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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년 Dec 28. 2024

재능이 포기해야 할 이유는 못 돼

난 재능이 없다. 

아, 아직은 찾지 못했다 쯤으로 하자. 그래야 사기가 꺾이지 않을테니 하핫


오랜 시간 주변에서 들은 말과 나이가 들면서 나의 한계점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짚어 보면 볼 수록 나는 인테리어업 종사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에서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슬픈 종족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창피하지만 확실히 하자는 의미에서 나의 단점을 좀 나열해 보자면


1. 눈썰미가 좋지 않다. 

2. 센스가 부족하다. 

3. 감각이 떨어진다. 

4. 의지가 빈약하다. 

5. 성미가 급하다. 

6. 주의가 산만하다.

7. 주의가 산만하다.

8. 주의가 산만하다. 


주의가 산만하다! 주의가!!


다른 건 노력으로 극복해 본다손 쳐도 성미가 급하고 주의가 산만한건 사실 업종의 문제가 아니다. 인생 전반적으로 큰 패널티를 가지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껏 살아온 생을 돌아보면 언제나 주의가 산만하고 성미가 급해서 손해 본 일이 많았다. 하다못해 연애를 할 때도 성미가 급하다. 차분히 상대를 알아가고 나를 알리는 시간 없이 금세 사랑에 빠졌다가 낭패를 보고야 마는 한심한 인간..이제는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슬픈 현실..


이 일도 그래서 낭패를 많이 봤다. 공정에서 손해를 본 적도 있다. 유일하게 억울한 부분은 내 선에선 최선을 다 했다고 본 일이 알고보니 누락 되거나 마감이 시원찮게 나온 점이라는 것이다. 대충 했으니까 결과도 대충 나온 거라고 객관적인 시점에선 얘기할 수 있지만 ㄹㅇ 참으로 저는 최선을 다 했다니깐요? 근데 이게 왜..아니 이게 왜..아니..


그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 알게 된다. 천성적으로 태어난 기질 때문에 못 하는 일도 있는거라고. 분유를 마시던 아기시절의 나를 추억하는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애가 얼마나 성미가 급하던지 젖병을 빨다가 울기가 일쑤였다고.. 왜 저러나 싶어 하다가 젓가락을 불에 달궈 구멍을 하나 더 뚫어주고 입에 물렸더니 그 날부터 울지 않고 벌컥벌컥 분유를 빨아 먹더라고..


이게 나다. 급한 성격을 고쳐보려고 말을 느리게 한 적도 있을만큼 개선해 보려고 한 적도 있지만 마흔줄이 넘어서도 고쳐지지 않는다는 건 이제 덤덤히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다. 다만 일을 잘 해보려고 마음 먹은 이상 이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야만 한다. 


눈부신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그에 걸맞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 했을 때 이루어 내는 쾌거를 요즘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유튜브만 봐도 성공 스토리는 강가의 자갈만큼 많으니까. 물론 천재들에겐 노력조차 디폴트 값이기에 재능과 노력이 만나서 일으키는 엄청난 시너지는 보는 이에게 마저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정도다. 


없다 나는. 적어도 이 일에 관련한 재능은 없다. 

그러나 내게는 꾸준함이 있다. 초중고 12년 아침 6시 30분 등교와 개근을 이루어 낸 반은 어머니의 등쌀이었지만 어쨌든 내가 만든 전설 오브 레전드가 있다. 수위 아저씨께서 눈을 비비며 나를 위해 교문을 열어주려 나오셨을 만큼 동네에선 유명한 아이였다. 


시간약속을 어긴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나 자신과 한 약속은..빼고..) 그리고 우리 아버지의 체면을 중시 하는 특질이 마흔 넘어 고대로 발현이 됐다. 이제 와서는 그게 자존심이고 자존감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토록 경멸하던 아버지의 체면특질이 유전자의 저주로 인해 처음 내게서 발현 됐을때의 그 황망함이 현 상황에선 큰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땡스 투 파더..


 그래. 내게도 있다. 이 삭막하고 냉정한 사막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재능이. 그것이 비록 내 직업에 걸맞는 것은 아니라 할 지라도 충분히 해 내고 일어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치는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단순하고 성실하고 꾸준하며

급한 성미에 불을 당기고 말았던 젊음이 없다...(음..)

난 좀 더 침착해 질 수 있다. 더 꾸준해 질 수 있다. 책임질 처자식이 없는 나는 아직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어 왜 눈물이 나지..


아무튼 그래서 난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하기로 하자. 약속을 하자. 난 약속을 잘 지키는 재능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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