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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년 Dec 29. 2024

쉬는 날은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는 거야

한 주간 열심히 살았다.

금요일까진 열심히 현장을 돌아다니고 토요일엔 오전 느지막히 사무실에 나가서 일정과 공정을 확인하고 혹시나 점검하지 못 한 현장이 있다면 방문 후에 완벽한 퇴근이 이루어진다. 주 5일제니 4일제니 하면서 워라밸을 중시 여기는 요즘의 문화와는 맞지 않는다고 기피하는 사람도 있고 나 역시 빨간 날도 없이 퇴근 시간도 없이 일 했던 지난날 동안 불평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이 있는게 그저 고마운 거다.  지쳐 쓰러질 때 까지 일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꾸준히 일거리만 주어진다면 주말이 어딨고 연휴가 어딨어 그냥 하는거지. 감사해 하면서.


그런데 이제 쉬는 날이 문제다. 그야말로 방전된 배터리 마냥 아무것도 하기 싫고 누운채로 굴러다니면서 먹고 싸고 자는 하루를 보내는 거다. 이제 내일부터는 또 삶의 현장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는데 뭔가 리커버리가 될 만한 사건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머리에 떠오르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저 빨래를 돌리고 건조기를 돌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멍 하니 있다가 저녁이 오면 월요병과 주말감성 터지기 전에 얼른 잠자리에 든다. 이불속에 파뭍혀서 핸드폰이나 조금 들여다 보다가 깜빡 잠들고 눈 뜨면 월요일.


꽤나 오랜 시간 이런 패턴으로 살아왔다. 미혼의 노총각, 딱히 열의있게 시도하는 취미생활도 없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건 일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적인 영역속에 다른 사람을 굳이 끌어들여 나의 세계를 보여주며 이해 시키고 그걸 위해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시간 자체가 없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고 그 시간에 잠을 자는게 나의 뇌 활동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울어진 무게추?


그렇게 차 떼고 포 떼고 보니 할 일이 없다. 자격증 준비를 하겠다고 큰소리를 쳐 놨으니 책도 좀 들여다 보지만 이내 물린다. 한 주에 하루만이라도 일 생각을 안 하고 오롯이 휴식을 취해야 지치지 않을 텐데 이렇게 까지 하고 싶지 않다. 나 열심히 산다고 보여주기 식이고 이런 식이면 머지 않아 또 번아웃이 올 게 뻔하다. 추진력과 지속력을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 지금은 쉬어야 하는 시간인거다.


쉬는 날에도 잘 쉬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는게 참 웃긴 일이다. 잘 쉬는게 대체 뭐란 말인가. 꼭 기념비적인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느낌이지 않은가 말이다. 쉬는 것도 일 하는 것처럼 할 수 밖에 없는 이 우매함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되었다. 빨래를 돌렸으면 되었고 청소기를 돌렸으면 되었다. 이제 환기나 한 번 시원하게 때리고 낮 잠을 원 없이 자든지 낮술을 한 잔 거하게 마시든지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거다. 그게 쉬는 거다. 영화나 한 편 보든가 웹툰을 읽던가 하다가 바깥 기온이 좀 오르면 나가서 개운하게 달리기나 한 바퀴 돌고 와서 자는거다.


그럼 좀 잘 쉰거 아닌가?

아니 잘 쉬려고 하지 마라니까?

자꾸 뭘 잘 하려고 하지 마라니까?

계획하지 말라고 그냥 쉬라고 제발 그냥 쉬라고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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