는 '새로운 큰손'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미국은 달러 유동성을 블록체인 안에 묶어두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달러와 1대 1로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거래의 기본 통화로 자리 잡았고, 암호화폐 시장이 성장할수록 그 수요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이러한 흐름을 공식 규제와 법제화로 제도권 안에 끌어들인다면, 자연스럽게 위안화 같은 경쟁 통화의 확장을 견제할 수 있게 됩니다. 즉,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이 커질수록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그만큼 다른 통화가 연동된 코인의 발붙일 공간은 줄어들게 됩니다.
나아가 규제가 명확해질수록, 대형 금융기관이나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을 정식 결제·정산 수단으로 채택할 가능성도 커집니다. 이 경우, 코인이 발행될 때마다 미국 국채나 현금이 담보로 묶이게 되므로, 그 자체가 단기 국채 수요 증가로 이어지며, 미국은 전통 금융시장 바깥의 블록체인 영역에서도 자연스럽게 더 넓고 깊은 ‘국채 수요의 디지털 저수지’를 확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 법안의 핵심은
– 달러 패권 유지
– 미국 국채 수요 안정
– 암호화폐 시장 통제권 확보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겨냥한 미국의 정교한 설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과거 ‘그림자 달러’ 사고를 막는 목적도 있습니다. 테더(USDT)는 담보 내역이 불투명해 “달러 없이 달러를 찍었다”는 의혹을 받았고, 테라·루나(UST)는 무담보 알고리즘 방식으로 발행되다가 하루아침에 붕괴했습니다. GENIUS Act는 이러한 위험 모델을 법으로 걸러내는 안전장치 역할을 합니다. 결국 투명하게 준비금을 공개할 수 있는 대형 발행사(USDC, RLUSD 등)만 살아남고, 불투명한 코인은 설 자리가 좁아질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코인을 발행하려면 현금이나 국채를 같은 액수만큼 담보해야 하며, 이를 통해 중국·일본이 줄인 국채 수요를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메우게 됩니다. 법안이 완성되면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국채 담보 디지털 달러’로 공식화되어, 암호화폐 시장이 달러·국채와 직접 연결된 제도권 레이어로 도약할 것입니다.
향후, GENIUS ACT가 미국 달러 패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암호화폐 시장이 미국 금융 패권을 지탱하는 '달러 수송'의 새로운 혈관이 될지 지켜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