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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한 Sep 18. 2023

50대 자린이 부부, 제주도 자전거 여행 마지막날

50대 자린이 부부, 제주도 일주 자전거 여행기


여행 3일 차, 마지막 날 엄청나게 거센 바람을 만나다. 이대로 갈 것이냐, 포기할 것이냐?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호텔 객실 창문 커튼을 열어젖히니 제주의 청명한 파란 하늘이 반긴다. 마지막 날의 날씨도 좋아서 안심하며 부지런히 짐을 챙겨서 호텔을 나왔다. 아침 식사는 가다가 전망 좋은 카페에서 브런치로 먹기로 하고 마지막 날 구간을 신나게 출발하였다. 마지막 날 구간은 제주도의 북쪽 해안 구간으로 성산일출봉 인증센터에서 출발하여 여행의 첫 출발지였던 용두암 인증센터까지 달리는 구간이었다. 거리는 총 63km, 3일 중에서 제일 짧은 구간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유난히도 바다 색깔이 예쁜 것에 감탄하며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천천히 달리며 브런치를 먹기 좋을 만한 전망 좋은 카페를 찾았다. 30여 분 달리자 최적의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카페 ‘온더스톤 성산’ 해안가에서 도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지만 2층이 있어서 바다가 잘 보일 것 같은 카페였다. 카페에 들어서자 맛있는 음식 냄새와 커피 향이 반긴다. 주문하기 전에 2층에 올라가서 전망부터 확인하였다. 예상한 대로 바다 전망이 멋지게 펼쳐져 있을 뿐만 아니라 때마침 창가에 빈자리도 있는 게 아닌가! 잽싸게 자리를 맡은 뒤 향긋한 커피와 함께 먹물 빵으로 만든 파니니와 버거를 주문하였다.     



바다 색깔은 날마다 바뀐다고 한다. 햇볕에 따라서, 바다 온도에 따라서, 그리고 바람에 따라서… 이날의 바다는 정말 유난히도 아름다웠다. 마치 고흐가 유화 물감을 풀어 그려 놓은 듯 아름다웠다. 그런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 모금하고 있으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들이 그토록 평화로울 수 없었다. 육체적 피로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고 행복하였다. 옆에 있는 와이프도 창가를 바라보며 감탄을 연발한다. 브런치를 다 먹고도 한참 동안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보다가 나왔다. 



근방에 들를 곳이 또 한곳이 있었다. 대학 후배가 제주에서 펜션을 한다며 수년 전부터 연신 SNS에 소식을 올리던 게 기억이 났다. 언젠가 제주도를 가면 한번 찾아가 보고 싶었는데 그곳이 오늘 가야 하는 구간의 도로 바로 옆에 있었다. 조금 달리다가 보니 SNS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건물의 펜션이 보였다. 사전에 아무 연락도 안 하고는 펜션 앞에서 전화를 했다. 다행히 곧바로 받았다. 


오랜만에 통화라 반갑게 몇 마디 나누다가 ‘나 지금 너희 펜션 앞이야.’ 했더니 곧바로 후다닥 쫓아 나왔다. 후배 녀석을 수년 만에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펜션에 들어가 차 한잔하며 제주 생활 얘기도 듣고, 어떻게 이곳까지 와서 펜션을 하게 되었는지 사연도 들으며 회포를 풀었다. 펜션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다음에 올 때는 이곳에서 숙박을 해야겠다는 공수표를 날리며 작별을 하였다. 펜션이 있는 하도리를 뒤로하며 다시 용두암을 향해 출발하였다. 



어느 시점부턴가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의 세기가 점점 강해져 갔다. 자전거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졌고 페달을 밟는 힘은 몇 배나 더 들어갔다. 그래도 꾸역꾸역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자전거 도로와 바다가 있는 모래사장 사이에는 1~2m의 낭떠러지가 계속 이어졌다. 거센 바람에 휩쓸려 도로 밑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낭떠러지 밑은 모래사장도 있었지만 바위들도 많이 있었다. 뒤따라오는 와이프가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힘들어도 잘 따라오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일러 두니 걱정하지 말란다. 


하지만 바람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더 강해져 갔다. 바람이 휘몰아칠 때는 순간순간 휘청휘청할 정도였다. 낭떠러지를 계속 옆에 두고 가기엔 너무 위험해서 안 될 것 같았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가로질러 좌측 편에서 타기로 마음먹고 건너갔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서 더 위험한 상황에 부딪혔다. 좌측은 자전거 도로가 중간중간 끊겨서 자동차와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는 상황에 몰렸다. 결국 다시 해안가 쪽으로 건너왔다.


여행 마지막 날,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은 거세게 변해갔다. 거센 맞바람을 맞으며 라이딩을 이어가다가 힘들면 내려서 끌고 가다가 다시 타다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아갔다. 바람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거세게 변했다. 도저히 페달을 밟을 수 없을 정도였고, 자칫 잘못하다 가는 해변 쪽으로 떨어져 크게 다칠 것 같았다. 자전거에서 내려 걷기로 했다. 바람에 모래까지 실려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도 힘들 정도로 바람은 거세었다. 바람이 그칠 줄 모르니 머리 속도 복잡해졌다. 이런 상태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며, 그만 완주를 포기하고 자전거 대여점에 전화해서 차를 몰고 와서 데려가 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와이프가 그러지 말고 잠깐 해안 도로가 아닌 시가지가 있는 내륙으로 들어가서 바람을 피하며 달리자고 한다. 우리 와이프 참 똑똑하다는 생각과 함께, 왜 나는 그런 생각을 못 했지 하는 어리석음을 자책하면서도 어느새 자전거 방향은 시가지 쪽으로 향하며 달리고 있었다.


 해안가로 뻗은 자전거도로를 벗어나 시가지 안쪽으로 들어오자,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지만 해안가보다는 거세지 않았고, 무엇보다 낭떠러지가 없어서 위험하지 않았다. 게다가 바람에 모래도 실리지 않아서 좋았다. 한동안을 달리자 드디어 ‘김녕성세기 해변 인증센터’가 나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휴식과 함께 에너지 보충을 하였다. 마지막 날 가야 할 구간의 반 정도를 왔는데, 날씨가 이렇게 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부터 부지런히 달릴걸. 그랬으면 지금쯤 거의 도착했을 텐데.’ 하는 때늦은 후회도 해봤지만 무슨 소용인가. 아침에 맑은 하늘과 조용한 바람을 보고는 피날레가 깔끔할 것으로 예상하였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날씨가 이렇게 변할 줄이야. 역시 제주는 삼다도가 맞나 보다. 바람, 여자, 돌이 많은 곳이 맞다. 바람이 많을 뿐만 아니라 바람의 거세기가 상상초월이다. 일찍이 먼 옛날 해병대 시절 백령도에서 이렇게 거센 바람을 2년 반 동안 겪어 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때 제주에서 겪은 바람에 비하면 백령도의 바람은 얌전한 편이었다. 달달한 간식, 시리얼 바와 영양갱으로 에너지 보충을 하고 다시 출발하였다. 다음 목표는 ‘함덕서 우봉 인증센터’까지 가는 것인데 멈출 줄 모르는 바람에 출발하기도 전에 기가 죽었다. 어떻게 해서든 거기까지 간 다음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거센 바람에 서로 조심을 하라며 걱정을 해주면서 출발했다. 고난이 앞에 있지만 옆에 누군가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서로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것 같았다. 


 

바람이 거세게 불자, 잔잔한 바다는 온통 하얀 파도로 뒤덮혔다. 제주 환상 자전거 도로는 대부분 해안가 쪽에 있었기 때문에 인증센터도 대부분 해변에 있었다. 그래서 다시 시가지로 들어갈까 생각했는데 트럭들이 많이 다녀서 도로로 달리기가 무서웠다. 바람까지 불어 대니 더 무서워서 다시 해안가로 나와서 자전거 도로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지없이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니 아침에 보았던 고흐가 유화물감으로 그려 놓은 것 같은 그런 예쁜 바다가 아니었다. 큰 파도들이 거센 바람에 출렁이며 바다를 온통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자전거 여행만 아니었으면 해안가 모래사장을 우두커니 서서 거센 바람에 맞서고 싶은 묘한 충동이 일었다. 바람에 맞서며 우두커니 서서 하얗게 일어나서 부서지는 파도 구경을 하는 것도 나름 멋지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한가한 상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내려서 끌고 가다가, 다시 타고 가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조금씩 전진에 전진을 해갔다. 인증센터 간에 거리가 제일 짧은 9km의 구간이었지만 가장 길게 느껴진 구간이었다. 


 ‘함덕서우봉 인증센터’는 함덕해수욕장에 위치하고 있었다. 평소 함덕 해수욕장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곳이다. 에메랄드빛 바다 색깔에 양쪽 해안이 포근하게 감싼 아담한 해변으로 그림 같은 곳이다. 그곳에 드디어 도착했는데 아름답기로 유명한 해변은 거센 바람에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안 보이고 거센 바람과 바람에 날리는 모래가 회오리치며 반길 뿐이었다. 모래가 바람에 힘없이 날리며 휙휙 춤을 추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장면은 흡사 황야의 무법자에나 나올 법한 황량한 풍경이었다. 인증센터에 잠시 머물며 점심 먹을 곳을 찾았다. 해변에서 가까운 식당들은 모두 문이 닫혀 있었고 영업을 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내륙 쪽 방향으로 들어가면서 영업하는 식당을 찾았다. 


보말칼국수 메뉴가 적혀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주민들만 찾는 집인지 외지인이라고는 우리 밖에 안 보였다. 코로나 시국에 바람까지 거세니 관광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고 현지인들 몇 명과 우리가 전부였다. 자전거 복장을 하고 들어가니 식당에 앉아 있던 현지인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이렇게 바람이 거센 날 자전거를 타다니 저 사람들 제정신이 아니 구만’ 하는 표정들이다.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짐들을 내려놓고는 토속 음식인 보말 칼국수를 시켰다. 큰 냄비에 가득 나온 칼국수를 남김없이 뚝딱 해치웠다. 보말은 고동과 같은 종류라고 하는데 제주에서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난 뒤에 먹어서 그런지 무지 맛있게 먹었다. 배가 가득 차니 일단 마음이 한결 느긋해졌다. 



남은 구간을 검색해 보며 이제 제주도 한 바퀴를 완주하는 데 25km만 남아 있었다. 25km 정도는 바람만 없다면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거센 바람을 안고 가야 하니 25km가 갑자기 250km처럼 다가왔다. 남은 구간에 대해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지금처럼 바람이 많이 불면 해안가 자전거 도로는 위험하다고 한다. 해안가를 벗어나 시가지 쪽으로 들어가서 가라고 일러준다. 바람을 안고 달릴 자신이 없었고 또 행여나 다칠 것이 걱정이 되어 주인장 충고대로 시가지 쪽 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짐을 챙겨 나와 시가지 쪽으로 향했다. 


시가지 쪽의 도로는 다행히 도로 양쪽으로 보행자 도로가 있어서 차도로 달려야 하는 위험은 없었다. 보행자 도로가 중간중간 끊기는 곳도 있었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바람도 불었지만 해안가 바람보다는 약했으며 모래가 흩날리지 않아서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해안가 자전거도로에는 절경이 있었다면 시가지 도로에는 제주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을 보며 달리는 재미가 있었다. 스치듯이 지나가면서도 제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순간순간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여행 경험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달리니 드디어 제주시 중심으로 접어들었다. 길고 길었던 여정의 끝이 보였다. 종착지가 다가왔다는 기쁨에 힘이 나서 힘차게 페달을 밟고 밟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용두암 인증센터’에 도착을 하였다. 


 ‘용두암 인증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자전거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이~~ 야~~~’ 하는 함성과 함께 두 손을 치켜들며 만세를 불렀다. 기어코 해냈다는 성취감에 감격스러웠다. 와이프도 환한 표 정으로 뒤에서 다가오더니 ‘자기야! 그래도 우리가 결국은 해냈다. 그치!’ 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완주의 기쁨을 만끽했다. 마지막 날 거센 바람의 악조건을 뚫고 헤쳐 나온 완주였기에 기쁨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한동안 기쁨에 젖어 있다가 어느 순간 서로 얼굴이 마주쳤다. “자갸! 고생 많았어.” “응! 자기도 고생 많았어.”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여태껏 못 느끼던 새로운 부부애가 뿜뿜 샘솟는 듯했다. 2박 3일간의 길고 긴 고단한 여정을 함께 하다 보니 자동적으로 그런 부부애가 샘솟듯이 솟았다. 진짜다. 그러면서 혼자 생각한다. 와이프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이런 짜릿하고 멋진 경험을 어떻게 맛볼 수 있었겠는가!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와이프가 더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저쪽 편에서 와이프가 제주환상 자전거길 완주를 인증해 주는 은박의 인증서를 높이 쳐들고는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내게 다가온다. 그 미소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연애시절부터 27년을 같이 하면서 무수히 많은 예쁜 미소를 기억하지만 이날의 미소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미소였다. 내 기억 속에 두 번째로 손꼽히는 와이프의 예쁜 미소였다. 우리 부부의 제주환상 자전거길 완주는 그렇게 끝이 났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한다. 맞다! 우리 부부는 이것이 계기가 되어 다음 자전거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몇 개월 뒤 우리는 ‘금강 자전거길’를 완주하게 된다. 그리고 또 그다음은 섬진강 자전거길, 그다음은 북한강 자전거길, 영산강 자전거길, 아라뱃길, 남한강 자전거길, 오천 자전거길 완주로 쭈욱 이어지게 된다. 우리 부부의 자전거 여행 1차 목표는 전국 자전거길 국토종주 완주이다. 국토종주 완주를 위해선 낙동강 길과 동해안 길 완주가 아직 남아 있다. 국토종주 완주가 끝나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 부부의 또 다른 출발을 위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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