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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Oct 17. 2021

제가 대학원에 갈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아이들의 생일들


내 핸드폰에는 예전에 가르쳤던 아이들의 생일이 적혀있다. 너무 오래전 학생이라 이제 연락조차 끊긴지 십년이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그 생일에 대한 정보를 지우지 않고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제 볼일도 없는 사람인데 쓸데없이 데이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긴 하지만, 뭐 종종 그 아이들의 생일 때마다 그 아이들과 있었던 추억 때문에 감성적으로 지우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오늘은 과거에 내가 가르쳤던 한 여학생(지금은 30대)의 생일이었다. 내가 가르쳤던 자매 중의 동생이었고, 언니는 열심히 노력했던 반면에 동생은 학원 다니기도 싫어하고, 노력도 안 했었다. 그래서 학원도 조금 다니다가 금방 그만두었다.


공부를 잘 안했던 터라 고등학교도 여상(여자 상업고등학교)에 갔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인가 시험기간 중에 갑자기 연락이 와서 시험 봐야 되는데 수학 좀 가르쳐주면 안 되냐고 물어봤었다. 그렇게 공부를 싫어하던 아이가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 너무 기특한 나머지, 교습비도 받지 않고 수업을 했었다. 뭐 두번인가 봐준 걸로 교습비를 받겠다는 것도 좀 그렇긴 하지만.


하지만 결국 그런 수업 한두번으로 시험을 잘볼 수는 없었기에, 다시 그런 요청을 하지는 않았고 그 이후로 동네에서 한두번 마주친 것 외에는 다시 볼 일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 핸드폰 화면에 잠시 손가락을 대고 일을 보던 중에 그 아이에게 잘못 전화를 걸었나 보다. 그래서 "여보세요" 라는 말이 흘러나와서 당황해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문자로 혹시 그 아이가 맞는지 확인해 봤더니 다시 전화가 걸려와서 받았는데, 그 아이가 맞았다.




근황 토크


혹시 그 아이가 맞냐고 물어보니, 쌤 너무 반가워요라는 인사말이 돌아왔다. 그래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근황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전화에서 흘러나온 내 목소리가 너무 젊어서 자기 또래 남자인 줄 알고 잘못 걸었나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 내 목소리는 아직 20대인 것이다.


자기와 자기 언니는 특수교육 쪽 임용시험을 붙어서 현재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게 다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 덕분이라고 했는데,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했었지? 그 당시 상담할 때, 내가 동생 쪽이 공부를 안 하긴 하지만, 언니보다 머리가 더 좋다고 했었다고 했는데, 그 말에 힘입어 노량진 가서 열심히 공부해서 언니보다 더 빨리 임용시험에 붙었다고 한다. 뭐, 그건 사실이었으니까.


사실 내가 더 많이 가르친 건, 언니 쪽이었고 심혈을 기울인 것도 언니 쪽이었다. 동생 쪽은 가능성을 믿어준 것,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할 때 도와준 것 정도. 다행인 건, 보통 공부를 안 하는 아이는 공부에 거부감을 갖게 될 확률이 큰데, 이 아이는 공부에 큰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는 것 정도이다.


그 아이와 비슷한 시기에 가르쳤던 아이도 이제는 30대가 되었고, 그 아이도 나 때문에 선생님이 되고자 했다고 했는데, 이 아이도 나 때문에 선생님이 되었다고 했다. 내가 했던, 넌 머리가 좋다는 말 한마디 때문에.


심지어, 자기와 언니는 대학원도 다닌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공부할 줄 그 누가 알았겠어요? 라고 하는데 너무 웃었다. 확실히 그 당시 모습만 보면 공부하기 싫어서 학원도 다니기 싫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오랜만에 정말 추억에 잠긴 통화였다.




토크 후 생각


확실히 교육은 10년 이상 지나봐야 알 수 있다. 어떤 교육방법을 썼을 때, 그 효과를 보려면 최소 몇개월부터 몇년 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집중해서 케어할 필요가 있고, 누군가에게는 넌 문제가 없고 훌륭하다 라는 믿음만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사실 그 언니 쪽은 나중에 역사공부하는 방법을 예로 들면서,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것을 직접 체험시켜준 적이 있었는데, 그 경험이 그 학생에겐 아주 중요했을 것이다. 내가 해준 것은 이런 것이 이해하는 것이다 라는 것을 체험시켜준 것이었고, 이런 느낌이 들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 하는 것임을 알려주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크게 변한다.


학교공부를 못 한다고 인생이 크게 망하진 않는다. 하지만 공부를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지 않으면 사회에서 살아갈 힘을 얻기 어렵다. 나는 지금까지 학교시험점수보단 그걸 목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왔고, 어떤 경우에는 성공했으며, 어떤 경우에는 실패했다.


실패했다는 것도 사실 지금의 내 관점이지, 미래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미래를 위한 씨앗은 뿌려놨는데, 그 씨앗이 어떻게 자랄지 지금 시점에선 내가 알 수 없으니까. 몇년의 시간이 지나면 그 씨앗이 발아해서 다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가 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로선 그저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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