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치 11년.
자그마한 카페를 하던 내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들어간 인테리어 학원에서 배운 보잘 것 없는 목공기술을 시작으로 이 업계로 들어온 지도 11년이 되어간다. 흔히 말 하는 손 끝이 야무진 사람도 차분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얼마의 시간을 들여서든 해내고야 마는 끈기가 있는 것도 감각적으로 뛰어나 공간을 보거나 색감을 보는 눈이 뛰어나지도 않은..지극히 평범해서 이 분야의 심각한 열등생인 내가 버틴 시간은 하필이면 성실함이라고 하는 유일한 장점이 쓸데없이 작용한 탓이다.
중도에 딱 두 번 이 일을 포기 하려고 했고 그 중 한 번은 최근이다. 도무지 늘지 않는 실력과 남들보다 못하다는 피해의식과 그래도 10년인데 이제 좀 필 때도 되지 않았나 이정도로 힘들게 계속 살거면 진짜 아닌게 아닐까. 이 시간을 다른 일에 투자했다면 번듯한 집이라도 한 채 있지 않았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절의 나와 다를게 없지 않은가 하는 답도 없는 비관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린지도 반 년쯤 되었을 때다.
세상의 억까란 억까는 모두 나한테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악마라는 놈이 존재한다면 그 놈은 필히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살아보자~ 별의별 생각과 그만 둘 결심과 다시 한 번 열심히 해보자는 다짐들이 끝도 없이 반복되니 일터로 나가는 몸이 천근만근이 되어가고 모든 상황이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그래. 떠나려면 바로 지금! 하며 그렇게 완결을 선언했었다.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그냥 이 일만 아니면 마음이 훨훨 날아갈 것만 같았다. 실제로 며칠은 그런 기분이었다. 홀가분한 느낌...악순환의 굴레에서 비로소 빠져 나왔고 그냥 착실히 어디 공장이라도 가서 일 하면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만큼은 벌고 살 수 있다며 조소했다. 드디어 행복해질 수 있다. 온 갖 안좋은 기억과 단어로 점철된 지난 시간들에서 해방되었다! 도 잠시,
널널해진 시간 탓에 또 고질병이 도졌다.
그 10년을 다시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아..좀 더 열심히 해봤어야 했나. 사실 이제 이 분기만 넘어서면 좀 좋아지는거 아니었을까? 다 왔는데 결승선 앞에서 포기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시간을 모른 체 하며 살 수 있을까? 10년이 더 흘러도 그 때를 후회하지 않을까? 같이 이 일을 일궈온 사람들에 대한 배신은 아닐까? 오로지 이 일 하나만 해 왔던 내가 다른 일을 시작 할 수 있을까? 배운게 도둑질인데 이제 도둑질 마저 못하게 되는건 아닐까? 충분히 후회하지 않을 만큼 이 분야에 대해 공부를 안 하지 않았던가? 그저 하루하루 어떻게든 일거리를 만들어 벌어먹고 살 궁리만 하지는 않았나? 좀 더 깊이 관심을 가지고 파 보려 했던 적은 있을까?
그렇게 짧은 방황을 마치고 돌아왔다.
여긴 개미굴인지도 모른다. 한 번 빠지면 여기 저기로 헤매이다 길을 잃어버릴 수 있는, 스스로 만들어낸 개미굴에 이미 깊이 들어와 같혀 버린지 모른다. 이렇게 살다 보면 행복해 질거라고, 그 순간을 위해 30대를 바친 거라고 이 모든 고생들이 보상받는 시점이 올거라고 기다리고 기대하며 살았다. 그러니 10년이 지난 후에도 똑같이 살고 있는 자신을 보며 깊은 자기혐오에 빠져 버린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이를 악물고 버텼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걸까? 왜 여전히 시뿌연 안개 속에 있는 것이며 경계도 모를 늪에 턱밑 까지 빠져 들어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살고 있는걸까?
결심하고 무너지고 후회하고 또 결심하고 또! 무너지고 또 또 후회하는 시간들로 기워진 시간들을 돌아보니 이유는 딱 하나 뿐이었다.
지금의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아침의 나를 응원하지 못하고
오늘의 끝을 배웅하지 않았고
내일의 나를 기대하지 않아서
내가 떠나 보내는 하루하루가 10년이 되어 오는 동안 무수한 자기연민과 혐오만을 반복하며 살아온 것이다.
행복은 버스가 아닌데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닌데
그냥저냥 먹고 산다는 말이 행복하지 않다의 동의어가 아닌데
나는 충분히 그냥 행복할 수 있었는데, 아니 그냥 그 시간들이 행복이었을지 모르는데
후회로 기워진 시간들은 사실 행복이란 실로 꿰매진 것이었다.
또 잊어버릴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유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