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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문주 Jan 09. 2020

하나만 잘해서는
창업이 어려운 이유

창업자는 접시 돌리기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창업자는 정말 접시 10개를 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1,2개는 정말 탁월하게 잘해야 된다. 나머지는 접시가 떨어지지 않을만큼 살리는 정도면 된다. 보면 어떤 누구는 정말 뛰어난 사람을 잘 꼬시고 어떤 사람은 마케팅을 기가 막히게 한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조금씩 다 잘할 수 있어야 한다. CEO면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 벤처 1세대 스타트업 '대부' 권도균 대표 -


창업을 결심하고부터 지금까지 총 1년 반 넘게 시간이 지났다. (결심하고 거의 바로 사업자를 냈기 때문에 사업자 기준으로도 마찬가지) 개인적인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 길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준비만 1년 반 넘게 해왔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놀라신다. 요즘은 ‘린 스타트업’이 유행이라서 빠르게 테스트하고 창업하는 분위기라 더더욱 그런 것 같다. ‘그동안 무엇을 했길래?!’라는 반응도 있고, ‘와! 그렇게나 오래 준비하셨다니, 정말 탄탄하게 준비하셨네요!’라는 반응도 있다.


그래서 오늘은 그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회고식으로 적어보려고 한다. 나와 깊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물어보기가 어려운 부분인데, 어떤 준비를 해왔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모든 분들과 깊게 얘기를 나눌 수는 없기 때문에 공개적인 곳에 올려보려 한다. 나도 훗날 이 글을 읽으면 감회가 새롭지 않을까 싶다.


우선 창업을 하게 된 시기는 결혼 이후, KAIST 대학원 재학 중인 상황이었다. 이때 (공개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려운) 개인적인 아픔을 겪고 있었는데, 그래서 나는 살기 위한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창업을 언젠가는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사업 얘기를 꺼내자 가족들이 깜짝 놀랐다. 가족들을 설득하고 또 스스로도 확실히 창업을 했음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사업자부터 냈다.


미국의 인공지능 기반 패션 스타일링 기업, 스티치 픽스


내가 하고 싶었던 사업은 스티치 픽스(Stitch Fix) 사업모델이었는데, (스티치 픽스는 인공지능 기반의 패션 스타일링 기업으로 유니콘이 되어 상장까지 했다.) 어렸을 때부터 작고 마른 몸 때문에 옷 입는 게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부 때부터 맞춤옷, 맞춤 구두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았고 언젠가 이 문제를 풀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 내가 IBM에서 쌓은 커리어가 ‘인공지능(AI)’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스티치 픽스의 사업모델에 더 끌렸던 것 같다.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급속도로 몰입했다.


사람이 없을 때를 틈타 촬영한 동대문 도매 시장


사업자를 낸 이후에는 당장 동대문 사입부터 시작했다. 이 모델이 한국에서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동대문과 연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작게 사업을 시작하면서 당장 브랜드에서 도매가로 상품을 들여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에게 이런 사업을 할 것이라고 알리고 동대문에서 사입한 물건들을 팔았다. 새벽에 대전과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동대문 도매 시장을 돌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우선 나는 옷을 잘 고르고 입는 사람이 아닌 상태였기 때문에 사입 상품들 중 상당수를 판매하지 못하고 재고로 떠안게 되었다. 게다가 동대문은 직접 입어보고 살 수가 없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직접 입어보면 불편한 옷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이후에 몇 차례 더 시도하다 동대문은 과감하게 포기하게 되었다.


그 후에는 웹사이트 구축을 시작했다. ‘일단 웹사이트를 구축해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팀 빌딩을 해서 투자를 받자!’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Django(Python), AWS, HTML, CSS, Javascript 등 수많은 개발 지식들을 쌓게 된다. (학부 때도 언어학/컴퓨터공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Python, C언어, Java 같은 언어들은 접한 경험이 있었다.) 너무 어려운 부분은 해외의 외주 사이트를 사용해서 외국인에게 외주를 주고, 나는 그것을 배워서 덜 어려운 부분들의 코드를 짰다. 이 과정을 거의 하루에 14시간씩 지속했는데, 최대한 빨리 웹사이트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경험 덕분에 지금도 개발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배워서 할 수는 있다.


로그인, 결제, 입력 폼, 상품관리 등 기본적인 기능은 모두 구현했던 초기 웹사이트


그리고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 디자인, 개발을 전문적으로 하는 대학원 동기들부터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패션 스타일리스트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을 했다. 심지어 웹사이트 사진을 위해 전문 모델을 구해서 화보 촬영까지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웹사이트로 베타 서비스를 오픈하자 주변에서 혹시 투자받을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투자를 받지 않고 참았다. (이후에도 여러 번 투자를 받을지 말지 고민이 있었지만, 참았다.) 매출을 내고 사업성을 인정받은 후 투자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지금도 동일하다. 몇십 년 동안 사업을 해오신 부모님의 영향 때문이다.) 그리고 프로토타입으로 만든 웹사이트였기 때문에 뒷단의 고객정보 보안부터 시작해서 쇼핑몰 물류관리까지 실제로 서비스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시스템적으로 갖춰져야 할 것이 수만 가지였다. 이때 나는 둘 중에 하나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는데, 하나는 개발인력과 시스템을 만드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 고객에게 판매하는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다. 주변 지인들은 요즘은 기술창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시스템 개발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이미 스타일링 시장이 형성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시스템 개발부터 했다가 전부 다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만의 판단으로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미 비슷한 사업모델로 창업을 했던 분들을 찾아다니며 실례를 무릅쓰고 여쭤보았다. (‘스티치 픽스’는 워낙 유명한 사업모델이라 이미 시도해 보신 분들이 많았다.) 그러자 그렇게 만나 뵈었던 모든 분들이 “고객, 시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개발’ 대신 ‘판매’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이전에 개발한 웹사이트는 잠시 닫아두기로 결정했다.


콜리젯 유튜브 채널


웹사이트를 대체해서 직접 고객을 만나 인터뷰하기 위해 택했던 방법 중에 하나가 유튜브였다. 패션 스타일리스트 분들을 직접 뵙고 조언을 구하는 과정도 담고 싶었다. 이때는 지금처럼 내가 등장하지는 않았는데, 나는 원래 누가 내 사진을 찍는 것조차 싫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셀카도 거의 안 찍어서 남편과 연애시절 같이 찍은 사진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에 유튜브를 시작할 때는 다른 사람만 나오는 인터뷰 영상만 올렸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채널 성장의 한계가 명확했다. 한 사람이 고정적으로 등장해야만 채널에 팬이 생기고 브랜드 일관성이 형성되는데, 인터뷰만 올리니 그것만 보고 이탈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구독자도 들쭉날쭉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고, 외부 섭외와 컨펌 과정이 있으니 채널의 빠른 성장을 위해 콘텐츠를 많이 찍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직접 등장하는 영상도 병행해서 촬영하게 되었다. 외부 섭외가 안 되는 상황이나 섭외한 사람의 컨펌이 늦어 영상을 올릴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위험 관리 차원에서였다. 그렇게 내가 등장하는 몇 가지 영상을 올렸더니 나와 비슷한 33-44 사이즈이거나 옷 찾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는 사람들로부터 반응이 있었고, 그 이후부터는 아예 내가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전면에 등장하고 나니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정말 많았다. 옷을 보여주는 영상이라고 하더라도 헤어/메이크업이 잘 되어있지 않으면 영상 퀄리티가 현저히 낮아졌기 때문이다. 특히나 채널이 점차 성장해 가면서 브랜드 협업 영상도 촬영하게 되었는데, 비주얼이 중요한 패션 영상에 헤어/메이크업/패션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협업을 해주시는 분들께도 민폐였다. 처음에는 내가 직접 헤어/메이크업을 진행하다가 영상용으로 필요한 헤어/메이크업은 도저히 내 손으로는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뷰티 분야의 전문가 분들도 찾아뵙게 된다. 그렇게 몇 번 진행을 하다가 만나 뵌 분들이 지금 콜리젯 팀의 헤어디자이너 선생님, 메이크업 아티스트 실장님이 되셨다.

브랜드 협업을 시작하고 나니 영상 촬영도 문제였다. 혼자 촬영을 할 때는 영상이 잘 안 나오면 그냥 그 영상을 버려도 되지만, 협업 촬영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적으로 이 부분을 담당해 주실 분이 절실했다. 그러던 중에 함께 일하던 스타일리스트의 소개로 현재 콜리젯 팀의 촬영 감독님 도움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편집’은 내가 직접 하게 된다. 원래 초창기 영상 편집은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대학원 동기가 거의 도맡아서 진행했다. 하지만 동기가 논문을 써야 하는 마지막 학기를 마치기 위해 대전에 있는 대학원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때부터는 내가 모든 영상편집을 하게 되었다.


스타일링에 관한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최고의 팀


이렇게 경영/패션/메이크업/헤어/촬영까지 모두 아우르는 팀이 꾸려지니 이제 고객에게 당장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해졌다. 최근에 진행했던 프로필 사진 촬영은 물론이고, 영상 외주 제작, 오프라인 패션/헤어/메이크업 서비스, 온라인 상품 추천 서비스, 기존에 구입해 둔 상품들을 기반으로 한 렌털 서비스, 심지어 홈쇼핑처럼 상품을 판매하는 미디어 커머스도 가능해졌다. (실제로 이전에도 콜 리젯 유튜브 영상을 보고 상품을 구입하시는 분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을 모아 콜리젯 멤버십을 론칭하게 된다.

멤버십을 론칭할 때는 이전에 웹사이트를 개발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워드프레스부터 시작해서 웬만한 것들 다 시도해 봤다) 쇼핑몰 빌더를 사용해서 빠르게 웹사이트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빌더를 사용하면 UX에 제약이 생기는 것이 단점이지만, 밑바닥부터 개발하는 것에 비해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빠르기 때문이다. 서비스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지면 이전에 개발해둔 웹사이트를 다시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타게팅에 있어서는 프리미엄 시장과 대중적인 저가 시장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결국 내린 결론은 대중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이 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더 많은 사람들이 스타일링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기술을 도입해서 사람이 하는 일의 수고로움을 덜고, 거의 모든 이들이 부담 없이 스타일링을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콜리젯 멤버십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내가 콜리젯 서비스를 준비해온 과정이다. 이 과정을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업, 마케팅, 인사관리, 회계, 머천다이징, 개발, 디자인, 패션 스타일링, 메이크업, 헤어 스타일링, 영상 촬영, 영상편집, 모델 등 모든 역할을 한 번씩은 하게 되어서 수십 개의 접시를 돌리는 상황이 되더라.


서비스 론칭 전까지는 콜리젯 내부 업무에만 몰두하다가 최근에는 제휴 등의 일로 다른 스타트업에 계신 분들을 만나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다른 분들을 만나 뵈니 아직 투자를 받지 않고 이렇게 운영하고 있는 내가 특이한 케이스인 것 같기도 하다.

사업에는 정답이 없기에 어떤 길이 맞다 그르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길이 나에게 잘 맞는 길이라는 것만은 확신한다. (마치 콜리젯이 ‘나에게’ 잘 맞는 스타일을 추천하는 것처럼)

이게 내가 접시 돌리기의 달인이 된 이야기이다.


접시 돌리기의 달인, 아기 공룡 둘리




패션&뷰티 스타일링 서비스, 콜리젯(COLIZ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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