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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정 Jan 11. 2022

빛을 담아내는 다양한 시선들

전시 리뷰_<빛: 영국 테이트 미술관 특별전>


작년부터 모바일 광고로 보고 가고싶다고 생각한 전시였다. 유럽여행으로 런던에 갔을  테이트 모던에 대한 기억이 좋았던 것도 있었고, 라인업에 유명한 작가들도 많아서 시간을 내서 방문했다.


북서울 미술관은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독립출판 북페어 때 한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좋았었다. 일단 미술관을 들어서는 입구가 공원이라는 점과, 내부 공간의 동선이 좋게 설계되어 있어서 사람이 많아도 북적거리는 느낌은 없었다. (아마도 높은 천장과 둘레길처럼 설계해놓은 계단 때문이 아닐까?)


전시료는 15000원. 시립에서 하는 전시치고는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서 작품을 가져오기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만원 내외였으면 좋겠는데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들어섰다. 전시장 내에서 사진 촬영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티켓과 함께 준 안내 책자에 필요한 내용이 전부 들어있어서 나중에 찾아보기에는 좋았다.


전시는 총 16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어있다. 각 섹션별로 빛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연구하여 자신의 작품에 담아냈는지 큰 대주제가 있다. 1800년대의 과거 작가들부터 현대의 작가 순으로 전시가 진행된다. 종교적 의미로 빛을 탐구하여 연출적인 부분으로 사용되었던 과거의 그림부터 물리학적으로 빛에 접근한 작가들의 작품, 빛이 주는 인상을 담은 작품, 그리고 빛 자체를 재료로 활용한 현대작가까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전반적인 흐름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각 전시 섹션별로 좋았던 작품들과 그에 대한 감상평을 담아보았다.


1. 빛 신의 창조물

제이콥 모어 Jacob More, 대홍수

창세기 7장의 주제인 대홍수를 그린 그림으로, 화면 중앙의 은은하게 비추는 빛이 인상적이다. 가장 처음에 보고 마음에 들어서 적어두었던 작품. 모니터 화면이 아니라 실제로 회화작품을 대했을 때 더 감동적이다.

사실 종교적인 의미가 큰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서 이 섹션은 별 기대가 없었는데, 강렬한 대비로 영광을 표현한 작품 속에서 은은하고 잔잔하게 희망을 보여주는 그림이라 더 마음이 갔다.





2. 빛, 연구의 대상


윌리엄 터너, 태양 속에 서 있는 천사


터너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 있다면, 아마 다른 곳에서 터너의 작품을 마주하더라도 한 번에 알아볼 것이다. 그만큼 본인만의 스타일이나 화풍이 독특한 작가로 빛과 공기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속도감을 표현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다른 전시에 한번 본 적 있었는데 정말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풍경이기는 하지만 거의 추상에 가까운 그림이라서 나는 터너가 작업을 할 때 이성보다는 감성과 오감으로 작품에 몰두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터너는 빛과 원근법에 대해 철저하게 연구하는 스타일이었다.


터너가 수업자료 사용했던 다이어그램들과 노트들. 전부 원근법과 빛에 대한 연구이다


테이트 모던에서 이런 것도 소장하고 있는 줄 몰랐다. 쇠구슬에 반사된 실내 모습을 그린 것과 원근법, 소실점을 이용한 투시도에 대해 연구한 흔적을 볼 수 있는 소장품들도 같이 전시가 되어있었다. 느낌이 충만한 붓터치로 공기의 흐름을 표현하기 이전에 그는 사물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 자체에 이미 마스터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테이트 모던 홈페이지에 가면 더 많은 노트와 다이어그램들을 볼 수 있음)


윌리엄 터너, Lecture Diagram 65: Interior of a Prison


궁금해서 찾아보니까 터너는 11~12세 시절 토마즈 말턴이라는 건축 제도사의 조수로 들어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때 원근법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14세에 왕립 아카데미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훗날 아카데미의 원장이 되어 학생을 가르친다...)


어쩌면 누구나 그의 그림을 보고 좋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보았던 경이로운 풍경의 느낌이 화폭 안에 그대로 재연되어 있어서 아닐까. 철저한 연구와 관찰을 바탕으로 그려졌다는 것을 알게 되니 괜히 그의 그림들을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굉장히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 다 담아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4. 빛의 인상


클로드 모네, The Seine at Port-Villez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았던 섹션. 유명한 작가들이 많기도 했지만, 그냥 내 취향이 이쪽인 것 같다. 빛을 상징적으로 사용하거나 새로운 접근으로 담아내는 것도 좋지만, 빛이 만들어내는 그 분위기를 통해 감동을 주는 작품들이 개인적으로는 더 좋다. 모네의 그림은 유럽여행 가서 웬만한 건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좋은 작품이 있었을 줄이야.


존 브랫, The British Channel Seen from the Dorsetshire Cliffs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다. 티켓과 포스터에도 이미 들어가 있는 작품으로 굉장히 크기가 크다. 아마 전시를 보게 된다면 이 작품 앞에서 잠깐 멈칫하게 될 것이다. 작가가 이 바다를 담아내기 위해서 몇 주 동안 직접 바다를 보면서 스케치를 통해 움직임과 빛의 표현을 연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보게 된다면 가까이 가서 구름의 표현과 작지만 디테일하게 그린 바다의 물결 그리고 중간중간에 띄워져 있는 배를 보라고 하고 싶다. 살면서 실제로 이런 장면을 보게 되는 날이 올까. 왔으면 좋겠다.





5. 장엄한 빛

조셉라이트, A Moonlight with a Lighthouse Coast of Tuscany (왼쪽) / Vesuvius in Eruption (오른쪽)

어떤 그림이든 빛이 들어가면 그 그림은 드라마틱해진다. 그 표현법의 끝을 볼 수 있는 섹션이 아닐까 싶다. 조셉 라이트는 평범한 일상과 자연세계를 웅장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그려냈다. 그의 작품에서 주인공이 되는 것은 빛과 자연 그 자체이다. 웅장한 작품들이 꽤 큰 크기로 전시되어 있으니 꼭 눈으로 확인해보시길.




7. 브루스 나우먼, 빛을 가두다

브루스 나우먼, Corridor with Mirror and White Lights(왼쪽) / Green Light Corridor (오른쪽)


내가 테이트 모던에 갔을 당시에 브루스 나우먼 섹션이 굉장히 컸었다. 아마 작가의 작품을 테이트 모던이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그 당시에 전시를 보고 굉장히 좋았어서 종종 찾아보고 했는데, 이번에는 솔직히 브루스 나우먼 작품인 줄 몰랐다. 그의 작품이라면 역시 네온이 가장 큰 특징이라 그런지 전시에서 봤을 때는 그냥 모르고 지나쳤던 것 같다. (위치도 약간 애매했다) 공간의 제약이 있겠지만 순서상으로는 스티븐 윌라츠와 제임스 터렐 사이에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아쉬웠다.


실제 전시된 작품은 왼쪽이지만, 오른쪽에 첨부한 그린 라이트가 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도 테이트 모던 소장품은 아닌 것 같다)




8. 빛과 우주

올라퍼 엘리아슨, Stardust particle(왼쪽) / Yellow versus Purple(오른쪽)


사실 이 전시는 라인업에 적힌 올라퍼 엘리아슨을 보고 간 게 맞다... 이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내가 대학교 2학년 시절 현대미술 강의를 들으면서 그 유명한 날씨 프로젝트를 보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아마 그 해에 리움에서 올라퍼 엘리아슨 전시를 해서 실제로 작품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날씨 프로젝트를 했던 시절에 테이트 모던에 갔던 사람들이 너무너무 부러울 정도로 현실 공간에 자연을 끌고 들어와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감동을 주는 현대작가이다.


이번에는 사진으로 첨부한 두 개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전시를 보면서 다른 관람객들의 반응도 엿들을 수 있었는데, 굉장히 큰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를 처음 봤을 때 그랬었다.


그도 혹시 물리학이나 수학을 전공한 것은 아닐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어린 시절을 아이슬란드에서 보내면서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보고 자란 것이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고 한다. 그의 인터뷰 내용이다.


 " 아이슬란드에 살던 시절, 밤하늘의 별을 자주 보곤 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이 우리 조상, 과거 등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아름다운 것은 측정이 불가능하죠. 많은 이가 성공하려면 측정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자연을 누리는 시간을 충분히 허락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자연은 과거의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후세에 반드시 물려줘야 할 가치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10. 실내의 빛

빌헬름 함메르쇼이, Interior (왼쪽) / Interior, Sunlight on the Floor (오른쪽)

실내 환경에서의 빛 섹션으로 일상 속에 빛이 스며드는 순간이 담긴 작품들이 많았다. 빌헬름 함메르쇼이는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찾아보니 작품에는 주로 여성의 뒷모습이 많이 나온다. 굉장히 차분하고 절제되어있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 아래에 첨부된 "아기와 엄마" 작품도 참 좋았다. 저 시대에 내가 아주 돈이 많은 부자였다면 소장하고 싶었을 정도로 따스한 빛과 차분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작품.


윌리엄 로덴슈타인 Mother and Child / 필립 파레노, 6'o clock

실내 풍경이 담긴 그림들을 찬찬히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카펫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는 그림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시를 보고 있는 당신이 밟고 있는 그 카펫, 작품이다. 저녁 6시 창문 너머로 들어온 빛과 그 그림자를 담은 작품으로 항상 실내에서만 전시된다고 한다.





11. 빛의 흔적

기요르기 케피쉬, Untitled / Circles and Dots / Blobs 3

기요르기 케피쉬의 작품은 물체의 특성에 따라 빛이 반사되고 굴절되는 것을 담아내고 있다. 어떤 물체인지 명확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추상 이미지에 가까운 사진도 있었는데 아마 암실에서 필름으로 직접 합성을 해보면서 실험해본 결과물들인 것 같다. 지금이야 쉽게 가공할 수 있는 이미지처럼 보이겠지만 당시 시대상으로 생각해보면 신선한 시도였을 것 같다.





13. 리즈 로즈, 빛과 소리로 음악을 만들다.

리즈 로즈, Light Music

사실 이 영상을 볼 때는 그냥 지나쳤었다. 그러다가 다음 섹션으로로 넘어갔는데 소리가 점점 계속 커져서 다시 보러 들어갔었다. 초반에는 반복적인 이미지만 나왔는데, 영상이 뒤로 갈수록 다양한 기하학적 형상과 그에 따른 희한한 기계음이 들린다. 마치 애프터 이펙트로 만든 모션그래픽처럼 도형의 움직에 따라 희한한 소리가 나는 영상. 그래서 한참 뒤에도 생각이 났다.


집에 와서 만들어진 과정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인쇄용 사식 문자인 레 트라셋을 슬라이드에 부착해 화면에는 추상적인 선이 나타나며 영사기는 이를 오디오로 읽어낸다." 음...일단 레트라셋이 무엇인지 찾아봐야겠다.

레트라셋

이것이 레 트라셋이다. 종이에 문질러 문자를 붙이는 형식으로 우리가 전시디자인을 할 때 벽에 깔끔하게 적힌 글들과 같은 원리이다. 이 레트라셋이 붙은 부분과 붙어 있지 않는 틈 사이에 공간을 지날 때 영사기에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래픽이 많이 분포되어 있을 때는 소리가 많이 빠르게 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소리가 적게 나는 원리였던 것!


이 작품이 만들어진 것이 1975년인데, 굉장히 앞서 나간 시도였다. 뭔가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영화 같다고나 할까... 아, 그리고 이 전시는 두 개의 영사기가 마주 보고 있으며 관람객이 영사기 앞으로 다가가면 그림자가 지게 되는데, 이것 역시 작가가 의도한 부분이라고 한다. 관람자가 감상자를 넘어 동시에 참여자가 되었으면 하는 확장 영화의 시초라고 한다. 그러니 친절한 우리나라 관람객 여러분, 염려하지 말고 아래의 사진처럼 작품 속에 하나의 요소가 되는 경험을 해보시길.





15. 제임스 터렐, 빛으로 숭고함을 경험하다.

제임스 터렐, Raemar, Blue

제임스 터렐을 이번에 처음 본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뭔가 감동을 받았다면, 뮤지엄 산에 제임스 터렐관을 추천하고 싶다. 나는 이 작가를 대학교 1학년 때 뮤지엄 산으로 단체 여행을 가서 알게 되었다. 그때도 올라퍼 엘리아슨을 알게 된 것만큼이나 엄청난 충격이었는데, 늘 볼 때마다 빛과 공간을 가지고 착시효과를 일으켜 명상의 상태에 들도록 하는 작가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과 마주하게 되면 갑자기 시간이 굉장히 느리게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 내가 있는 시공간이 원래 익숙하던 곳이 아닌 것 같아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다.


그가 항공기 조종사였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뭔가 갑자기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 하늘을 날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왜 그는 항공기 조종사를 하다가 지각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었을까? 그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막상 또 너무나도 철학적인 그의 사고를 이해하지는 못할 것 같아 그의 작품에서 느꼈던 감정만 간직하기로 했다.




16. 빛 인간의 창조물

캐서린 야스, Coriddors 시리즈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작가 중에 가장 좋았던 작가이다. 라이트 박스에 붙어있는 이 사진작품은 두 가지의 사진을 겹쳐서 만든 작품으로, 일반적으로 찍힌 사진과 명암이 반전되어 있는 사진을 겹친 것이다. 사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 겹쳐서 나타나는 효과인 것이다. 그녀는 두 가지 이미지 사이에 보는 사람이 빠져드는 빈 공간이 있다고 상상한다고 한다.


이 작가의 작품이 특히 더 좋았던 것이 바로 이런 상상 때문이다. 작가가 만들어내는 세계를 나도 같이 보고 있지만 그 안에 우연히 만들어진 작가도 의도하지 않은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이 그 작품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두 가지 이미지 사이의 그 틈이 만드는 묘한 분위기가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테이트 모던 홈페이지에 가니 그녀의 작품이 굉장히 많았는데, 모니터를 통해서 보다는 라이트 박스에 설치되어 있는 실제 작품을 보고 싶었다. 대림미술관에서 한번 들여와 줬으면 좋겠는데... 가능하려나?




이번 전시 추천한다. 굉장히 다양한 작품을 시대순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 작품을 하는 사람이라면 작가로서 빛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한번 고민하고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당장 나부터도 고민을...)


사실 빛이 없는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색 자체가 넓은 범위에서 빛에 해당되기 때문에, 우리가 인지하고 보고 있는 모든 것은 빛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이다. 작가들은 그 빛을 상징적인 요소로 사용하기도 했고, 연출적인 요소로 활용하기도 했으며, 그 자체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해 현상 자체를 탐구하기도 했다. 나는 일상 속에 빛이 있는 순간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고, 또 어떤 식으로 화폭에 담아내려고 했던가 되짚어보게 했던 전시였다.


개인적으로 개념적인 접근이나 퍼포먼스 미술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서 몇 가지 건너뛴 섹션이 있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신선하고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날씨가 조금 더 풀리면 미술관 앞에 정원을 걷기에도 너무 좋으니 편안한 사람과 함께 나들이 가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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