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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정 Apr 22. 2024

변명일기

창작을 하면서 가장 괴롭고 힘든 날이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 날이다.

뭐 물론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하다고 아무것도 안 해도 고민하면서 보낸 시간도 나중엔 다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실제로 그 과정 속에 있을 때는 굉장히 자신감이 떨어지고 불안하다.



작업을 못한 날은 주로 이렇다.


예를 들면,

- 작업을 하긴 해야 하는데, 뭘 그려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인터넷의 수많은 레퍼런스를 본다.

그러면서 이건 이래서 아니고, 저건 저래서 아니고를 반복 하다가 하루가 간다.


- 어제 레퍼런스를 보다가 나한테 부족한 점을 발견했다.

이것을 향상하기 위해 좋은 예시를 본다. (잘 만든 영화를 본다)

감독의 천재성에 감탄한다.

또 감탄한다...

...... 감탄만 한다.

난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잠든다.


- 소재는 선택했는데 그걸 나만의 작품으로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대부분 이런 시기는 기존에 작업 스타일이 질렸을 경우가 많다.

그래서 똑같이 따라 그리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끈다.

(그렇게 완성되지 못한 파일이 아마 50개는 넘지 않을까...?)


-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다. 내가 만드는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든다.




나는 이런 시기가 환절기 감기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정말 감기에 걸린 거라고 생각하면 좋은데,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갖는 실망감과 죄책감이 이 시기를 오래 가게 만든다. 오늘도 뭔가 해내지 못했으니 내일도 할 수 없을 거야... 어떡하지... 역시 나는 안 되는 건가...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누워있는 시간이 참 많다.


오랜 슬럼프를 겪고 나서 이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잘 다루는 것이 참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변명일기를 한번 써보는 것은 어떠할까라는 개인적 취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직접적인 제작은 못했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고민했던 흔적들. 그게 잡생각일 수도 있고, 허무맹랑한 망상일 수도 있었고, 정면돌파하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는 마음일 수도 있는 그런 쓸데없는 시간들을 일기로 기록해 보는 것. 그러면 오늘이 아쉽고 내일이 두려워서 밤새 잠 못 이루고 의미없이 유튜브를 보는 시간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적어보기로 했다.


-

그리고 이렇게라도 글을 안 쓰면 진짜 너무 글을 안 쓰는 것 같다. (Email 말고는 아무것도 쓰기 싫어)

이야기를 만들면서 제일 중요한 게 작은 관찰이나 문득 드는 생각을 메모하는 습관인 것 같아서 뭐라도 한 번 적어보려고 시작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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